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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시방 /四字成語行詩

곤륜산맥[崑崙山脈]

가루라[迦樓羅]

인도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새.
모습은 독수리와 비슷하고 날개는 봉황의 날개와 같다. 한번 날개를 펴면 360리나 펼쳐진다고 한다. 머리와 날개가 황금
빛인 탓에 황금빛 날개라는 뜻의 새 수파르나(suparna)와 동일시하여 금시조(金翅鳥)라 부르며, 묘한 날개를 지녔다 해서
묘시조(妙翅鳥)라고도 한다. 사는 곳은 수미산 사해(四海)로 전해진다.
신화에 따르면 매일 뱀을 한마리씩 먹는데, 자신의 어머니를 속여 노예로 만든 뱀족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감로수를 구해 어머니를 구하고, 그 감로수를 다시 인드라신이 가져가게 하였다. 그 보답으로 인드라신은 뱀을 일상적인
음식으로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또 창조신 비슈누의 탈것이 되어 주고 대신 불로불사의 새가 되었다고도 한다.
뱀뿐만 아니라 용도 잡아먹을 수 있어서 풍우를 그치게 하고 번개를 피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졌다. 불교에 수용된 이후에
는 수명을 늘리는 능력이 더해졌고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의 하나가 되었다.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여러 경전에 등장하는데, 지풍다라니경(止風陀羅尼經)에 따르면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천신과 같고 입은 독
수리 부리, 오른손에는 9두 4족, 왼손에는 3두 4족의 용을 잡은 채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또 아사박사(阿娑縛沙)에는 가
릉빈가의 모습과 같고 부리가 있으며, 양손에 뱀을 잡고 양다리로는 뱀을 밟고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우리나라의 신중탱화에도 이러한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얼굴 형태는 독수리와 같고 용을 게걸스럽게 씹어먹고 있거나
손에 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대개 사찰 벽화에 많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석굴암 전실에 있는 가루라상을 들
수 있다. 이 상은 왼손에 삼지창을 들고 있고 날개가 달려 있는 투구를 쓰고 있다.

나마삼만타 보타남 마카샤크나 가루라조(迦樓羅鳥) 금시윤고무(金翅輪金+占舞)
옴 바크지 소바카 공중비행주(空中飛行呪)

강삼세명왕[降三世明王, Trailokyavijaya]

산스크리트명 Trailokyavijaya. 오대명왕의 일존으로, 동방 아섬여래의 분노신이라고도, 금강 살타가 변신한 것이라고도
주장된다. 형상은 통례는 삼면팔비(三面八臂)이며, 태장계 만다라 오대원의 상은 연화좌의 위에 앉는데, 대교왕경에 주장
하듯이 양다리로 대자재천과 오마비를 밟는 입상이다.

고독(蠱毒)

지네, 도마뱀, 개구리, 뱀, 전갈 등 독을 가진 다섯 종류의 동물을 모은다. 그리고 이것들을 하나의 병에 넣어 밀봉한 다
음 흙에 묻어둔다. 며칠 후에 병을 열면, 자기네끼리 서로 잡아먹고 한 마리만 살아남아 있다. 살아남은 한 마리는 독충
중에서도 최강의 고(蠱)이며, 이것을 저주의 매개로 삼는 것이다.
살아남은 고를 병에 넣은 채로 저주하는 상대의 집에 묻거나, 이것을 죽여서 탄생시킨 악령을 상대에게 홀리게 한다. 그
강력한 주력에 의해 상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만일 자신이 고독의 저주에 걸린 것을 알아챈 경우에는 고의 종
류를 간파해 저주를 풀기 위한 특정한 주술 의식을 행하거나, 또 다른 고를 사용해 대항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독에
의한 주살에 실패한 경우에는 이것을 시행했던 술자에게 저주가 되돌아온다고 한다.

고블린[Goblins]

프랑스나 영국에서 동굴이나 광산 지하에 산다는 요정의 일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소인으로 신장 30센티미터 정
도이며 얼굴은 못생겼다. 사악한 성격으로 사람을 화나게 만들거나 곤혹스럽게 만드는 짓만 저질러서, 다른 요정들을 고
블린으로 착각하면 싫어한다고 한다. 사람의 집에 눌러앉는 경우도 있는데, 우유 용기 속에 나무 찌꺼기가 넣어져 있으면
금방 치워야 했다. 그런 일에 무심한 집에 고블린이 눌러앉기 때문이라고 한다.

곤륜[崑崙]

신비에 가득 차 있고 하늘에 가장 가까우며 여러 신들과 선인들이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 곤륜이다. 아득히 먼 서
쪽, 누구도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곤륜이 있다. 설사 험한 산천을 넘고 사막을 넘어 가까스로 곤륜에 도달한다 하더
라도 그 중심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더욱 험한 곤경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곤륜의 주위는 약수(弱水)라는 깊은
연못이 둘러싸고 있고, 또 화림산(火林山)이라는 불타는 산이 감싸고 있다. 이러한 장애물들을 넘어서 접근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곤륜의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곤륜에 도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곤륜의 공간구조를 회남자의 서술에 입각하여 소개한다.
곤륜 안에는 구중(九重)의 성이 우뚝 솟아 있다. 높이는 1만1천 리 114보 2척 6자(4,455,154,485미터)나 된다. 그 위 서
쪽으로는 주수(珠樹), 옥수(玉樹), 선수(琁樹), 불사수(不死樹), 동으로는 사당(沙棠), 낭간(琅?), 남으로 강수(絳樹),
북으로 벽수(碧樹), 요수(瑤樹)가 서식하고 있다. 성벽 주위에는 1,620미터마다 폭이 3미터나 되는 문이 440개나 있다.
이 문 옆에는 아홉 개의 샘이 있으며 죽지 않는 약을 만들기 위한 옥그릇이 놓여져 있다.
곤륜 안에는 현포(縣圃), 양풍(諒風), 번동(樊桐) 등 세 개의 산이 있으며 이 산에는 황수(黃水)라는 강이 흐르고 있다.
황수는 산을 세 번 돌아 원래의 곳으로 돌아온다. 이것을 단수(丹水)라고 하며, 이 물을 마시면 죽지 않는다.
곤륜의 언덕을 오르는 것만으로 선인이 될 수 있다. 곤륜의 언덕보다 배나 높은 곳에 양풍지산(諒風之山)이 있고 이 산을
올라가면 죽지 않는다. 그 위로 배나 더 높은 곳에 현포가 있으며, 이곳을 올라가면 바람과 비를 자유로이 다룰 수 있는
신통력을 지니게 된다. 그 위로 또 배나 높은 곳에 천제가 사는 상천(上天)이 있는데, 이곳까지 올라오면 신이 된다. 위
에 나열한 위치의 높이를 하나에 1만 리(4,050킬로미터)라고 한다면 천계까지의 높이는 4만 리(16,200킬로미터)가 된다.
곤륜산에는 동(銅)으로 만들어진 기둥이 있다. 높이는 하늘에까지 다다르고 주위가 1,215킬로미터나 된다. 마치 틀에서
뽑아놓은 듯이 곧고 둥근 기둥이다. 이 기둥은 공공(共工)이 머리를 부딪쳐 꺾어놓은 부주산(不周山)에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하늘을 지지하는 천주(天柱)다.

* 곤륜의 빛
일체의 부정을 용납치 않는 빛. 인간의 몸도 마음도 벌거벗겨 체내에 스며든 모든 부정을 불사른다.

공작명왕[孔雀明王]

4개의 손에 연화(蓮華)와 구연과(具緣果) 등 네 가지 물건을 들고, 공작을 타고 다니며 모든 재앙을 물리쳐 준다는 명왕.
불모대공작명왕(佛母大孔雀明王)·공작왕모보살(孔雀王母菩薩) 등으로도 불린다. 독사도 잡아먹는 공작새를 신격화한 것
이다. 명왕 중에서는 예외로 분노의 상을 지니지 않았다. 어떤 비구(比丘)가 나무를 하다가 뱀에게 엄지발가락을 물려 고
통받고 있을 때 부처님이 불모공작명왕대다라니(佛母孔雀明王大陀羅尼)를 설법했다고 하는데, 그 주문은 뱀의 독은 물론
이고 모든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재앙을 물리치고 비를 오게 하는 등 인간에게 이득을 준다고 한다.

옴 마유키라테 소바카!
노모보타야 노모타라무야 노모소카야 타니야타 고고고고 노가례가례 다바기기고야......
공작명왕대주(孔雀明王大呪)
공작명왕비행주(孔雀明王飛行呪)
공작광익주(孔雀光翼呪)
공작명왕취조파(孔雀明王?爪波)
그 몸의 아름다움과는 반대로 독사와 독충을 즐겨먹는 새 공작. 그 용맹과 잔학성을 내재한 일격필살의 권법.

광명진언[光明眞言]

불공견삭비로자나불대관정광진언경(不空?索毘盧遮那佛大灌頂光眞言經)에서 설하는 진언으로, 이것을 항상 독송하면 온갖
죄가 소멸된다고 함.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프라바를타야 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불교의 보살.
산스크리트로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vara)이며, 중국에서 뜻으로 옮겨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
自在)·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썼는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은 구역이며 관
자재는 신역인데, 산스크리트 '아바로키테슈바라', 곧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본다면
관자재가 그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관세음보살로 신앙되어 왔으며 관음보살이라 약칭하
였다.
그래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을 관음보문품(觀音普門品) 또는 관음경(觀音經)이
라 일컫는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觀照)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결국 뜻으로 보면 관세음이나 관자재는 같으며 물론 그 원래의 이름 자체가 하나이
다.
보살(bodhisattva)은 세간과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성자(聖者)이므로 이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
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구제하는 보살[救世菩薩], 세상을 구제하는 청정한 성자[救世淨者],
중생에게 두려움 없는 마음을 베푸는 이[施無畏者], 크게 중생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이익되게 하는 보살[大悲聖者]이라고
도 한다. 화엄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인도의 남쪽에 있는 보타락산(補陀落山)에 머문다고 알려져 있다. 보타락산은 팔
각형의 산으로, 산에서 자라는 꽃과 흐르는 물은 빛과 향기를 낸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버드나무가지 또는 연꽃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단독 형상으로 조성되기도 하지만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나타나기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 대세
지보살과 함께 있기도 한다. 수월관음보살(水月觀音菩薩),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
薩), 천수관음보살(千手觀音菩薩) 등의 형태로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 관세음반혼대주(觀世音反魂大呪)
나무사츠바 붓타다르마 소기히야 나무아리야 바사키테... 톄시바라야 보다이싯타하야
* 관세음소마법(觀世音消魔法)
나무사츠바 붓타다르마 소기히야 나무아리야 바사키테... 나무바사 라하니!! 하라니소바카.
나무니켄다 나무 아자하다 소바카... 나무 아자라 소바카... 인켸인켸 소바카.

광목천왕(廣目天王)

광목천왕(廣目天王, ?????????)은 수미산 중턱 서쪽에 살면서 많은 용을 권속으로 서방을 지키는 사천왕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비루파(????)는 귀, 여러가지 색이라는 뜻이고, 악쉬(?????)는 눈 또는 뿌리라는 뜻으로 여러가지 색의
눈 또는 뿌리라는 뜻인데, 이를 한자로 바꾸어 넓을 광(廣)과 눈 목(目)을 써서 광목천왕으로 부르며, 이는 크고 넓은 눈
으로 수미산의 서방 국토를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도와주는 천왕이라는 뜻이다.
고대 인도에서 시바신의 화신으로 3개의 눈을 가진데서 유래하며, 그 권속으로 여러 종류의 용과 부단나 등이 있다. 용은
하늘에서 구름, 비, 천둥을 관장하고, 부단나는 냄새나는 혹은 열병을 앓게하는 귀신으로 아귀를 말하기도 한다. 나가를
부린다고 한다.
다라니집경에서 왼손에는 창을 가지고 오른손에는 새끼를 가진다. 일자불정륜왕경에서는 왼손에는 창, 오른손에는 금강저
를 가진다. 때로 궁근을 들고 있는 것도 있다.

구르카족[Gurkha族]

현재의 네팔왕국(구르카 왕조)을 세운 부족.
네팔의 중부 및 서부 산악지대에 사는 강건(剛健)한 농경민으로 목축도 겸하고 있다. 원주지는 인도 중부였으나, 힌두교
도라는 이유로 14세기경 이슬람교도에게 쫓겨 북쪽 네팔로 이동, 그곳의 지배 민족이었던 네와르족(族)을 정복하고 이들
과 혼혈(混血)하게 되었다. 파리어(語)를 사용하며, 힌두교의 네팔 전파에 공헌하였다.
1767년 네팔 전역을 정복하고 나라야왕국을 건설하였는데, 그후 이 왕국의 쇠퇴를 틈타 청나라 건륭제(乾隆帝)가 보낸 원
정군을 격퇴한 것도 구르카족 병사들이었다. 1814년 치열한 산악전 끝에 영국군에게 패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의 용병(傭兵)으로 활약하여 네팔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는 데 이바지하였다. 또 전선에서 돌아온 그들은 외부 세계로
부터 차단되어 있던 네팔 국내에 외국(外國)의 사정과 함께 민주주의 사상을 도입·전파하는 역할도 하였다.

구자인법(九字印法:九字結界法)
이 구자인(九字印)의 힘을 이용하여 내부의 악령과 외부의 것들 주위의 여러 가지에 대해서 신성한 파동을 보내어 사악함
을 물리치는 파사(破邪)의 법이라 한다. 임병투자개진열재전(臨兵鬪者皆陳列在前).
보현삼매야인(普賢三昧耶印) -> 대금강륜인(大金剛輪印) -> 외사자인(外獅子印) -> 내사자인(內獅子印) -> 외박인(外縛
印) -> 내박인(內縛印) -> 지권인(智拳印) -> 일륜인(日輪印) -> 은형보병인(隱形寶甁印)
구자결계(九字結界)
부동명왕검인(不動明王劍印)으로 구자(九字)를 긋노니 X를 악마의 저주에서 해방하노라. 나우마리사라바 타라캬테비야리
임! 병! 투! 사라바히 사남움 타라타 캄문!

