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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보관함 /한심한 무리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우리연맹 지부도장이 1000개를 넘어서고 해외 20개국에 지부를 설립하자 나는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태권도에 총본산인 국기원처럼 사단법인 국제경호무술연맹의 사옥인 경호무술원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경호무술원은 경호무술한국본부 및 세계본부의 역할을 담당하는 경호무술의 총본산이 될 거라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 당시 우리연맹은 무술 단체 중 태권도 다음으로 지부도장이 많았으며 수련인구도 유단자를 포함 30만 명이 넘어 섰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는 분의 소게로 인천 남동구 도림동 소재 그린벨트 지역에 1500평 정도의 땅을 사단법인 법인 앞으로 기증 받기로 하였으며 그린 벨트지역이라도 임대사업을 하지 않고 비영리 목적사업을 위한 건물이라면 건축허가가 났기 때문이다.

땅주인은 도림동 일대가 모두 자기 땅이기 때문에 연맹에서 건물을 짓게 되면 부대시설 등을 지으면서 그린벨트지역을 하나씩 풀어나갈 계획이었다. 양도소득세 및 취득세 등 여러 비용을 포함해서 5천만 원을 들여 1500평의 땅을 법인으로 기증 인수받았다.

5층 건물로 설계도와 조감도가 나왔으며 총 공사비가 18억 원 정도 책정되었다. 아는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의 소개로 건축업자를 소개 받고 3억 원을 착공비와 건축비로 지불하고 남은 비용은 건물을 짓지 않는 땅을 건설회사 명의로 이전 등기 해주기로 하였다. 또한 건물 준공 후 매달 일정금액을 지불하기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나는 이때 연맹의 사옥을 짓는다는 설래 임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땅 인수비용 5천만 원, 건축비 3억 원 총 35천만 원을 마련해야 했기에 나는 오피스텔과 사무실 보증금 그리고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모아 총3억 원을 건축계약과 함께 지불하였다. 땅 인수비용까지 총 35천만 원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건물을 지을 생각으로 나는 희망에 차 있었다. 경호무술을 창시하여 도복하나 달랑메고 보급하지 20, 이제 경호무술의 총본산이 생긴다는 생각을 하니 장밋빛 인생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 계약을 한 사무장이 3억 원을 가지고 사라져 버렸다.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나 말고도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사기를 당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봤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도독 놈은 한 죄, 도독 맞은 놈은 열 죄라고 하다.

도독 놈의 죄는 물건 훔친 것 하나밖에 없지만, 도독 맞은 사람은 물건 제대로 간수 못한 죄에 쓸데없이 사람을 의심한 최 등 10가지 죄를 짓게 된다는 말이다.

사기를 친 사무장을 탓할 일이 아니라 건물을 짓는 다는 들뜬 마음과 흥분에 자세하게 살피지 못하고 사기를 당한 나 스스로를 탓할 일이었다.

있는 돈은물론 빚더미를 떠안게 되고 다시 그것을 갚기 위해 돈을 꾸는 악순환 연속이었다. 그러다 돈 때문에 실수도 하게 되고 민, 형사 소송들도 당하게 되었다. 사람이 힘들어 질 때는 어려운 상황들이 어께 동무하고 함께 온다고 한다. 이 당시 내가 그랬다.

사무실 집기 등이 압류가 되어 딱지를 붙여 경매에 넘어가기도 했고 통장이 압류가 되기도 했다. 또한 돈을 꾼 사람으로부터 형사 소송도 당하게 되었다. 3번의 재판 끝에 청천병력 같은 법정구속으로 징역6개월을 선고 박고 6개월의 수삼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항소심에서 사건이 연맹의 운영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동안 소년소녀가장 돕기등 많은 사회봉사활동을 해온 것이 참작되어 4개월 만에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수감될 당시 몸도 많이 망가져 당수치가 400넘게 나가고 이빨이 빠질 정도로 당뇨가 심해 배에 인슐린을 마질 정도였다. 감수치도 보통 인의 20배가 높을 정도로 초기 간경화 증세 또한 있었다.

구치소 의료 담당자가 의무기록을 보고난 뒤 큰소리로 나를 야단쳤다.