귀자모신[鬼子母神]

유아를 보호·양육하는 신 또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선녀신(善女神).
하리제(訶利帝)·하리저(訶利底) 등으로 음사(音寫)하고, 악녀(惡女)·천모(天母) 등으로 옮기며, 애자모(愛子母)·환희
모(歡喜母)·공덕천(功德天)이라고도 한다.
포악하여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잡아먹는 야차녀(夜叉女)였으나, 후에는 석가의 교화를 받아 불법 및 유아양육의 신이 되었
다. 그는 전신이 사악(邪惡)하여 왕사성(王舍城)에 와서는 아이를 잡아먹곤 하였다. 석가가 그를 제도하기 위하여 그의
한 아들을 숨겨 놓자, 야차녀는 비탄에 빠져 슬피 울었다. 이때 다른 부모의 슬픔을 상기시켜 주는 석가의 설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여 안산(安産)과 유아보호의 서원(誓願)을 하였다.

귀소법(鬼甦法)
한국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살아 있는 시체를 만드는 사술. 비관잡기(稗官雜記)에 사자의 약지에서 뽑은 피로 그
이마에 귀(鬼)자를 쓰면 사자가 살아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남방에 위치하여 재난을 방지하여 주는 오대명왕(五大明王) 중 한 신.
'군다리'는 산스크리트 '쿤달리'의 음사(音寫)이다. 오대명왕은 오대존(五大尊)이라고도 하며, 밀교의 태장계만다라(胎藏
界曼茶羅)의 오존(五尊)을 지칭한다. 부동(不動)·항삼세(降三世)·군다리·대위덕(大威德)·금강야차(金剛夜叉)의 각 명
왕은 분노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밀교에서 군다리명왕을 본존(本尊)으로 하여 재난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수법(修法)을 군다리법(軍茶利法)이라고
한다.

옴 반다반다 하나하나 아미리테 움핫타!
옴 토로토로 테힛타 아밀리데 우움핫타!
군다리존(軍茶利尊) 삼차극(三叉戟)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i Efimovich Rasputin]

러시아의 성직자로 농민들 사이에서 성자라는 평판을 얻었다. 혈우병을 앓고 있던 황태자를 고쳐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
렉산드라의 총애를 얻었다. 종교는 물론 내치와 외교에도 참견하였다.
본명은 Grigory Yefimovich Novykh. 튜멘주(州) 토볼스크 출생. 여러 수도원과 성지를 돌아다니며 예언도 하고 환자를 치
료하였다. 농민들 사이에서 성자(聖者)라는 평판을 얻고, 1904∼0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신학교장인 페오판이 그곳 상류
사회에 소개하였고, 1907년에는 궁정에도 출입하게 되었다. 때마침 혈우병(血友病)을 앓고 있던 황태자를 기도로써 고쳐
황후의 환영을 받았다.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총애를 얻음으로써 궁정에 세력을 갖기에 이르렀으며, 점차 종교는 물론 내치와 외교
에도 참견하였다. 그러자 그 생활은 한없이 방종으로 흘렀고, 그의 나쁜 영향을 제거하려는 귀족들에 의하여 암살당했다.

금강살타[金剛薩?]

산스크리트어 vajra-sattva의 음사. 대일여래(大日如來)의 권속 가운데 우두머리로, 보리심(菩提心) 또는 그 여래의 지혜
를 상징하는 보살.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지니고 있음.

금강역사[金剛力士]

금강저(金剛杵)를 손에 들고 불법을 수호하는 신.
금강신(金剛神)·집금강(執金剛)·금강야차(金剛夜叉)라고도 한다. 사찰 문의 좌우에 서서 수문신장(守門神將)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경주 석굴암 전면의 금강역사는 손에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옴 바사라 야사 움!

금강저[vajra, 金剛杵]

승려들이 불도를 닦을 때에 쓰는 도구인 방망이.
금강으로 약칭하기도 한다. 발사라(跋?羅)·벌절라(伐折羅)·발왈라(跋曰羅) 등으로 음역하고, 금강지저(金剛智杵)·견
혜저(堅慧杵) 등으로도 의역된다.
여기에는 오고저(五?杵)가 있다. 쇠나 구리로 만들고, 그 양 끝을 한 가지로 만든 것을 독고(獨?), 세 가지로 만든 것
을 삼고(三?), 다섯 가지로 만든 것을 오고(五?)라고 한다. 저(杵)는 본래 인도의 무기의 하나인데, 금강저는 밀교에서
인간 번뇌를 부숴버리는 보리심(菩提心)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를 지니지 않으면 불도수행을 완수하기 어렵다고
믿었다.

금단[金丹]

도사(道士)가 정련(精鍊)한 황금의 정(精)으로 만든 환약. 먹으면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신선이 된다고 하는 영약(靈藥).

나치스

A.히틀러를 당수로 하여 1933~1945년 정권을 장악한 독일의 파시즘 정당.
정식 명칭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NSDAP)이다. 나치스란 원래 정
적(政敵)들이 만들어 낸, 얕잡아 부른 명칭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이 말이 전세계의 통칭이 되었다.
19세기 말엽 유럽에 일반적으로 공통되어 있던 반(反)유대주의·백색인종지상주의·국가주의·제국주의 및 반(反)사회주
의와 반(反)민주주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발생하였다.
중심이론은 독일민족지상주의와 인종론이다. 즉, 게르만족은 인류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종족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을 지
배할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반대로 가장 열등하고 해악적인 인종은 유대인으로, 그들은 아무리 환경을 개선하고 교
육을 실시하더라도 그들의 천성적인 열등성과 해악성은 개선되지 않으며, 항상 주위환경을 부패시키거나 또는 해악을 만
연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우수한 민족은 그들의 열악성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을 격리시키거나 또는 절멸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본래 나치스의 근본사상은 국가주의적 경향, 중산계급과 지식인의 반민주주의적·권위주의적·민족주의적 경향, 특히 군
부·관료·경영진·교회·교육계 등 사회 일반에 통하는 권위주의적·군국주의적 전통과 강렬한 국가주의 사상이었고, 나
치스의 지지자로서는 항상 몰락의 위협을 받고 있던 중산계급이 중심이었으며, 거기에 다시 군인으로 복원된 병사·장교
와 중소농민, 노동조합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점원·실업자 등이 참가하여 나치스의 대중적 기초를 이루었다. 또한, 대
자본가층이나 보수파 및 군부 등도 나치스와 공통의 목적, 즉 계급투쟁의 배격, 강대한 독일의 건설, 군비의 대확장과 군
국주의적 국가건설, 독재정치의 수립, 경제발전, 민주공화제의 전복, 독일의 유럽 제패 등의 주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에 적극적으로 나치스를 지지하였다.
1919년 1월 안톤 드렉슬러에 의하여 독일노동자당이 결성되고, 1920년 2월 24일 대중집회를 열어 25개조의 당강령을 공포
하였다. 1921년 7월 임시 당대회에서 히틀러의 독재적인 지위가 확립되었고, 당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 국내의 혼란
을 틈타 남부독일의 바이에른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그것은 바이에른의 군부와 보수왕당파 및 대자본가 등이 후원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힘입은 히틀러는 1923년 11월 8일 바이에른 보수왕당파와 군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서 독재제도를 수
립하려고 공화정부와 맞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그때는 시기가 일러 군부·경찰·관료 등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실패로 끝
났으며, 이로 인하여 당도 한때 금지당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당은 1925년 2월 재건되었으며, 그후 히틀러는 합법주의를 지키면서 히틀러-유겐트(Hitler-Jugend:나치스청년단)
·나치스학생동맹·나치스돌격대(SA) 등 대중조직을 발전시켜 독일의 국민적 전통과 민족주의적 풍조에 합치하는 대중운
동을 전개하였으며, 특히 사회주의적 슬로건을 강조하였다. 세계적 경제공황의 혼란기에 국민의 다수가 나치스의 힘에 의
하여 강대한 독일을 재건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지지를 받아 독일의 제1당이 되었다. 이때부터 군부와 대
자본가, 각종 압력단체·관료층 및 농업계까지도 나치스를 지지하게 되었으며, 진정한 뜻으로의 반(反)나치스파로는 공산
당과 사회민주당 청년부 등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 하에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마침내 합법적인 총리로 임명되어 독일 제3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하였
다. 이는 독일의 관료층·군부층·경영진, 압력단체 등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나치스의 정권획득은 기정사
실이 된 것을 의미하였다. 국내 각 방면 유력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은 히틀러는 보다 강력하게 경제적·정치적 시책
을 감행하여 나갔다. 1933년 초 600만 명을 넘었던 실업자들을 군수산업과 토목사업에 거의 흡수시켰으며, 농업면에서는
세습농장법을 제정하여 대농과 중농을 보호하였고, 또한 식량의 자급자족화를 도모하였다. 공업면에서는 인조석유·인조
고무를 비롯하여 대용품 생산에 힘을 기울였으며, 종래의 노동조합을 폐지시키고 노동자를 자본가·기술자 등과 함께 새
로 조직된 독일노동전선에 가입하게 하였다. 정치면에서는 1당독재를 실시하였으며, 나치스친위대(SS)를 강화하고, 비밀
경찰로 하여금 정보를 위한 기관으로서 전국민을 감시하게 하였다. 또한 유대인·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를 강제수용소
에 수용시켜 혹독한 학대와 살육을 자행하였다. 교회·군대, 학교 등도 나치스식으로 획일화시키고 일반 국민도 나치스
신봉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반(反)나치스 저항운동은 1936년이 되자 거의 그 자취를 감추었다.
국제관계에서는 1933년 10월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1935년 1월 자르지방의 인민투표에서 승리하여 이 지방을 독일영토로
복귀시켰으며, 3월 국민징병제를 채용·실시하여 육군을 일시에 5배로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6월에는 영국-독일해군협
정 체결에 의해서 해군도 4배로 증강하였다. 1936년 3월 독일군을 라인 비무장지대로 진주시켜 독일-프랑스 국경지대를
요새화하였다. 이처럼 독일의 실력이 유럽세계를 제압하게 되자 독일국민의 나치스에 대한 신뢰도는 최고조에 달하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실력을 배경으로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강제적으로 독일에 병합시키고, 10월 체코의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합병시켰으며, 이어 1939년 3월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정복하여 독일의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히틀러는 여세를 몰
아, 9월 폴란드에 단치히 자유시(自由市)를 독일에 반환할 것과 동(東)프로이센과 독일 본토를 연결하기 위하여 폴란드령
포메른을 경유하는 치외법권적인 도로와 철도의 건설을 인가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폴란드로부터 거절당하였기
때문에 폴란드 침입을 감행하였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
었다.
히틀러의 나치스는 폴란드와 구소련을 멸망시키고 그 지방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종족인 게르만족의 생존권(生存圈)으
로 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었다. 나치스는 1945년 패전으로 연합군에 의하여 금지되고, 그 금지조치는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다문천[多聞天]

사천왕(四天王)의 하나로 북주(北洲)를 수호하는 신.
폐실라마나(吠室羅摩拏)로 음사하며, 비사문천(毘沙門天)이라고도 한다. 원래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Mah?bhrata)에서
는 북방을 수호하는신이며 재부(財富)의 신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불교에 전래된 것이다. 수미산(須彌山)의 제4층 수
정타(水精?)에서 야차(夜叉)와 나찰(羅刹)의 무리를 거느리고 북구로주(北俱盧洲)를 함께 다스린다. 항상 도량을 지키
며, 부처의 설법듣기를 즐긴다고 하여 다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는 그 복덕(福德)의 명성이 멀리까지 들리기 때문
에 다문천이라고 한다. 따라서 호법(護法)과 시복(施福)의 신으로 숭배되고 있다.

다지니천[茶枳尼天]

대모신(大母神) 카리의 사비(使婢)인 귀령으로 산스크리트어로 다키니(D?kini)라고 한다. 환력(幻力, 마야)을 가지며, 야
간에 무덤에 모여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주락난무하고 성적방종을 수반하는 광연을 연출한다. 사람을 해치는 귀녀
로서 두려워했는데, 수단을 강구해서 달래면 큰 은혜를 가져온다. 탄트라 불교에서는 그녀들(<어머니>들, 현실적으로는
특수한 마술적 능력을 가진다는 천한 카스트의 여성들)의 그룹을 세계의 궁극적 실재로서의 여성원리이며, 깨달음을 낳은
지혜이기도 한 <반야바라밀> 로 보고, 그것과 성적으로 유가(瑜伽, 요가, 합일)함으로써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실현을 기
도하였다.

대극파(大極波)
둘의 기(氣)를 하나로 모아 보다 거대한 기를 쏜다.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불신(佛神) 5대명왕(大明王)의 하나. 염만덕가(琰曼德迦)라 음역, 항염마(降閻魔)라 번역. 형상은 3면(面) 6비(臂)로 성
낸 모양을 하고 흰소를 타고 있다. 모든 독사(毒蛇)ㆍ악룡(惡龍)의 항복을 받는다고 한다. 그 근본 진실신(眞實身)은 아
미타불로서 서방에 위치한다.

대흑천[大黑天]

전쟁과 재복(財福)을 관장하는 불교의 신.
인도신화에 나오는 시바(Shiva)의 한 부분인 칼라(Kala)가 불교에 도입되어 생긴 신이다. 시바신은 브라만교의 리그베다
에서는 폭풍의 신 루드라(Rudra)의 존칭으로 쓰이고, 힌두교에서는 창조신 브라만(Brahman)과 보존의 신 비슈누(Vishnu)
와 함께 최고의 신으로 군림한다. 칼라는 이러한 시바의 무서운 면을 대표하는 신으로, 불교에 수용되면서 크고 검다는
뜻의 대흑천이 되었다. 산스크리트로 마하칼라(Mahakala)를 음역해서 마하가라(摩訶迦羅)·막하가라(莫訶哥羅)라고도 한
다. 또는 암야천(暗夜天)이라고도 한다.
칼라는 시바와 한몸인 대자재천(大自在天)의 화신으로 전쟁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고, 대일경소에는 인육을 좋아하는 다길
니천을 항복시키기 위하여 비로자나불이 변한 것이라는 기록도 있다. 또 재복신(財福神)으로도 여겨져, 7세기경 인도를
여행한 의정(義淨)에 따르면 사원의 식당에 모셔졌다.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에는 신상을 기름으로 닦기 편하도
록 검은색으로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나중에는 가람뿐 아니라 민가 식당에서도 식량을 관장하는 호법신으로 섬겼다. 전
투신으로는 중국 북부지역에서 섬긴다. 
한편, 대흑천신법(大黑天神法)에는 대자재천의 화신으로 가람에 모시고 매일 공양하면 승려가 많아져 모두 1천명의 스님
을 길러낸다고 적혀 있다. 또 일반인들이 그에게 공양하면 세간의 재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서민들도 많이 믿었다.

옴 마카캬라 소바카!

대일여래[大日如來]

밀교(密敎) 진언종(眞言宗)의 본존·교주(敎主).
마하비로자나(摩訶毘盧遮那)·비로자나 등으로 음역하는데, 마하는 대(大), 비로자나는 일(日;해)의 별명으로서‘대일’
은 즉‘위대한 광휘[大遍照]’를 뜻한다. 따라서 변조여래(遍照如來)·변조존(尊)·광명(光明) 변조 등으로 옮긴다. 밀교
이전의 대승경전인 범망경(梵網經)과 화엄경(華嚴經) 등에서는 비로자나를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중심을 이루는 광대
한 세계관의 주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불타관의 형성은 법신(法身) 사상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역사상 실재
했던 불타인 석가모니불과는 달리 우주적 통일원리의 인격화를 불타로 보는 것이며, 따라서 대일여래의 기본적인 성격은
절대적인 원리의 인격화이다. 또한 불교의 법(法;dharma)이라는 용어가 법칙과 사물의 두 가지를 의미하고 있는 것과 같
이, 대일여래는 그 원리의 무한한 구상화(具象化)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일여래는 지혜 그 자체일 뿐 아니라 그것의 무
한한 활동이기도 하다.

나우마리 사라바 타타가테비야리......
대일여래종자광호법(大日如來種子光護法)

라다[R?dh?]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크리슈나의 연인.
크리슈나가 인도 브린다반(Vrindavan)에 살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사랑의 유희를 함께했던 그의 연인이다. 남편을 둔
유부녀였지만 크리슈나와 소유를 뛰어넘는 초월적 사랑을 나눈다. 크리슈나가 브린다반을 떠난 뒤에도 그를 끝까지 기다
리며 헌신적 사랑을 보여 영원한 사랑의 완결체이자 상징으로 추앙받는다.
크리슈나와 더불어 인도문학과 음악, 그림 등의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특히 12세기 벵골 시인 자야데바의 서정시 기타고
빈다(목동의 노래)에는 그와 크리슈나와의 관능적 사랑 이야기가 잘 묘사되어 있다. 기타고빈다에 따르면 브린다반에서
라다는 다른 소치기 소녀들과 함께 '라사 릴라(rasa lila)' 라는 애욕의 춤을 춘 뒤 어둠 속에서 크리슈나와 밀회를 즐긴
다.
비슈누파(Vaishnava)의 신애(信愛, bhakti) 신앙에서는 크리슈나와 함께 최고여신으로 인정받는다. 또한 크리슈나의 신성
한 에너지이자 인간과 신이 하나 되는 ‘궁극의 사랑’으로 여겨져 '라다 크리슈나(r?dh?-k???a)'라는 이름으로 숭배된
다.
'라다라니(R?dh?r?n?)', '라디카(Radhika)' 등의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라움[Raum]

솔로몬 왕이 썼다는 마법서 레메게톤에 나타나는 72명의 악마 중 하나. 라임이라고도 불린다. 소환당하면 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도시를 파괴하거나 사람에 대한 평판을 떨어뜨리는 힘이 있는데, 그 사람의 평가를 높여서 고위에 오르게 할
수도 있다. 남녀 사이에 사랑을 싹트게 하거나 적대시하는 자들을 화해시키기도 한다. 미래에 대해서도 잘 안다. 원래는
좌천사 중 한 명이었는데, 지옥에 떨어져서 30개 군단을 지휘하는 백작이 되었다고 한다.

라후

인도의 마족(魔族) 아수라의 신.
전설에 의하면, 라후는 신으로 변신하여 ‘유해교반(乳海攪拌)’에 의해 얻어진 감로(甘露)를 훔쳐 마시려고 하였다. 그
런데 일신(日神)과 월신(月神)이 이를 발견하고 비슈누신(神)에게 알려 비슈누는 라후의 목을 잘랐다. 일신과 월신에 대
해 원한을 품은 라후는 그때부터 늘 해와 달을 삼키게 되었다. 그래서 일식(日蝕)과 월식(月蝕)이 생겼다고 한다. 따라서
인도 천문학에서 라후는 곧 일식과 월식을 의미한다.

루시퍼[Lucifer]

「루가의 복음서」에 예수가 말한 것으로 보이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예수께서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루가의 복음서」 10:18)
이 말은 사람들에게 사탄이 루시퍼를 가리키는 말임에 틀림없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루시퍼는 '빛을 내는 자', '새벽
의 샛별' 이라는 뜻으로, 천계에 있을 때는 신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던 존재였다. 틀림없이 신은 모든 천사를 통솔하는 직
책을 루시퍼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의 은총을 한 몸에 받으며 '빛을 내는 자' 라는 별명까지 얻고 모든 천사를 지
휘하던 루시퍼에게 점차 '오만' 의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황금으로 찬연히 빛나는 신의 옥좌를 보고 있는 동안 그 자
리에 자신이 앉아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빛나는 듯한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데다
가 신조차 감탄하는 지력의 소유자이기도 했으므로, 스스로가 위대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신의 분노
를 사서 그는 하늘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다.
밀턴의 실낙원에 의하면, 이때 추방된 것은 루시퍼만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반역천사' 군대도 함께였다고 한다. 루시퍼
는 이들 타락천사군단의 원조를 얻어 신과 대등한 자리에 오르고자 기도했던 것이다.
'야심만만하게도 신의 옥좌와 위광(존엄한 위력)에 대항해 불경하고 오만불손한 싸움을 감히 하늘에서 일으켰다. 그야말
로 주제를 모르는 시도라 할 수 있겠다. 대담무쌍하게도 전능자인 신을 향해 무기를 들고 달려오는 그를 신은 높은 하늘
에서 거꾸로 떨어뜨렸다. 그는 맹렬한 기세로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휩싸여 끝도 알 수 없는 지옥의 나락으로 추락했
다.'(실낙원)
이와 관련해 「요한의 묵시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때 하늘에서는 전쟁이 터졌습니다. 천사 미가엘(미카엘)이 자기 부하 전사들을 거느리고 그 용과 싸우게 된 것입니다.
그 용은 자기 부하들을 거느리고 맞서싸웠지만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는 그들이 발붙일 자리조차 없었습니
다. 그 큰 용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계를 속여서 어지럽히던 늙은 뱀인데, 이제 그놈은 땅으로 떨어
졌고 그 부하들도 함께 떨어졌습니다.'(「요한의 묵시록」 12:7~9)
미카엘에 의해 지옥에 갇힌 사탄은 1백 년간 유폐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뛰어난 악의 실력자인 그는 곧바로 지상에 모
습을 드러내고 신의 왕국에 대해 반격을 기도했다.
루시퍼의 모습은 신의 오른팔로 활약하는 대천사 미카엘의 판박이로 알려져 있다. 또 그들이 쌍둥이 형제였다는 말도 있
다. 즉, 루시퍼는 신의 그림자 얼굴을 대표하는 타락천사로서 신의 겉 얼굴인 미카엘과는 서로 닮은꼴인 것이다. 그림 등
에서 표현되는 루시퍼는 한결같이 미카엘과 똑같은 모습이고 피부만 좀 검게 그려져 있을 뿐이다. 이는 단순한 표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상의 테마를 확실히 답습한 후에 그려낸 표현이다. 즉, 천사라는 존재는 '영적' 인 것인데, 그것이 지
상에 오래 머물게 되면서 화학변화를 일으켜 물질화되어 뼈와 살을 얻은 것으로 간주된다.

마르코키아스

마계 7군단 중 제5군단의 사령관. 매의 날개와 뱀의 꼬리를 가진 검은 늑대의 모습. 전술에 능하며, 7색의 불을 토해 상
대를 석화 시킨다.

마리지천[摩利支天]

불교에서 항상 해 앞에 있으면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신통력이 있다는 천신(天神).
마리지(摩利支)·마리자·마리지보살·마리지제바라고도 하며, 양염(陽琰)이라고 번역한다. 산스크리트 ‘marici’의 음
역이다. 이름의 의미는 형상을 볼 수도 없고 취할 수도 없으며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는 뜻이다.
항상 해 앞에 있으며, 만약 이 신을 염(念)하면 일체의 재액이 사라지고 바라는 일이 성취된다고 한다. 밀교(密敎)에서는
무사의 수호신으로 삼아 그 형상을 조각해 놓은 것이 많다.
이 천신을 생각하며 손에 인계(印契:밀교에서 손가락을 짜 모아 제존의 덕을 표시하는 일)를 맺고 다라니를 외우면 몸을
감추는 은형법을 잘할 수 있다고 한다.

옴 마리시예 소바카!
옴 아니테야 마리시 소바카 마리지천(摩利支天) 은행인(隱行印)
이 인을 외치면 마계의 마물들에게 시전자의 모습이 결코 보이지 않게 된다.

만다라[mandala, 曼茶(陀)羅]

밀교(密敎)에서 발달한 상징의 형식을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佛畵).
신성한 단(壇:성역)에 부처와 보살을 배치한 그림으로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것이다. 원래는‘본질을 소유한 것’이라는
의미였으나, 밀교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도형화한 것을 일컬었다. 그래서 윤원구족(輪圓具足)으로 번역한다. 윤원구족이
란, 낱낱의 살[輻]이 속바퀴측[?]에 모여 둥근 수레바퀴[圓輪]를 이루듯이, 모든 법을 원만히 다 갖추어 모자람이 없다
는 뜻으로 쓰인다.
만다라는 크게 대일경(大日經)을 중심으로 하는 태장계(胎藏界) 만다라와 금강정경(金剛頂經)를 중심으로 하는 금강계(金
剛界) 만다라로 나뉜다. 태장의 세계는 모태(母胎) 중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듯이, 만물을 내장(內藏)하는 진리 자체의
세계를 석가로 구현화한 것이고, 금강계는 석가의 인식은 경험계를 초월한 인식이지만 그같은 인식을 근거로 하여 경험세
계를 대상으로 하는 실천체계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극락정토(極樂淨土)의 모습을 그린 정토변상(變相)을 흔히 정
토만다라라고 부른다. 이러한 만다라는 관상(觀想)의 대상이기도 하며, 예배의 대상이기도 하다.

명부[冥府]

사후에 향하는 타계의 하나. 명계, 황천이라고 하며, 영어의 hell이 이에 해당한다. 명부관은 민족과 종교에 따라서 다양
한데, 여기에서는 주로 중국에 대해서 기술하기로 한다. 널리는 <지옥>, <타계>, <황천국>, <죽음> 등의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고대 중국에서는 사자의 영혼이 돌아가는 곳은 <황천>, <구천>, <유도(幽都)> 등으로 불리며, 본래 지하에 있다
고 고려되었는데, 후에 북방 유암의 땅에 있다는 설도 생겼다. 사자의 혼백을 불러오는 초혼의 의례가 북방을 향해서 행
하여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의 구체적 명부관은 반드시 명확하지는 않다. 후한시대에는 묘권(墓券)의 기술에
서도 볼 수 있듯이, 황제(黃帝)가 천제의 명을 받아서 사자를 통치하는 신에 해당되며, 구승(丘丞), 묘백(墓伯), 지하이
천석, 주묘옥사(主墓獄史), 묘문정장(墓門亭長) 등의 명계의 관료조직이 고려되었다. 또한 영혼이 가는 장소로서는 각지
의 명산이 해당되며, 그중에서도 산동성의 태산이 그 대표격이다.
태산은 고대 산악신앙의 중심지였는데, 태산신이 천제의 명령을 받아서 인간의 수요화복(壽夭禍福)을 지배하는 신이라고
생각한 점에서, 결국 수명이 다한 것을 구인하는 명부의 신이라는 성격이 부여되고, 태산치귀설이 형성되어 후한에서 위
에 걸쳐서 성행했다. 그 태산의 신은 태산부군이라고 하며, 그 밑에는 태산주부, 태산녹사, 태산오백 등의 속료가 있어
서, 수명대장의 관리, 사자의 구인, 명계의 통치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런 태산의 조직은 현세의 지방 행정조직을
그대로 반영한 매우 현실적이며 소박한 것으로, 사령도 태산에서 현세와 동일한 사역에 종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불교의 지옥설과 습합하게 되자, 사자의 생전 행위의 선악을 심판하는 권능이나 죄업에 대한 행형시설로서의 태산
이십사옥 등, 본래 지니지 않았던 요소를 지니는 한편, 태산부군의 지위는 단순한 명부의 한 판관으로 하락해서 후세 동
악대제가 새로이 태산신에 해당하게 되었다. 동진조에는 도교교리 중에서 새로이 북방벽지의 땅에 북대제를 주신으로 하
고 사명공 이하의 관료조직을 가진 나풍산이라는 명부의 존재가 주장되었다. 이 나풍산 밑에는 촌절음천궁 이하 육궁으로
된 명부가 있으며, 사자는 그 어딘가에 출두해서 심판을 받고, 선행한 자는 귀솔 또는 지하주자라는 명부의 하급관리에
임명되어서 장래의 재생승선을 약속받고, 기타의 자는 영원히 명부에서 사역에 종사한다고 하였다. 이 풍도설은 결국 불
교의 지옥설과 습합해서, 북대제는 염라왕과 동일한 신격으로 보는 동시에, 태산은 나풍산의 출선기관으로 격하되었으며
당 이후에는 사천성의 풍도현이 풍도의 소재지에 대항되고, 근세까지 민중의 신앙을 모았다.
또한 당 말에는 중국 고래의 명부설과 불교의 지옥설, 중유의 사상을 잡유한 십왕신앙이 성행했다. 이들 명부에는 염라
왕, 태산왕 등 십판관이 있고, 칠칠기(七七忌), 1년기, 3년기의 십기일(十忌日)에 순차적으로 사자의 죄업을 심판하고,
3년기에 최종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기일마다 공양을 행하여서 사자의 추선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무루간