혈당 수치가 417로 나왔습니다. 이 정도 수치라면 당신 장기는 지금 설탕물에 녹고 있는 상태요 지금 이라도 혈당을 관리하지 못하면 합병증이 생기고 손발이 썩고 눈이 멀게 됩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뭐한 겁니까? 약 처방을 내려줄 테니 열심히 먹고 열심히 운동하세요.” 그러면서 병동으로 옮길 것을 건하기도 했다.

나는 이때 부와 명예 그리고 건강 모든 것을 잃었다.

‘100-1=00’ 이라는 공식이 있다.

100번의 서공을 이루었더라도 한번의 실패로 모든 것을 잃을수도 있다는 뜻이며 100개를 가졌더라도 단 하나 거강을 잃는다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다는 듯이다. 이 공식이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한겨울에 구치소 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나는 속칭 뺑기통을 탔다.’ 얼음장 같은 물로 뺑기통(화장실)청소, 설거지, 그리고 목욕을 해야 했다. 목욕이라고 해봐야 뺑기통에서 얼음장 같은 물을 바가지로 몸에 끼엇는 것이었다.

이때까지 나는 원만한 건달들도 많이 알고 지냈고 나 또한 연맹 총재로 경호무술창시자로 꽤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수감생활을 하면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하루 종일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를 하다 보니 손발이 마를 수간이 없어 동상이 걸렸고 밤에는 동상으로 손발이 저리고 가려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잠을 뺑기통 옆에서 자다보니 냉기로 인하감기 몸살이 걸려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럴 때 마다 입술을 꼭 깨물고 버티어 나갔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는 울음도 울어 봤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당뇨로 구치소 의료과에서 배에 인슐린을 마질 때는 너무나 비참했고 내가 인생의 어느 밑바닥까지 떨어질까 오기가 생기기까지 했다.

나는 이때 <오디세이아>중 영웅 오디세우스가 거듭된 위기를 맞이하여 고뇌였던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나는 이미 너울과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이들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

-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그렇게 한 달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내가 TV나 언론매체에 소개되었던 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고 우연히 접견시간에 마주 친 다른 방의 건달동생이 나에게 90도로 인사를 하게 되면서 방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되자 방사람들의 배려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리고 운동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4개월 가까이 100권이상의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후회와 반성도 뼈에 사무치도록 했다.

책은 여러 권의 책을 읽기보단, 한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말처럼 100권이상의 책을 여러 번 읽었다. 또한 어떤 책을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읽기 전에 사람이 아니다.’는 말처럼 나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책을 읽을수록 내가 책속에 같이 있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리고 팔굽혀펴기도 한번에 500개 이상을 할 정도로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체력 또한 한참 운동하던 시절의 몸을 되찾았고 방사람 들로부터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돌덩이 같이 단단하다는 농담을 들을 정도였다.

하루 종일 운동을 한 후 한겨울에 얼음장 같은 차가운 물로 목욕을 하다보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운동하다가는 쓰러진다고 했지만 운동하면서 느끼는 피곤함과 고통이 오히려 쾌감으로 다가왔고 나는 이때 무엇인가 미치도록 해야 만이 내가 미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육체의 피곤함과 고통은 정신을 맑게 한다.’는 말처럼 나는 그렇게 점점 정신이 맑아지자 내 인생을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는 여유 또한 가지게 되었다.

이때 내가 매일아침 눈을 떠 가장 먼저 한일은 무사히 아침을 맞았음을 감사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때 내가 구치소에 수감되지 않았더라면 몸이 완전히 망가져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세상을 어떤 프레임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좌우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4개월의 수삼생활을 내 인생의 수치이자 실패로 생각했다면 나는 주저 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4개월으 기가이 오히려 그동안 나태해진 나를 뒤돌아 보고 반선하고 그리고 담금질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세상을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나눈다. ‘그것은 나에게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글을 구치소에서 쓰고 있다. 이렇게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일을 글로 기록하는 것 , 이 또한 나에게는 경호무술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가장 위대한 영예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는데 있다.