무루간(타밀어: ??????? Murugan, 산스크리트어: ???????????, ?????????)은 힌두교의 남신(데바)으로 전쟁과 승리의 신
이다. 활과 신의 창인 벨(Vel)을 무기로 하며 바하나(탈것)는 공작이다. 무루간은 카르티케야(Kartikeya)·스칸
다(Skanda)·수브라마냐(Subrahmanya)라고도 불린다.
무루간은 특히 타밀족 힌두인들 사이에서 널리 대중적으로 신앙되는 신이다. 지역적으로는 타밀족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
들에서 숭배되는데, 남인도·싱가포르·스리랑카·말레이시아·모리셔스·레위니옹 섬 등이 주요 지역이다. 인도에서의
무루간의 성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밀나두 주에 있는 그의 이 여섯 신전들을 통칭하여
아루파다이베두(Arupadaiveedu)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여섯 거주처이다. 스리랑카에서는 힌두인들 뿐만 아니라 불교도들
도 자프나에 있는 날루르 칸다스와미 신전(Nallur Kandaswamy temple)을 무루간에게 바쳐진 역사적인 신성한 장소로 숭배
하며, 또한 스리랑카의 남쪽 끝에 가까이 위치한 카타라가마(Katharagama)는 불교도와 힌두교도 모두 무루간에 바쳐진 성
지 또는 사원으로 숭배하고 있다. 타이푸삼(Thaipusam) 축제 때는 말레이시아의 풀라우피낭 주의 중국인들도 또한 무루간
에게 기도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불교 용어로는 구마라(鳩摩羅) 또는 구마라천(鳩摩羅天)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무루간의 여러 다른 이름들 가
운데 쿠마라(산스크리트어: Kum?ra)를 음역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쿠마라(Kum?ra)는 왕자, 아이 또는 젊은 이를 뜻하는
데, 불교에서는 동자(童子)라고 의역하고 있다. 용수(150?~250?)의 대지도론의 한역본(402~406년) 제2권에는 무루간 즉
구마라에 대한 묘사가 시바(마혜수라천)와 비슈누(위뉴천)에 대한 묘사와 함께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摩醯首羅天,(秦言「大自在」)八臂,三眼,騎白牛。如韋紐天(秦言「遍悶」),四臂,捉貝持輪,騎金翅鳥。如鳩摩羅天,(秦
言「童子」)是天擎?持鈴,捉赤幡,騎孔雀,皆是諸天大將。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 진(秦)나라 말로는 대자재(大自在)라고 한다)은 여덟 팔, 세 눈으로 흰 소를 탔고, 위뉴천(韋紐
天, 진나라 말로는 변민(遍悶)이다)은 네 팔로 소라[貝]를 쥐고 바퀴를 잡고서 금시조를 탔으며, 구마라천(鳩摩羅天, 진
나라 말로는 동자(童子)이다)은 닭을 높이 들어 올리고 요령을 잡고 붉은 번기[幡]를 쥐고서 공작을 탔다. 이들은 모두가
하늘의 대장들이다.

문수보살[文殊菩薩]

대승(大乘)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산스크리트어 Manjusri에서 유래되었으며 문수사리(文殊師利)·만수시리(滿殊尸利) 또는 만수실리(曼殊室利) 등으로도 음
역되는데, 문수와 만수는 ‘묘(妙)’, 사리·실리는 ‘두(頭)·덕(德)·길상(吉祥)’ 등의 뜻이므로 지혜가 뛰어난 공덕
이라는 말이 된다. 이 보살은 석가가 죽은 후 인도에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하였다고 하며, 항상 반야 지
혜의 권화(權化)처럼 표현되어 왔다. 반야경(般若經)을 결집, 편찬한 보살로도 알려져 있다. 때에 따라서는 경권(經卷)을
손에 쥔 모습으로 조각되고 묘사되는 일이 많았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협시보살(脇侍菩薩)
로서 보현보살(普賢菩薩)과 더불어 삼존불(三尊佛)의 일원이 되어 있다. 그리하여 보현이 세상 속에 뛰어들어 실천적 구
도자의 모습을 띠고 활동할 때, 문수는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되기도 하였다. 즉, 이 보살은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돕기
위하여 일시적 권현(權現)으로서 보살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전설적으로 이 보살은 중국의 산시성[山西省] 우타이산[五
臺山]에서 1만 보살과 함께 있다고도 하는데, 한국에서는 강원도 오대산에 있다고 하여 지금도 그 곳의 상원사(上院寺)는
문수를 주존(主尊)으로 모시고 예불하며 수행하는 도량(道場)으로 알려져 있다.

켸켸리보라 비목키치 바치싯탄다 사마라!

미륵[彌勒]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57억 년 후에 세상에 출현하여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
현재는 윤회의 마지막 일생을 도솔천에서 설법하고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미륵의 어원적인 뜻은 자비·우정을 나타내며
제일 먼저 언급되는 경전은 슈타니파다(Suttanipada)인데 여기서는 브라만 출신의 16수행인의 한 사람으로 석가모니의 설
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는 비구로 묘사된다. 이후 미륵의 역할은 초기 경전들에서 석가모니로부터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
는 예언을 받으며, 대승경전의 발달 후에는 중생을 구제하는 미륵보살의 모습으로 차원 높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설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설정된다. 소위 미륵 6부경의 성립단계에 와서는 미륵은 석가모니불과 같은 행적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이상적 인물로 정리된다.

귀명아이단야야... 사츠바사츠타 베카야아느가...

밀교[密敎]

비밀불교(秘密佛敎) 또는 밀의(密儀) 종교의 약칭으로, 일반의 불교를 현교(顯敎)라 하는 것에 대한 대응어이다.
인도에서 5~6세기에 그 원초적인 형태가 나타나 불교가 멸망한 13세기까지 존속한 대승불교의 한 형태. 관정(灌頂)이라는
입문 의례를 받은 자에게만 실시되는 ‘비밀의 가르침’을 의미하고 '금강승(金剛乘)’, '진언승(眞言乘)’이라고도 한
다. 일본에서는 이미 나라시대에 초기의 밀교가 전래되었지만 헤이안시대 초에 당으로 유학한 사이쵸(最澄)ㆍ구우카이(空
海) 등에 의해 체계적인 밀교가 도입되었다. 그 이후 천태(天台)ㆍ진언의 밀교는 헤이안시대를 통하여 국가 수호의 역할
을 하였으며 내란을 진압하게 된 대원수법(大元帥法) 등은 칙령에 의하지 않으면 수행할 수 없었다.
밀교는 현실을 중시하고 주술적인 방법으로 신도의 세속적인 소망을 들어주는 것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국가적 재해방
지나 권력자의 질병 치유 등을 통하여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밀교승이 정치무대에서 활약한 예로는 효겸(孝謙) 천
왕의 병을 숙요법(宿曜法)으로 치유한 도경(道鏡), 후제호(後醍?) 천왕의 막부붕괴를 도와 건무(建武) 신정(新政)으로
위세를 떨친 문관 방홍진(文觀房弘眞), 덕천강길(?川綱吉)의 생모 계창원(桂昌院)의 귀의를 통해 생물 연민의 령을 권고
하였다는 호지원융광(護持院隆光) 등이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안사(安史)의 난 진압을 기원하여 당제실(唐帝室)의 절대적인 귀의를 받은 불공삼장(不空三藏)이 유명
하다. 그 후 중국에서는 당의 무종(武宗)의 폐불을 계기로 밀교가 쇠퇴하지만 원조(元朝)를 세운 몽골의 후비라이간(世
祖)이 티벳 불교 사캬파의 교주 파크파(八思巴)를 제사(帝師)로 임명한 이래 티벳 밀교가 국가수호의 종교로서 수용되었
다. 또한 명조(明朝)에도 무종(正?帝)과 같이 티벳 밀교에 심취하여 국정을 소홀히 하는 황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티벳에서는 1642년에 달라이라마(Dalai Bla-ma) 정권이 수립되었으며 이어서 밀교승이 국왕을 겸하는 제도가 성립
하였다. 만주족의 정복 왕조였던 청조는 달라이라마 정권을 책봉관계에 도입하였지만 티벳은 조공을 면제하는 대신에 밀
교의 방법에 의해 청조의 태평과 황제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특수한 관계가 탄생하게 되었다.

* 티벳밀교
라마교는 인도 후기 대승불교를 이어받고 '본교' 라는 티베트의 민족 종교와 혼합해 독특한 발전을 이룩했다. 라마교의
마술적·신비적인 요소는 본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탄트라교' 도 라마교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본교의 기원은 정령 신앙이며, 일곱 주신(主神)을 중심으로 모든 것에 머무는 신들과의 교신을 목적으로 한 종교다. 본교
에는 이런 자연신의 힘을 빌린 수많은 술법이 존재했다. 전염병을 유행시키거나 사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소생시키는 등
상당히 강력한 술법도 있었던 듯하다.
본교의 교도들은 당초 라마교와 격렬히 맞섰다. 그러나 토속 신앙에서 발전한 이 종교는 체계적인 교의를 갖고 있지 않았
기 때문에 논쟁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그후 대항책으로 정리된 교의가 라마교와 유사한 것이 됨으로써 양자는 싸울
이유가 없어졌다. 결국 본교는 라마교의 이론을 본보기로 삼았고, 라마교는 본교의 마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도에서 폭넓은 신도를 가진 탄트라교는 마음과 신체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인간의 성욕을 신에게 접근하기 위한 에너
지원으로 생각한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이 자유분방한 종교는 티베트에 들어오자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라마교는 티베트의 국교라고도 할 수 있을 만한 종교였지만, 엄격한 수행을 본분으로 했기 때문에 민중들은 그다지 좋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탄트라교가 폭을 넓히게 되었다. 게다가 라마교 내부에도 탄트라교의 이념이 파고들어 신도들까지
혼란스러워 했다. 이렇게 되자 라마교로서도 탄트라교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후, 15세기에 총카파가 종교
개혁을 행하고 교의의 정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탄트라교는 라마교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신마분쇄 추우요가
티벳밀교의 비기.
신체의 구혈(九穴)을 닫고, 전신의 기를 천정(天頂)에 집중하면 기(氣)는 닫힌 이마의 브라흐만 공(孔)을 열어 암흑 다키
니 광(光)으로 화(化)한다.

바루나[Varuna]

힌두교의 신명으로 수천(水天)이라고 한역된다. 인도최고의 성전 리그 베다에서 바루나에게 바쳐진 찬가수는 많지 않지
만, 인드라 다음으로 중요한 신이었다. 인드라가 대표적인 데바(deva, 천)인데 반해서, 바루나는 전형적인 아수라(阿修
羅)이다. 아수라는 아베스터어의 아후라(ahura)에 대응하기 때문에, 바루나의 신성은 가끔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인 아후
라 마즈다에 대응한다고 하는데, 이 대응설에 대한 반론도 있다.
바루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미트라는 이란의 미스라(Mithra)에 대응하는데, 바루나에 대응하는 아후라는 아후라 마즈
다가 아니라는 설도 유력하다. 바루나는 우주의 질서와 인륜을 지배하는 사법신이며, 천측의 수호자이다. 그는 스파이를
이용해서 사람들의 행위를 감시해서, 리타에 배반하는 죄인을 벌하고 탈수병에 걸리게 하는데, 회개하는 자에게는 자비롭
다. 처음부터 물과 관계가 깊은데, 후대가 되면 단순한 물의 신, 해상의 신이 되며, 서방을 수호한다고 보았다.

옴 아반 핫타야 소바카!

바알[Baal]

레메게톤에 나오는 72명의 악마 중 하나. 원래는 고대 시리아나 팔레스티나의 풍요의 신으로, 바알이 죽으면 식물이 마르
고 부활하면 식물은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중세 유럽의 악마 중에서도 대표적인 존재로 간주되었고 고양이와 두꺼비와
인간 남자의 머리를 지닌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바알 자신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는 능력을 가졌으며
그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준다. 지옥에서는 동쪽을 지배한다고 한다.

바유[V?yu]

고대 인도신화에 나오는 바람의 신.
바람을 다스리는 풍신(風神)으로서, 힌두교 성전(聖典) 리그베다의 찬가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대표적인 자연신이다. '바
타(V?ta)', 또는 '파바나(Pavana)' 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부미(땅), 잘라(물), 아그니(불), 순냐(에테르)와 함께
인도에서 판차 마하부타(pancha mahabhuta)라 부르는 '다섯 대(大)요소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손에 활과 화살, 낙뢰,
깃발 등의 상징물을 들고 있으며, 항상 가젤 영양을 탈 것으로 이용한다.
케나 우파니샤드(Kena Upanishad)에 따르면, 모든 것을 날려버릴 힘이 있어서 적을 격퇴하고 약자를 돕는다. 또 사람에게
명성·자손·가축·재산 등을 가져다준다 하여 서북방을 지키는 방위신 역할을 한다. 후대에는 불교에 수용되어 십이천의
하나인 풍천(風天)이 되었다. 이후 시대가 지나면서 지위가 낮아졌지만 인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영웅 비마와 라마야
나의 원숭이 장군 하누만의 아버지로 간주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옴 바사라 니라사가!
옴 바사라 니라사가 풍천신자운박(風天神紫雲縛)
옴 바사라 니라사가 풍천신열와진(風天神裂渦陣)
옴 바사라 니라사가 풍천신오의선회열풍진(風天神奧義旋回裂風陣)

반야보살[般若菩薩, Prajn?p?ramit?]

정확하게는 반야바라밀보살(般若波羅蜜菩薩)이라 한다. 지혜(prajna 반야)를 상징하는 보살로, 밀교에서는 불모(佛母)라
고 하는 여성존(尊).

베엘제붑
베엘제붑(히브리어: ????????????)은 에크론의 도시 팔레스타인에서 숭배받았던 신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 시절 다신교도인 셈족의 신으로 유명한 바알을 가리키는 명칭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지만, 둘 사이에는 작지만 중요
한 차이점이 있다. 일신교도인 유대인 사이에서는 사탄을 달리 이른 말로 종종 사용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멸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이 이름은 나중에 악마 또는 마신의 이름 가운데 하나로 종종 베엘제불과 번갈아가며 등장하게 된다.
베엘제붑의 본래 이름은 바알제불(Ba'al Zebul)이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높은 저택의 주인’ 또는 ‘하늘의 주인’
을 뜻하는데, 훗날 사람들은 이 명칭이 솔로몬 왕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바알제붑(Ba‘al Zebub), 즉 히브리어로 ‘파리
의 왕’을 뜻하는 말로 바꾸었다. 제붑(zebub)은 히브리어로 파리를 뜻한다. 이후 중세 마법책에 등장하는 베엘제붑은 거
대한 파리의 모습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고대 사람들은 파리라는 생물이 악령 그 자체거나 혹은 사람에게 악령을 옮기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파리가 꾀었던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데다,
썩은 고기나 쓰레기에 떼 지어 몰려드는 파리떼를 보고는 정말 불길하고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죽음의 냄새’와 ‘병을 유발하는 더러움’이 있다. 게다가 파리들은 시체의 유골에서 태어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사
람들은 파리를 회피했고, 또 그 때문에 신들에게 산 제물을 바쳤다. 이 불길한 파리들을 부하로 거느리는 이가 바로 베엘
제붑이다.
바알 즈붑 또는 베엘제붑의 이름은 구약성경의 열왕기 하권에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8대 왕인 아하즈야는 병에 걸려
괴로워하던 중에 지중해 연안에 있는 가나안의 도시 에크론의 신 바알 즈붑에게 사람을 보내 신탁을 받아오도록 했다.
아하즈야는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 옥상 방의 격자 난간에서 떨어져 다쳤다. 그래서 그는 사자들을 보내며, “에크론의 신
바알 즈붑에게 가서 내가 이 병에서 회복될 수 있는지 문의해 보아라.” 하고 일렀다. (2열왕 1,2)
그것을 안 야훼의 명령을 받고 예언자 엘리야는 왕의 사신에게 야훼의 말을 전했다.
“이스라엘에는 하느님이 없어서, 에크론의 신 바알 즈붑에게 문의하러 가느냐? 그러므로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가 올라가 누운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을 것이다.” (2열왕 1,3-4)
즉, 이스라엘의 신을 무시하고 사신(邪神)의 신탁을 받으려 하는 아하즈야 왕에 대해 야훼가 분노하여 죽음의 계시를 내
렸던 것이다. 사신에게 이 말을 전해 들은 아하즈야 왕은 엘리야를 체포하려고 쉰 명의 부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엘리야
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전멸시켰다. 그리고 야훼의 예언대로 아하즈야 왕은 재위한 지 불과 2년 만에 서거
했다.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 등에는 예수가 베엘제붑을 ‘마귀의 우두머리’로 비난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예수가 병
자들을 찾아가 고치고 다닐 때의 이야기다. 악령에게 홀려 눈이 보이지 않고 말도 할 수 없게 된 한 남자가 소문을 듣고
예수를 찾아왔다. 예수가 남자에게 붙은 악령을 쫓아내자 입과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감격
하여 감사의 말을 외쳤다. 그러자 바리사이 파가 나서더니 “저자는 마귀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마귀들을 쫓아내지 못한다.”하고 예수를 험담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예수가 대답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어느 고을이나 집안도 서로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한다. 사탄이 사탄을 내쫓으
면 서로 갈라선 것이다. 그러면 사탄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
낸다면, 너희의 제자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마태 12,25)
즉, 마귀들의 일을 그들의 우두머리인 베엘제불(베엘제붑)이 방해할 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예수는 마귀를 퇴치하는 데
같은 편인 마귀의 힘을 빌릴 리가 없으며 하느님의 힘으로 한 것임을 설명했다.
베엘제붑은 일반적으로 지옥에서 상당히 높은 계급에 속한 악마로 묘사된다. 그는 원래 케루빔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유명한 오컬티스트 요한 위루스에 따르면, 베엘제붑은 지옥의 황제 루치펠의 부관으로 파리 군단을 통솔한다고 한
다. 17세기의 구마사제 세바스티앵 미카엘리스도 저서 훌륭한 역사(1612)를 통해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 그는 베엘제붑이
루치펠과 레비아탄과 더불어 가장 걸출한 세 명의 타락천사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18세기 무렵에는 베엘제
붑, 루치펠, 아스타롯이 사악한 삼위일체를 이룬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베엘제붑은 칠죄종 가운데 하나인 폭식을 유도하
는 악마이기도 하다.
존 밀턴은 베엘제붑을 루치펠 다음가는 악마들의 지도자로 보았다. 그는 실낙원에서 “루치펠을 빼고는 아무도 그(베엘제
붑을 말함)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없다.”라고 표현하였다. 그가 묘사하는 베엘제붑은 왕자다운 풍모를 갖추고 있
다. 한 나라를 짊어질 만큼 장중하고 사려 깊으며 우국 지정에 가득 넘친 모습이다. 더욱이 현자다운 풍모로 아틀라스를
방불케 하는 늠름한 어깨를 갖췄으며, 왕자만이 갖는 위엄과 비장함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그가 수하의 마귀들을 앞
에 두고 연설할 때는 주위가 고요해지면서 모두가 일제히 눈을 고정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보회향게(普廻向偈)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당생극락국(當生極樂國) 동견무량수(同見無量
壽)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부동명왕[不動明王]

밀교의 대표적인 명왕(明王).
부동여래사자(不動如來使者)라고도 한다. 원명은 아시알라(Ac?la)라 하는데, 힌두교 시바신의 이명을 불교가 그대로 채택
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명왕에게 사자의 성격을 부여하였다. 후에는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사자로써 번뇌의 악마를 응
징하고 밀교 수행자들을 보호하는 왕으로 간주되었다. 오른손에 검을 쥐고 왼손에는 삭(索)을 쥐었으며, 부릅뜬 눈과 뾰
족한 어금니에 윗입술을 깨문 무서운 분노신(忿恕身)을 하고 있다. 맹염(猛炎)이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악마를 박멸하는
위력을 나타낸 것이고, 동자형(童子形)의 몸의 모양은 여래의 동복(童僕)이 되어 밀교 수행자들의 봉사자가 되려는 서
원(誓願)에 따른 것이다. 조상(造像)은 히말라야 산록을 뛰어다니는 목동을 모델로 했는데, 불상 중에서 가장 인도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 명왕부(明王部)의 대표격으로서, 7세기 후반 대일경(大日經)이 성립되자 밀교 오대명왕(五大明
王)의 주존(主尊)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 부동명왕화계주(不動明王火界呪)
부동명왕의 분노의 불길로 일체세계의 부정을 태운다.

나우마리사라바 타타카테비야리 사라바모쿠케비야리 사라바타타라타... 타라타센다... 옴키키키키 사라바히사남훔 타라타
캄문!
나우마리 삼만다 바사라 탐캄!
나모삼만다 아자라야타 부동화염명왕(不動火炎明王) 바사라 탐캄!

브엘(Buer)

성진총통(星振總統). 불가사리의 모습, 혹은 별 처럼 빛나는 은색 피부를 한 켄타우로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학과 철
학과 논리학을 인간에게 가르치며, 손으로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병과 상처를 고칠 수 있다. 솔로몬왕에 의해 봉인된 72기
둥의 마신의 하나.

사교검(獅咬劍)
스스로의 의지로 그 주인을 택하는 검.

사탄[Satan]

유대교(敎)·그리스도교에서 악마를 가리키는 말.
헤브라이어(語)의 ??사탄?n에서 유래하였으며 ‘대적하는 자’라는 뜻으로 쓰인다. 보통명사의 ‘적(敵)’으로 번역하여
개인 또는 국가에 반대하는 자, 즉 원수가 되는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민수기 22:22, 32, 사무상 29:4, 사무하 19:22, 열
왕상 5:4, 11:14, 23, 25, 시편 109:6). 이것이 변하여 초자연적인 존재로서의 대적자, 즉 악마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구
약성서에서는 초자연적인 존재인 하느님의 아들의 하나로서 욥에게 대항하였고(욥 1:6∼2:7), 또 야훼신 앞에 선 여호수
아에게 대적하였다(스가랴 3:1∼2). 신약성서에서 보여주는 초자연적 ‘악마’로서의 사탄의 관념은, 선악 이원론(二元
論)의 입장에 있는 페르시아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를 시험하는 자로 나타나고(마태 4:1), 하느님의 도(道)가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자(마르 4:15), 허
위(사도 5:3, 묵시 12:50), 살인의 선동자(요한 13:27),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한 형벌의 기구, 끊임없이 집요하게 사람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멸망으로 인도하려 하며, 또한 많은 사람들을 그리로 끌고 가는 자로 나오며, 이것을 ‘악마
의 자식’ ‘사탄의 무리’ 등으로 부른다. 그러나 사탄도 마지막에는 하느님에 의해 기속(羈束)된다(루가 10:18, 묵
시 20:20). 사탄은 공중에서 악마의 왕국을 지배하고 인간생활 위에 악마적인 감화를 미치게 하는 자로 믿어졌다(에
페 2:3). 악마·마귀는 사탄의 호칭이기도 하다. 이슬람교(敎)에도 그리스도교·조로아스터교 등의 영향을 받아 악을 행
하는 샤이탄(사탄) 개념이 있다. 사탄은 옛날부터 문학과 회화(繪畵) 등에서 많이 묘사되었는데, 루시페르·메피스토펠레
스 등은 유명하다.

상제회[上帝會]

19세기 중엽 중국에서 태평천국(太平天國) 운동의 바탕이 된 그리스도교적 종교결사.
정식명칭은 배상제회(拜上帝會)이다. 1843년 홍수전(洪秀全)이 광둥성[廣東省] 화현[花縣]에서 창시하였는데, 주로 광시
성[廣西省]의 객가(客家)를 중심으로 빈농·광산노동자·유민들 사이에 퍼졌다.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체제와 날카롭
게 대립, 우상숭배와 공자(孔子)에 대한 배례를 엄금하고 미신과 아편을 배격하며, 모세의 십계(十戒)를 본받아 금욕적인
계율의 실천운동을 폈다. 광시에서 일으킨 우상파괴운동을 계기로, 청왕조를 악마라 일컬으며 악마타도의 혁명운동을 전
개하였다.

샴발라[Shambhala]