나의 성공으로 평가하지 말라, 얼마나 많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섰는가로 평가하라.’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우리연맹 지부도장이 1000개를 넘어서고 해외 20개국에 지부를 설립하자 나는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태권도에 총본산인 국기원처럼 사단법인 국제경호무술연맹의 사옥인 경호무술원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경호무술원은 경호무술한국본부 및 세계본부의 역할을 담당하는 경호무술의 총본산이 될 거라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 당시 우리연맹은 무술 단체 중 태권도 다음으로 지부도장이 많았으며 수련인구도 유단자를 포함 30만 명이 넘어 섰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는 분의 소게로 인천 남동구 도림동 소재 그린벨트 지역에 1500평 정도의 땅을 사단법인 법인 앞으로 기증 받기로 하였으며 그린 벨트지역이라도 임대사업을 하지 않고 비영리 목적사업을 위한 건물이라면 건축허가가 났기 때문이다.

땅주인은 도림동 일대가 모두 자기 땅이기 때문에 연맹에서 건물을 짓게 되면 부대시설 등을 지으면서 그린벨트지역을 하나씩 풀어나갈 계획이었다. 양도소득세 및 취득세 등 여러 비용을 포함해서 5천만 원을 들여 1500평의 땅을 법인으로 기증 인수받았다.

5층 건물로 설계도와 조감도가 나왔으며 총 공사비가 18억 원 정도 책정되었다. 아는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의 소개로 건축업자를 소개 받고 3억 원을 착공비와 건축비로 지불하고 남은 비용은 건물을 짓지 않는 땅을 건설회사 명의로 이전 등기 해주기로 하였다. 또한 건물 준공 후 매달 일정금액을 지불하기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나는 이때 연맹의 사옥을 짓는다는 설래 임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땅 인수비용 5천만 원, 건축비 3억 원 총 35천만 원을 마련해야 했기에 나는 오피스텔과 사무실 보증금 그리고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모아 총3억 원을 건축계약과 함께 지불하였다. 땅 인수비용까지 총 35천만 원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건물을 지을 생각으로 나는 희망에 차 있었다. 경호무술을 창시하여 도복하나 달랑메고 보급하지 20, 이제 경호무술의 총본산이 생긴다는 생각을 하니 장밋빛 인생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 계약을 한 사무장이 3억 원을 가지고 사라져 버렸다.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나 말고도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사기를 당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봤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도독 놈은 한 죄, 도독 맞은 놈은 열 죄라고 하다.

도독 놈의 죄는 물건 훔친 것 하나밖에 없지만, 도독 맞은 사람은 물건 제대로 간수 못한 죄에 쓸데없이 사람을 의심한 최 등 10가지 죄를 짓게 된다는 말이다.

사기를 친 사무장을 탓할 일이 아니라 건물을 짓는 다는 들뜬 마음과 흥분에 자세하게 살피지 못하고 사기를 당한 나 스스로를 탓할 일이었다.

있는 돈은물론 빚더미를 떠안게 되고 다시 그것을 갚기 위해 돈을 꾸는 악순환 연속이었다. 그러다 돈 때문에 실수도 하게 되고 민, 형사 소송들도 당하게 되었다. 사람이 힘들어 질 때는 어려운 상황들이 어께 동무하고 함께 온다고 한다. 이 당시 내가 그랬다.

사무실 집기 등이 압류가 되어 딱지를 붙여 경매에 넘어가기도 했고 통장이 압류가 되기도 했다. 또한 돈을 꾼 사람으로부터 형사 소송도 당하게 되었다. 3번의 재판 끝에 청천병력 같은 법정구속으로 징역6개월을 선고 박고 6개월의 수삼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항소심에서 사건이 연맹의 운영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동안 소년소녀가장 돕기등 많은 사회봉사활동을 해온 것이 참작되어 4개월 만에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수감될 당시 몸도 많이 망가져 당수치가 400넘게 나가고 이빨이 빠질 정도로 당뇨가 심해 배에 인슐린을 마질 정도였다. 감수치도 보통 인의 20배가 높을 정도로 초기 간경화 증세 또한 있었다.

구치소 의료 담당자가 의무기록을 보고난 뒤 큰소리로 나를 야단쳤다.