멀리 히말라야 산맥 북쪽에 현자들이 사는 성스러운 나라 샴발라가 있다. 연꽃과도 같은 국토 한가운데는 위대한 왕이 사
는 도시가 찬란하게 빛나고 주민들은 평온하고도 깨끗한 나날을 보낸다. 그들은 명상에 잠긴 생활 속에 '깨달음' 을 얻는
것을 다시없는 행복이라 생각한다. 나중에 온 세상이 '악(惡)' 으로 뒤덮였을 때 이 나라의 왕이 군대를 파견해서 그것을
무찌를 것이며, 그 후 지상에 영원한 낙토(樂土)가 건설된다고 한다.
서구 사람들의 척도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성역, 그 신비의 나라 티베트의 이미지를 더욱 심오하게 만드는 전설이 있
다. 그것은 '샴발라' 왕국의 존재이다. 샴발라란 티베트의 북쪽 어딘가에 있다는 나라 이름이다. 그 나라의 도시에는 황
금의 불탑이 줄지어 서 있고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다고 한다. 그 땅은 깨달음을 얻은 왕이 통치하며 주
민들 또한 깨달음의 경지에 가까워진 사람들이다. 샴발라에서는 불교의 가장 심오한 가르침이 이루어지고 있다. 말하자면
순화된 정신이 모여 있는 땅이며 현인들이 다스리는 이상향이다.
샴발라 전설에는 '예언' 도 함께 들어있다. 전설에 의하면 세상이 전쟁과 욕망 속에서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때
이 나라의 정예 부대가 출동하여 세상의 모든 악과 싸워 이겨서, 끝내는 세상의 악이 근절되고 사람들은 영원히 해방된다
고 한다.
그런데 샴발라가 지금껏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던 이유는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산맥이 이 낙토를 감싸듯이 둥그렇게 둘
러싸고 있어 외부의 '부정(不淨)' 한 것들을 일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산맥의 영향으로 국토의 상공은
항상 안개에 싸여 있기 때문에 비행기 같은 것으로 다가가려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금세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사와 답사는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지역을 관찰할 수 있
는 인공위성으로 빈틈없이 조사했는데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샴발라란 불교의 이념으로만 존재하는 '가
공의 낙원' 일까?
티베트의 승려는 수수께끼에 싸인 미소를 띠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니오, 샴발라는 분명히 이 지상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과학적인 조사에 의한 결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더 파고들어서 물어보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샴발라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탐색 방법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유연한 마음과 맑게 정화된 영혼입니
다."
어떤 경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샴발라를 향하는 자 앞에는 끝없이 계속되는 황야와 사막, 험난한 산들을 넘어야 하는 신비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수
없이 많은 고난을 극복한 자에게만 보석처럼 귀한 '깨달음' 이 얻어지는 것이다. 충분한 수행을 경험한 자이거나 또는 이
신비의 나라에 초대받은 자에게만 샴발라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그 외의 사람들은 황량한 풍경만을
볼 수 있고, 그곳에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 뿐이다."
최근까지 티베트는 두꺼운 베일에 싸인 신비의 나라였다. 그 이유로는 무엇보다 우선 히 말라야를 비롯한 세계 최고봉의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지형적 특수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를 받아들여서 탄생한 '라마교' 라 불
리는 티베트 불교가 오랜 세월 동안 국교로 자리해왔다는 점도 있다. 지금도 신앙에 바탕을 둔 생활양식, 사고, 문화를
굳게 지켜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티베트의 신비성을 한층 더하고 있다. 금세기에 들어서 이 나라는 점차 서구 사회에 문을
열고 흥미로운 여러 가지 일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티베트의 문화와 관습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오히려 이 나라의 신비
성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티베트에 관한 일들 중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으로는 오체투지(五體投地)나 조장(鳥葬), 또는 전생활불(轉生活佛)같
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오체투지라는 것은 온몸이 땅에 닿도록 납작 엎드려서 기도하는 방법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수
백 킬로미터나 되는 성지순례의 길을 온몸으로 땅바닥에 엎드려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불쑥불쑥 솟아오른 바위
투성이의 산길을 그렇게 오르는 것이다.
조장이라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을 하늘로 돌려보내기 위한 의식이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바위 위에서 시신을 토막내고
뼈를 부순다. 여기에 그들의 주식인 보릿가루 참파를 섞어서 잘 반죽해둔다. 그러면 곧이어 매 같은 맹금류(猛禽類)가 공
중에서 날아와 이 '식량' 을 배불리 먹어치운다. 이렇게 죽은 사람의 몸을 새를 통해 하늘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전생활불' 에 대해서는 현재 인도에 거점을 두고 활약하고 있는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를 '살아 있는 부처' 로서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빌어 몇 번이고 이 세상에 다시 태
어나는 관음보살이라 믿고 있다. 이 '살아 있는 부처' 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나는 ○○지방에 다시 태어날 것이다"
라는 유언을 남긴다고 한다.
몇 년 후에 지도자들은 '살아 있는 부처' 가 예언한 지방에 가서 찾기 시작한다. 이윽고 후보자로서 몇 명의 아이들을 데
리고 돌아와 승려로서의 교양을 쌓기 위해 독경과 예절 같은 여러 가지 일들을 가르친다. 후보자가 다시 한 두 명으로 압
축되면 예전에 '살아 있는 부처' 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을 다른 물건들과 함께 보여주며 그 중에서 물건을 고르게 한
다.
대개의 경우 품행이 뛰어나고 지도자로서 적합한 소질을 가진 사람이 틀림없이 살아 있는 부처의 유품을 고른다고 한다.
이것이 '다시 태어남' 의 증거가 되어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살아 있는 부처' 의 환생으로서 축복이 넘치는 인생
을 시작한다. 참고로 지금의 달라이 라마는 제14대이다.
물론 여기서 소개한 이야기들은 옛날이야기나 신화가 아니다. 지금까지도 티베트 사람들은 신앙에 묻혀서 생활하고 있다.
예전의 수도인 라사를 비롯해서 티베트의 주요한 지역들은 이제 중국의 일부가 되었고 마오쩌뚱(毛澤東)이 일으킨 혁명과
뒤이은 문화대혁명의 영향도 있어서 신앙 생활이 크게 규제되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신앙을 생활의 기반으로 하는
티베트 사람들의 자세는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오늘날 티베트 문화의 세력권은 동쪽으로는 중국의 운남성(雲南省), 청해성(靑海省) 부근까지, 서쪽으로는 인도와 파키스
탄의 일부에 이르며 부탄, 시킴, 네팔 등을 남쪽 끝으로 하여 북으로는 몽골에까지 광대한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
샴발라 왕국에 대한 전설의 기원은 7세기 무렵의 티베트 불교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티베트 불교의 집대성인 티
베트 대장경에는 입적(入寂) 직전의 석가가 당시 샴발라 왕국의 국왕이었던 수찬드라(찬드라바드라 또는 다와상보라고도
한다 - 옮긴이)에게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고매한 가르침으로 받드는 칼라차크라 탄트라(K?lacakra tantra: 時輪經)를 설
법했다고 전한다. 이 경전에는 천문학, 점성술, 역법(曆法)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고도의 철학적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
다.
가르침의 가장 심오한 부분으로 시간의 노예인 인간이 진정한 '불멸' 을 찾기 위해 소위 '열반' 이라는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이 씌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경전의 글자만을 쫓고 있으면 결코 본래의 뜻에 이를 수가 없다. 티베트 불교에서 말하
는 '가르침' 이라는 것은 스승에게 그 자격을 인정받은 제자가 스승에게서 직접 입으로 전해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
한 밀교적 내용을 지닌 경전은 많지만 칼라차크라 탄트라는 그 중에서도 특히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한다.
티베트에는 매장경(埋藏經)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어느 시기에 기록된 교리가 비밀리에 숨겨져 있다가 그 가르침이 필요
할 때가 되면 갑자기 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경전을 일컫는 말이다. 여러 귀중한 경전이 가장 적합한 시기에 발견되어 그
시대의 지침이 되어 각광받는 것이다. 물론 칼라차크라 탄트라도 그런 매장경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샴발라 왕국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 나라는 이 세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존재하고 있었
다고 한다. 샴발라를 상징적으로 도형화시킨 만다라(曼陀羅)에 의하면 그 땅은 불교의 성스러운 꽃인 연꽃 모양을 하고
있다. 수도를 중심으로 산맥이 주변 지역을 가르고 있어 그것이 여덟 장의 꽃잎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꽃잎 한 장씩마다
각각 열두 지방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다 합치면 아흔여섯 개의 작은 고을들이 수도를 빙 둘러 싸고 있는 모양이 된다. 각
각의 고을에는 수령이 있는데 그들은 당연히 샴발라 왕에게 충성을 다 바치고 있다. 고을에는 저마다 중심지에 황금의 불
탑이 있으며 거리는 찬란하게 빛나고 교외는 잘 손질된 정원같이 나무들이나 풀꽃들이 자라고 있다.
이 나라의 수도 이름은 칼라파다. 이 도시는 주위 지역들을 능가할 만큼 화려하다고 한다. 수도의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달 모양을 한 호수가 있는데 물가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물새들이 즐거이 노닐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수도 남쪽
으로는 '쾌적한 숲' 이라 불리는 향기로운 자작나무 숲이 우거진 정원이 있다. 여기에는 초대 샴발라 왕이 건립했다는 거
대한 만다라가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수도 북쪽으로는 열 개의 바위산이 천연의 요새가 되어 이 도시를 지켜주고
있다. 이 바위산들에는 그들의 성자나 붓다, 보살을 섬기는 호화로운 석굴이나 사원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압권은 이 도시 중심부에 있는 궁전일 것이다. 금은 보석으로 치장된 건물은 한밤중에도 찬연하게 빛
을 뿜어낸다. 궁전의 상징인 불탑 끝은 순금으로 되어 있고 동체 부분은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다. 궁전 주위는 산
호 조각상들이 둘러싸고 있고 입구는 에메랄드와 사파이어로, 처마는 순금으로 되어 있고 내부의 바닥과 천장에는 온갖
종류의 수정들이 박혀 있다. 궁전 한가운데에는 머리가 여덟 개 달린 사자 조각이 지키는 황금 보좌가 놓여 있다.
이 나라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살펴보자. 그들은 산스크리트로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백의 긴 옷을 입
고 머리에는 하얀 천을 두르고 있다. 곡식의 수확도 순조로워서 그들은 배고픔을 모르고 병으로 고생하는 일도 없다고 한
다. 모든 사람들이 금은 보석 같은 재산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매우 평화롭게 지내며 싸움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법률도 있기는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형벌이 시행된 적이 없다. 어느 라마(고승)
는 샴발라 백성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에는 '악' 이라 불리는 것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쟁, 적의, 질투, 교만 등과 같은 말조차 그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러한 혜택 받은 환경 속에서 안일하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열심히 수행하는 불교 신자로서
하루하루 수행에 정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샴발라 왕국의 재산, 예를 들어 금은이나 각종 보석은 모두 왕국 안에서 얻은 것이라 한다. 또한 이 나라는 고도로 발달
된 문화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티베트의 독특한 의학 체계, 구체적으로는 해부학, 생리학, 진단
기술, 전염병 예방 대책 등과 같은 것은 모두 샴발라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이 땅의 천문학 또한 뛰어난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수도 칼라파에 있는 궁전에는 수정을 사용해서 만든 특수한 천창(天窓)이 있다고 한다. 이는 바로 천체 망원경을 연상시
키는 것이다. 또한 왕은 특수한 '거울' 을 가지고 있어서 몇 킬로미터 밖에서 일어난 일들을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샴발라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명상' 이다. 그들은 명상이라는 정
신적 훈련을 통해서 '영력(靈力)' 을 강화하여 육체가 지닌 모든 가능성들을 추구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우주와 일체가
되는 '깨달음', '해탈' 에 있지만 그것을 위해 수행하는 과정에서 소위 초능력이라는 힘을 얻게 된다.
티베트 불교의 수행자들은 예지 능력, 텔레파시, 투시 등과 같은 소위 ESP(초감각적 지각) 등에 익숙한 존재다. 물론 질
병에 대한 치유 능력도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비행 능력이나 엄청난 속도로 땅을 달
리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능력들은 금세기에 들어 서양인이 직접 목격한 사례도 있다.
서양에서 '제3의 눈' 이라는 단어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는 라마승이 수행을 쌓으면서 이마 한가운데에 특수한 '눈'
을 개안시킨다는 것이다. 이 '눈' 은 투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며 다시 그 능력을 높이면 '영시(靈視)' 라 하여 영
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초현실적인 시각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샴발라 왕국의 존재를 일반 사람들이 발견할 수 없는 까
닭은 아무런 수련도 거치지 않은 사람의 단순한 육안으로는 보일 리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꿔 말하면, 티베트 사람들은 현재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상이 참된 현실의 모습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착각이고 일그러진 단편이지 본질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꿈이나 환상이라 부르는 바로 그런
것들 속에 현실의 참된 모습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 위해 '수행' 을 거듭한다. 이것이
'영혼' 을 정화시키는 과정이다.
여기서 '영혼'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 보자. 간단하게 말하면 '영혼(靈魂=spirit, soul)' 이란 육체 저 깊숙
이 숨어 있는 초자연적인 힘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들
이 감각적으로 이 힘을 시용하고 있다. 육감이나 직감, 가슴이 울렁이거나 두근거리는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고대 사
람들은 이러한 능력을 신비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고 익숙하게 사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 여러 가지 지적 능력을 얻게 되면서 그런 초자연적인 능력은 모습을 감추었다. 사고, 추리, 지식과 같은
소위 지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영혼' 의 존재가 불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영력을 높인다', '영을 정화시킨다' 는 것은 머
릿속에서 진행되는 생각을 중단시키고 자신의 '영혼' 그 자체로 사물을 바라보는 행위를 뜻한다. 그렇게 해서 일체의 선
입관을 배제하고 이해관계나 가치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순수하게 그 자체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행은 일본에서 밀교 계통의 승려들이 하는 '관상(觀想)' 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최근의 두뇌
생리학 연구에서 이런 종류의 수행이 뇌파를 변화시키거나 우뇌를 활성화시키는 등, 인간의 뇌가 본래 가지고 있는 숨겨
진 능력을 끌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은 현실 생활에서 자신의 뇌를 전체 용량의 몇 퍼센트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숨겨진 능력' 이 발굴
되면 엄청나게 커다란 힘을 발휘하게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아마도 샴발라에 산다는 현인들은 이러한 능
력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는 뛰어난 전문가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샴발라에서는 금은 보석이나 명예가 아니라 뇌를 훈
련시켜서 얻은 '영시' 능력이 중요시된다는 말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샴발라의 백성들도 죽지 않고 영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생을 원치 않을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고 그 후에
환생하는 것으로 자신의 영혼을 더욱 정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들의 수명은 대략 100년 정도라고 한다. 뛰어난 자연환
경과 더불어 자기 치유력(自己治癒力)을 발휘할 수 있기에 이만큼 장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신비의 왕국 샴발라는 10세기 이후 지금까지 티베트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샴발라로
가는 길에 대한 '안내서' 가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가 환상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데다가 철학적인 난해함까지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글들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 그런 글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을 쓴 사람은 16세기의 티베트 왕인 림품파이다. 그는 '학자왕' 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학식이 풍부했던 인물로서 시를 쓰는 데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사후
에 샴발라에 환생했다고 하며, 이 지식의 사자(1557)라는 책은 그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사자에게 맡긴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샴발라로 가서 이 편지를 아버지께 전하거라. 진리의 말씀이 사물의 이중성이라는 산들을 정복하여 너를 인도하고, 앞길
을 가로막는 장애물 속에서 너를 도와 극복하게 해주기를 빈다.
...우선 라사를 출발해서 서쪽을 향해서 시가체(Xigaze: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남부)로 가거라. 그곳에 있는 사원에서 여
행이 성취되기를 기원한 다음 중앙 티베트를 지나 네팔로 가는 길을 걸어가거라. 그런 다음 북서 방향으로 진로를 잡아
성스러운 카일라스산(Kailas: 히말라야 산맥의 북쪽, 카일라스 산맥의 주봉(主峰). 해발 6,714미터)에 오르거라. 이 산에
는 황금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는 16나한 중 하나인 앙가타 존자(尊者)가 천 명의 성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이면 성자들이 기도하는 음악 소리가 들릴 것이다.
다시 북서쪽으로 나아가면 라다크(Lad?kh: 인도 북부. 지금도 라마 사원이 많이 있다)을 지나 카슈미르(Kashmir: 인도북
서부에서 파키스탄 북동부에 걸친 넓은 고원 지대)에 도달할 것이다. 이 지방 마을들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라. 길은 점점 험난해질 것이다.
미로처럼 구부러진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몇 갈래 작은 길과 마주치게 된다. 여기에서 길을 잘못 들면 산의 계곡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방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석가모니의 가호를 기원하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다. 이 산간
지방을 무사히 통과하면 박시크의 나라(장소 불명. 타지크[Tadzhik]나 아프가니스탄 북부로 추정된다)로 나올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여행 안내문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여로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그
것은 가혹한 조건 속에서 겪게 되는 고행과도 같은 내면의 갈등, 또는 정신을 극한까지 순화시키는 수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조건이란 험난한 자연 환경과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극심한 불안감과 절망감에 시달리는 일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기마 민족으로 머리에는 하얀 터번을 둘렀고 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호적인 사람
들이므로 결코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곳을 떠나 평원이 보이거든 북쪽으로 나아가라 며칠 동안 걸어가다 보면 하늘에
닿을 듯이 높게 자라난 나무들이 울창하고 깊은 숲이 나타난다. 그 숲속은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워서 길을 비
춰줄 빛도 없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이윽고 앞쪽 멀리에 물살이 거친 강이 나타난다. 그것이 시타강이다. 하얀 거품을 내며 진노하는 것처럼 흘러가는 거친
물살을 조심해야 한다. 이 물이 몸에 닿으면 순식간에 온몸이 돌로 변하고 만다. 강가에 있는 나무를 이용해서 단숨에 강
을 뛰어넘어야 한다. 건너편에는 산기슭의 평온한 경치가 보일 것이다. 푸른 초목이 우거져 있고 코끼리가 놀고 있다. 자
작나무가 향기를 내뿜고 있고 시원한 나무 그늘도 있다. 황금색 열매가 가지마다 열려 있으므로 그것을 따먹으면 된다.
암사슴이 달콤한 이슬과도 같은 젖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 땅은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에 있는 유일한 휴식처다. 푹 쉬면
서 힘을 기르도록 하라.
그 다음에는 맹수들이 지배하는 숲이 있다. 그들은 허기져서 눈을 새빨갛게 뜨고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길가에 물어뜯긴
뼈들이 흩어져 있어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새가 없다. 왜냐하면 이 숲에 사는 맹수들의 정체는 악마나 마녀, 요괴
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밤에는 맹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낮이 되면 인간으로 변신해서 사람을 덮친다. 그러나 그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자비의 마음을 쏟아붓는 것만이 그들의 노여움을 가라앉힐 유일한 방법이다.
숲을 지나면 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그 다음에는 사막과 험난한 산, 큰 뱀의 둥지, 새빨간 모래가루가 불어 닥치는 땅,
천둥과 번개의 들판으로 고난의 극치를 이루는 여행은 계속된다. 이윽고 신비한 땅에 도달하게 된다. 보석으로 치장된 저
수지나 아름다운 안뜰이 있는 집들이 눈에 띌 것이다. 이 땅의 백성들은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존재들이다.
집집마다 신비한 매력을 가진 처녀들이 살고 있다. 그녀들은 다키니(Dakini: 탄트라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낳는 지
혜)에 도달한 소녀들이다. 따라서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즐기도록 하라. 그 쾌락은 육체의 감각을 훨씬 초월한 높
은 곳으로 그대를 인도할 것이다. 안에 있는 열이 육체를 거슬러올라가서 머리 꼭대기에 도달하면 그대의 몸은 깨끗하게
정화되어 '금강불괴(金剛不壞)의 행복한 신체' 로 바뀔 것이다. 이런 경이로운 몸을 얻어야만 샴발라에 갈수가 있는 것이
다."
이 부분은 인도에서 시작된 탄트리즘(Tantrism)의 영향을 받았음을 짙게 풍기고 있다. 소녀들과의 성 행위로 눈뜨는 '내
부의 열' 이란 탄트리즘의 중요한 교의인 신비한 우주 에너지 '샥티(Sakti)'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열'
이 몸을 거슬러올라와서 머리 꼭대기에 도달한다는 것은 요가 수행의 최종 목적인 우주와 한 몸이 되는 것, 또는 '해탈'
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그 다음부터는 더욱 아름다운 광경이 전개된다. 여행을 진심으로 즐기도록 하라. 그러고는 마지막 난관이 나타난다. 눈
앞에 거대한 바위벽이 길을 가로막고 있을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눈 덮인 산맥이다. 여기서 절망해서
는 안 된다. 붓다께 자비를 빌도록 하라. 그러면 길은 열린다.
이윽고 성자들이 발목에 찬 황금종을 울리면서 그대 앞에 나타난다. 그들은 신들이 사용하는 것 같은 가마에 그대를 태우
고는 가볍게 하늘 높이 뛰어오를 것이다. 어느새 그대는 드높이 치솟아 있는 산맥보다 훨씬 높은 곳을 날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그리던 샴발라에 도달한다. 눈 속에 파묻힌 산들 사이의 계곡에 있는 그 도시는 마치 큰 바다에 떠
있는 진주와도 같이 기품이 넘치고 맑게 보일 것이다. 하늘에서 한줄기 빛이 그대를 비춘다. 그 순간 길었던 여로의 고통
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행복에 찬 감격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스며든다. 그러면 그대의 정신과 육체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싱싱하고 활력에 넘치게 될 것이다."
대략 이와 같은 내용이 '안내서' 에 씌어 있다. 난해한 부분은 생략했으나 그래도 곳곳에 우의적이고 비유가 가득 담긴
표현들이 있다. 이 문장을 문자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 해도 결코 샴발라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적 이
미지의 여행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샴발라 전설'이 서구 사회에 알려진 것은 17세기다. 예수회의 전도사인 F. 카프랄이나 E. 카셀라의 보고서에 의해 처음
으로 이 '비밀의 왕국' 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길을 탐색하려고 티베트로 들어갔
는데 그때 이 전설을 들었다고 한다.
처음에 이들이 쓴 문서에는 샴발라의 이름이 '셈발라(Xembala)' 로 적혀 있다. 유럽 사람들이 티베트에 대해서 지니고 있
는 밀교(密敎)와 비경(秘境)에 대한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19세기 이후에 샴발라 전설은 여러 방면에서 이용되었다. 러시아 태생의 블라바츠키(H. P. Blavatsky: 1831~1891) 부인이
라는 초능력자가 등장하여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19세기 최고의 신비 사상가라고 일컬어졌는데 미국에서
신지학협회(神智學協會)를 설립하여 동서양의 신비 사상을 결합하는 '신사상(新思想)' 을 제창했다. 그녀 자신의 말에 따
르면 그녀의 능력은 샴발라의 현인인 마하트마에게서 온 것이며 마하트마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신지학 운동' 을 실천하
고 있다고 했다.
20세기 중반 무렵에는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화가이자 사상가인 니콜라스 뢰리치(N. K. Roerich: 1874~1947)가 티베트 학
자들을 이끌고 중앙 아시아, 티베트 고원, 시킴 등을 탐색했다.
그는 본격적인 샴발라 사상을 바탕에 둔 이상 사회 실현을 목표로 하여 국제적인 문화재 보호와 평화를 위한 운동을 전개
했다.
이러한 운동의 배경에는 '샴발라의 예언' 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 예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왕국의 역사와 더
불어 전해져 내려온다. 우선 샴발라의 역대 왕들은 각각 100년씩 왕국을 통치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바깥세상(우리가 사는 이 세계)이 점차 악화되어간다. 사람들은 도덕과 믿음을 잃고 힘을 얻기
위해 권력을 강화시키며 전쟁을 일으킨다. 세상에는 탐욕과 불성실, 악덕이 판을 치고 물질주의라는 부패한 사상이 유행
한다. 이러한 사태는 더욱 진행되어 드디어 세계 규모의 전쟁으로 발전해서 악의 화신과도 같은 왕이 세계를 정복한다.
그런데 그때 샴발라 왕국을 감싸고 있던 안개가 걷히고 왕국의 모습이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완벽한 세계 제패를 꿈꾸는 '악의 대왕' 은 이 샴발라 왕국에 대해서 적개심을 드러내며 공격을 시작한다. 그때의 샴발라
왕은 제32대 루드라 챠클린인데 그는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임한다. 이 싸움은 '최후의 대전' 이라 불린다. 이때
샴발라의 강력한 군대는 '악의 대왕군' 을 격파하고 세상을 해방 시킨다.
그후부터는 일찍이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완벽한 평화' 와 '가장 풍요로운 시대' 가 시작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굶주
리는 일이 없고 질병이나 빈곤을 찾아볼 수 없으며 100세까지 장수하게 된다. 말하자면 온 세상이 샴발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시대에 활약했던 위대한 성인들과 현인들이 다시 살아나서 그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널리 전수한다. 이러한
황금시대는 그후로 천 년 동안 계속된다고 한다.
샴발라 왕국이 세상을 향해 그 두꺼운 베일을 벗는 때는 도대체 언제일까? 바꿔 말하자면 제32대 왕은 언제 출현하는가라
는 점에 대해서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다. 대부분의 티베트인들이 믿고 있는 설을 취합하면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200~500년 후가 된다.
샴발라 전설은 주로 서양인들에 의해 세계적으로 소개되어 왔다. 그러므로 샴발라를 찾는 탐색도 대개 서양인 탐험가들이
도맡아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자료를 근거로 각지를 답사했지만 결국 그 땅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이 탐색하는 방법이 문제였던 것이다. 과학적인 자세로는 이 '낙원' 을 결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 을
순화시키는 것, 다시 말해 자기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방법으로만 샴발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라마교의 승려들은 말하고
있다.
영국의 작가인 제임스 힐튼(J. Hilton: 1899~1954)은 1933년 샴발라 전설을 주제로 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
선(Lost Horizon)을 발표해서 화제를 모았다. 이 소설에서 샴발라는 '샹그릴라(Shangrila)' 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 책
의 내용을 약간 소개해본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인도와 파키스탄 내전 중에 인도 주재 영국 영사인 콘웨이는 세 명의 백인들과 함께 여객기
에서 납치되어 티베트의 오지에 도착한다. 그들은 해발 8천 미터 가량의 험난한 산맥을 넘어서 '푸른 달의 계곡' 이라 불
리는 계곡 안에 있는 샹그릴라로 끌려간다.
완전히 상식을 초월한, 거의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화려한 색채를 가진 한 무리의 누각들이 산 중턱에 붙어 있는데
라인 지방의 성곽같이 무거운 분위기의 인공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벼랑에 꽂힌 꽃잎처럼 수려한 모습이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절묘한 아름다움...... .
그들이 이끌려 간 곳은 크고 장엄한 라마 사원이었다. 그곳에는 정식으로 라마 신도로 인정받은 자가 50명 가량 있었고
그 대부분이 중국인과 티베트인들이었는데, 세계 각지의 여러 민족 대표자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콘웨이가 가장 흥미를
가진 것은 사원 내부를 장식한 수많은 미술품이 아니라 도서실의 장서였다.
그곳에는 세계의 대표적인 서적들뿐만 아니라 희귀한 장서들이 수없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으로 된 서적도 2~3만 권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콘웨이는 이 사원을 통솔하는 대(大)라마
를 알현하는 것이 허락받았다. 놀랍게도 대라마인 페로 사부는 룩셈부르크 태생의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수도사로서 우연
하게 이 땅에 들어오게 되었다가 그대로 눌러 살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 사원은 인류의 '영지(英智)' 를 위한 학원이었다. 라마교 신도든 기독교인이든 종교에 관계없이 근원적인 지
혜를 탐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원의 풍부한 재원은 이 땅에 있는 금광에서 마련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대라마는 이미
200세를 넘긴 고령이었다. 장수의 비밀은 이 계곡의 대기 속에 포함되어 있는 미지의 성분과 탕가체라 불리는 마취 작용
이 있는 식물의 열매, 그리고 요가 호흡법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 페로 사부에게도 죽을 때가 다가와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콘웨이가 지목되었지만 그는 동료들과 함께 이 땅을 탈
출했다. 그러나 그와 동행했던 아름다운 소녀는 바깥 세상의 공기에 닿으면서 급속도로 늙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일단
은 인도로 돌아왔지만 콘웨이는 샹그릴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힐튼이 표현하는 샹그릴라에는 블라바츠키나 뢰리치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많이 보인다. 즉 세상의 어떠한 종교든 목적하
는 바는 한 가지이며, 여러 가지 지혜를 모으면 인류의 근원적인 '영지' 를 얻을 수 있고 세상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힐튼이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여러 종교들이 서로 증오하며 헐뜯는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대립으로 잔인한 전쟁이 되풀이 되고 있다. 잃어버린 지평선은 대중 소설이기는 하지만 힐튼이 이상으로 삼았던 세계관을
명확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그가 생각한 샹그릴라는 증오를 버린 종교의 '낙원' 이 구현된 모습이었다.
그 후에 이 소설의 인기를 반영해서 세계 각지에 샹그릴라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과 건물이 생겨났다. 미국의 대통령이었
던 F. D. 루스벨트는 메릴랜드에 지은 대통령 별장에 샹그릴라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지금은 캠프 데이비드로 이름이
바뀌었음). 참고로 샹그릴라라는 단어는 티베트어로 '식칼의 언덕 길' 을 뜻한다고 한다.