혈당 수치가 417로 나왔습니다. 이 정도 수치라면 당신 장기는 지금 설탕물에 녹고 있는 상태요 지금 이라도 혈당을 관리하지 못하면 합병증이 생기고 손발이 썩고 눈이 멀게 됩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뭐한 겁니까? 약 처방을 내려줄 테니 열심히 먹고 열심히 운동하세요.” 그러면서 병동으로 옮길 것을 건하기도 했다.

나는 이때 부와 명예 그리고 건강 모든 것을 잃었다.

‘100-1=00’ 이라는 공식이 있다.

100번의 서공을 이루었더라도 한번의 실패로 모든 것을 잃을수도 있다는 뜻이며 100개를 가졌더라도 단 하나 거강을 잃는다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다는 듯이다. 이 공식이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한겨울에 구치소 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나는 속칭 뺑기통을 탔다.’ 얼음장 같은 물로 뺑기통(화장실)청소, 설거지, 그리고 목욕을 해야 했다. 목욕이라고 해봐야 뺑기통에서 얼음장 같은 물을 바가지로 몸에 끼엇는 것이었다.

이때까지 나는 원만한 건달들도 많이 알고 지냈고 나 또한 연맹 총재로 경호무술창시자로 꽤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수감생활을 하면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하루 종일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를 하다 보니 손발이 마를 수간이 없어 동상이 걸렸고 밤에는 동상으로 손발이 저리고 가려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잠을 뺑기통 옆에서 자다보니 냉기로 인하감기 몸살이 걸려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럴 때 마다 입술을 꼭 깨물고 버티어 나갔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는 울음도 울어 봤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당뇨로 구치소 의료과에서 배에 인슐린을 마질 때는 너무나 비참했고 내가 인생의 어느 밑바닥까지 떨어질까 오기가 생기기까지 했다.

나는 이때 <오디세이아>중 영웅 오디세우스가 거듭된 위기를 맞이하여 고뇌였던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나는 이미 너울과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이들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

-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그렇게 한 달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내가 TV나 언론매체에 소개되었던 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고 우연히 접견시간에 마주 친 다른 방의 건달동생이 나에게 90도로 인사를 하게 되면서 방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되자 방사람들의 배려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리고 운동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4개월 가까이 100권이상의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후회와 반성도 뼈에 사무치도록 했다.

책은 여러 권의 책을 읽기보단, 한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말처럼 100권이상의 책을 여러 번 읽었다. 또한 어떤 책을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읽기 전에 사람이 아니다.’는 말처럼 나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책을 읽을수록 내가 책속에 같이 있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리고 팔굽혀펴기도 한번에 500개 이상을 할 정도로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체력 또한 한참 운동하던 시절의 몸을 되찾았고 방사람 들로부터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돌덩이 같이 단단하다는 농담을 들을 정도였다.

하루 종일 운동을 한 후 한겨울에 얼음장 같은 차가운 물로 목욕을 하다보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운동하다가는 쓰러진다고 했지만 운동하면서 느끼는 피곤함과 고통이 오히려 쾌감으로 다가왔고 나는 이때 무엇인가 미치도록 해야 만이 내가 미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육체의 피곤함과 고통은 정신을 맑게 한다.’는 말처럼 나는 그렇게 점점 정신이 맑아지자 내 인생을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는 여유 또한 가지게 되었다.

이때 내가 매일아침 눈을 떠 가장 먼저 한일은 무사히 아침을 맞았음을 감사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때 내가 구치소에 수감되지 않았더라면 몸이 완전히 망가져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세상을 어떤 프레임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좌우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4개월의 수삼생활을 내 인생의 수치이자 실패로 생각했다면 나는 주저 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4개월으 기가이 오히려 그동안 나태해진 나를 뒤돌아 보고 반선하고 그리고 담금질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세상을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나눈다. ‘그것은 나에게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글을 구치소에서 쓰고 있다. 이렇게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일을 글로 기록하는 것 , 이 또한 나에게는 경호무술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가장 위대한 영예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는데 있다.

나의 성공으로 평가하지 말라, 얼마나 많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섰는가로 평가하라.’

- 넬슨 만데라

보디가드의 세계

저자
이재영 지음
출판사
신아출판사 | 2004-08-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저자가 그동안 사설경호원으로 활동하면서 경호무술을 보급하면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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