서왕모[西王母]

산해경에 따르면 서방 쿤룬산에 사는 사람 얼굴에 호랑이의 이빨, 표범의 털을 가진 신인(神人)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
적으로는 불사의 약을 가진 선녀라고 전해진다. 한대에 서왕모의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졌다.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서방의 쿤룬산[崑崙山: 玉山]에 사는 인면(人面)·호치(虎齒)·표미(豹尾)의 신인(神人)이라고 한
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불사(不死)의 약을 가지고 있는 선녀라고 전해진다. 목천자전(穆天子傳)에 의하면 서주(西周)
전기의 목왕이 서방에 순수(巡狩)하여 쿤룬산에서 서왕모를 만나 즐기다가 돌아오는 것을 잊었다고 전해진다. 한대(漢代)
에는 서왕모의 이야기가 민간에 퍼졌던 것은 틀림없는 일로, 그와 더불어 동왕부(東王父: 서왕모의 배우자)의 이야기도
보태진 듯하다.

성배[Holy Grail]

성서에는 성배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신약성서는 최후의 만찬 이야기를 전한다. 예수는 유월절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한 뒤 술잔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태복음 26:28). 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한 잔으로 신도들 중 한 명(아리마대의 요셉으로
추정된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피를 받았다고 한다. (요셉은 또한 예수의 몸을 찌른 로마 병사의 창도 소유했다고
한다.) 술잔은 요셉에게서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마법의 힘을 가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가톨릭교회는 성체성사에서 사용된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의 피가 된다고 가르친다. 중세에 그리스도교도들은 자기 술잔의
포도주가 마법을 통해 예수의 피가 될 정도라면 예수가 실제로 사용한 술잔의 힘은 대단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성배의 전
설은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와 연관된다. 아서 전설에 따르면 기사들은 성배가 질병과 상처를 치료할 수 있기 때
문에 성배를 찾아 나섰다고 한다. 이제 성배는 그리스도교의 범위를 벗어나 '선의의 마술' 이 되었다.
성배 전설의 첫 버전은 1190년경에 크레티엥 드 트루아(Chretien de Troyes)가 지은 성배 이야기(Le Conte del Graal)였
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유명한 오페라 파르시팔은 그 성배 전설을 주제로 한다. 아서의 유명한 원탁이 최후의 만찬에 사
용된 식탁이라는 전설도 있다(원탁에는 150명이 앉을 수 있었으니 불가능한 이야기다). 영국의 글래스턴베리에는 '성배의
우물' 이라는 곳이 있는데, 아리마대의 요셉이 성배를 그 우물 밑에 둔 덕분에 우물물이 병을 치료하는 효험을 가지게 되
었다고 한다. 우물물에 녹슨 기미가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성배 안에 있던 그리스도의 피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배 전설은 큰 인기를 모은 영화 인디애나 존스와 최후의 십자군의 알맹이가 되었다. 영화에서 인디애나 존스는 성배를
찾아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한다. 하지만 인디애나 존스 이전에도 "성배를 찾는 모험" 에 관한 이야기와 노래는 수도 없이
많았다. 화가들은 성배를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물건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인디애나 존스 영화가 더 옳
을 듯하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한 실제 술잔은 아주 소박한 토기였다. 몬티 파이턴과 성배라는 영화는 성배와 아
서 왕의 전설을 희화화했다(난잡한 여자가 기사들을 유혹하기 위해 '성배 등불' 을 내건다). 이 영화는 나중에 재활용되
어 스패멀롯이라는 연극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다.
1916년 고대 도시 안티오크 부근에 살던 아랍인들이 진짜 성배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매체에 의해 '안티오크의 성배'
라는 이름이 붙은 그 물건은 예수와 사도들의 모습이 새겨진 은으로 된 술잔이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그것이 실
제로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던 술잔이라고 믿었다. 예수와 사도들이 그 행사를 기념하는 술잔을 특별히 제작해 사
용했을 리 만무하다는 사실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그 술잔이 4세기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
측한다. 안티오크의 성배를 발견한 과정은 은배(The Silver Chalice)라는 소설로 창작되었고 나중에 영화화되었는데, 그
술잔이 최후의 만찬에 사용된 것으로 꾸미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그레일(grail)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보면, 아마 프랑스어의 상 레알(sang real)에서 나왔을 것이다. '왕의 피' 라는 뜻인
데 예수의 피를 가리킨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 레알은 상 그레알(san greal)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영어화되어 홀리 그레
일(Holy Grail)이 되었을 것이다. 다른 가능성으로, '대접' 이라는 뜻의 중세 영어 단어 그랄(graal)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

삼충[三蟲]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사람의 몸 속에 있으면서 수명?질병?욕망 등을 좌우한다는 세 마리의 벌레. 도교의 장생관(長生
觀)의 일종으로 처음에는 형체가 없는 귀신, 영혼의 유(類)라고 하여 삼시(三尸)라 하다가 점차 벌레[蟲]같은 것으로 생
각하여 삼시충(三尸蟲)?삼충이라고도 하였음. 상시(上尸)는 팽거(彭倨)라고도 하며 사람의 머리 속에 있으면서 보물을
좋아하고 목 위를 병들게 하고, 중시(中尸)는 팽질(彭質)이라고도 하여 배 속에 있으면서 오미(五味)를 좋아하고 오장(五
臟)을 병들게 하며, 하시(下尸)인 팽교(彭矯)는 발 속에 있으면서 색(色)을 탐하고 하반신을 병들게 한다고 함. 이들은
항상 사람이 일찍 죽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경신일(庚申日)에는 하늘에 올라가서 그 사람의 잘못을 천제(天帝)에게 보고
하여 사람의 수명을 빼앗는다고 하여 경신일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밤을 밝히는 수경신(守庚申)의 풍습이 생겨났음.

성천[聖天]

산스크리트명의 난디케스바라(Nandikesvara)의 한역명을 대성환희천(大聖歡喜天)이라고 하며, 환희천, 천존이라고도 한
다. 대자재천(시바신)과 오마비의 자식인 아야발저(대장이라는 뜻)로, 대자재천의 군세의 대장이었다. 또한 외야야가(장
해를 제거하는 자)라고도 하는데 원래는 사람들의 사업을 방해하는 마왕이며, 인도신화에서의 가네샤신에 상당한다. 불교
에 도입된 후에는 장해를 배제하는 신이 되었으며, 각종 수법에서는 성천단을 설치해서 권청되는 경우가 많다. 형상은 상
두인신상(象頭人身像)으로, 단신상과 쌍신상의 2종이 있다. 단신상은 2비, 4비, 6비, 8비, 12비 등의 상이 도상집에 수록
되어 있으며 각 손의 지물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다. 양계 만다라의 외원에는 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단독으로 조상된
예는 많지 않다. 쌍신상은 하나의 연화좌위에 2상이 안고 있는 입상으로, 한편에는 마왕, 다른 쪽은 11면관음화신의 남녀
2천으로 이루어지며 현존 작품 예에는 조상이 많다.

* 대성환희천자재법(大聖歡喜天自在法)
나무비나 야카샤아싯지 모쿠쿄샤지냐타 아지야나지야 슈바테야우 싯탄카야 싯바타하야 하타사츠샤야야 바타지츠와나 나무
비나야카 샤아싯지 모쿠쿄샤지냐타 아지야나지야
나무비나야카 샤아싯지이 극랭파(極冷波)
이 세상 모든 것이 얼어붙고 만다.

스톤 서클[stone circle]

거석기념물의 일종. 환상열석 또는 환상석리라고 번역된다. 주상의 자연석을 나란히 세워서 환형으로 한 것으로, 직선상
의 열석(아리뉴만)과는 구별되며 도심원상에 이중, 삼중으로 둘러싼 것이 많다. 크기는 다양한데, 최대의 돌은 20톤에 미
치며 환의 직경은 50m 이상의 대형의 것부터 2m가 되지 않는 소형의 것까지 있다. 웨일스어의 호칭 크롬레크(cromlech)을
채용하거나, 입석 위에 미석(楣石)을 두어서 상호 연결한 것을 헨지(henge)라고 해서 특별히 구별하는 경우가 있다. 유럽
의 대서양 안에 많은 유구가 있는데 영국의 스톤헨지, 에블리나 프랑스의 에르라니크, 카르나크의 것이 유명하다. 유럽
이외에 서남 아시아의 시내, 아라비아, 이란, 인도의 데칸고원이나 아삼지방, 남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 지방, 중국의 감
숙성, 일본의 훗카이도, 동북지방 등에 존재한다.
스톤헨지의 스톤 서클은 구조상 태양숭배와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집합묘지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기타 많은 예에서 돌
멘이나 석실묘를 수반, 매장에 관계있는 유구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브라마기리, 미누신스크 지방의 카라스크 문화의
분묘군, 또는 일본 아키다현의 태양환상열석 등은 모두 묘와 관련되어 있다. 단, 단순히 성역을 둘러싼 울타리 같은 시설
로 보는 것도 있어서 성격은 일정하지 않다. 유럽 대서양에나 분포하는 스톤 서클이나 중국 감숙성의 제가(齊家)문화에
속하는 것은 신석기시대의 소산이라고 생각되는데, 카라스크 문화는 청동기시대이며, 인도의 스톤 서클은 초기철기시대에
만들어졌는데 연대 또한 다양하다.

시해선(尸解仙)
여러 신선 중에서도 가장 일반인에게 가까운 존재가 시해선(尸解仙)이다. 이는 한마디로 말하면 신선이 되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신선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는, 선택된 소수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 밖의 사람들은 수행을 통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신선이 될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에게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열선전(列仙傳)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보도록 하자.
동진(東晉)의 원제(元帝, 276~322) 시대에 포정(鮑靜)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음장생(陰長生)이라는 신선으로부터 시
해선이 되는 방법을 전수받았다. 시해란 일반 사람들이 보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특별한 사물을 사
체로 보이게 하는 술법이다. 여기에는 상하 두 종류의 방법이 있는데, 상시해(上尸解)는 검(劍)을 사용하고, 하시해(下尸
解)는 대나무를 사용한다. 그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우선 상시해는 붓에 신단(神丹=仙藥) 녹인 물을 발라서 검의 날 양면에 태상태현음부(太上太玄陰符)라고 주문을 쓴다. 그
렇게 하면 검은 금방 술자(術者=시행자)의 모습 그대로 변해서 침대에 드러눕는다. 술자는 자기 대신 검을 눕혀놓고 빠져
나올 수 있다. 가족들은 이 검을 보고 술자가 죽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하시해의 방법도 상시해와 같다. 다만 주문을 검이 아닌 대나무에 쓰는 것만 다를 뿐이다. 시해에는 이 밖에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방법, 호랑이에게 잡혀먹히는 방법, 검에 찔리는 방법 등이 있다.
원래 시해선이 되려면, 술법을 사용하기 전에 충분히 수행을 쌓아서 신선의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아가레스[Agares]

레메게톤에 나오는 72명의 악마 중 하나. 아가로스라고도 불린다. 동쪽 지옥을 지배하는 대공으로 31개의 군단을 이끌고
있는데, 부름을 받으면 악어에 올라타고 빈약한 현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행방불명된 자를 찾아내는 능력이 뛰
어나고, 언어에 관한 지식에 풍부해 자신을 불러낸 자에게 그 지식을 나누어준다. 또한 겉모습과는 달리, 지진을 일으켜
서 도시를 파괴할 수도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악마가 되기 이전에는 하계의 역천사(力天使; 천사의 아홉 계급 중 위에서
다섯 번째) 중 한 명이었다.

아귀[preta, 餓鬼]

아귀도(餓鬼道:餓鬼途), 즉 목마름과 배고픔 등 고통으로 가득찬 세상에 사는 중생.
탐욕이 많은 자가 사후에 떨어지는 생존상태로서, 불교에서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修羅·인간·天) 중 하나인 아
귀도에 있는 자를 말한다. 고대 인도에서는 조령(祖靈)을 프레타(죽은 사람이라는 뜻)라고 하였는데, 그 영들은 자손이
바치는 음식물 등을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관념이 불교에 도입되어 아귀를 기갈에 지쳐 음식물을 구하는
죽은 자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귀가 머무는 곳은 염마왕(閻魔王)의 세계로서, 거기에 있는 아귀는 음식물을 구하지만 그
것을 먹으려 들면 불이 되어 버리므로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사후에 아귀도에서 고생하지 않기 위하여서는 생전에 악행을 하지 말고, 죽은 자의 혼령을 구제하기 위
하여 보시[布施]와 자선을 행할 것을 가르치는 통속적(通俗的) 교의이다. 아귀에게 음식을 주어 공양하는 불교적 행사를
시아귀(施餓鬼)라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독일의 정치가이며 독재자로 불린다. 게르만 민족주의와 반 유태주의자를 내걸어 1933년 독일수상이 되었고 1934년 독일
국가원수가 되었으며 총통으로 불리었다.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켰지만 패색이 짙어지자 자살하였다.
독일 국경부근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작은마을 브라우나우에서 세관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비교적 엄격하였
던 것으로 전해지며 1903년 13세에 아버지를 잃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1905년 실업학교를 퇴학하고 미술대학에 진학
하지만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1907년 18세 때 어머니를 잃었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물려받은 유산과 그림엽서 등을 팔
면서 생활하였다. 당시 오페라와 바그너에 심취하였고 매일 도서관을 다니며 독학으로 지식을 습득하였다. 이때 인종이론
이나 반 유태주의를 익혔고 히틀러의 정치사상이 형성되었다. 독신자합숙소의 공영시설(公營施設)에서 생활하면서 젊은
시절이 가난하고 불우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공영시설은 비교적 사치스러운 시설로 알려져있으며, 어려움을
극복한 자신을 과장하기 위해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帝國) 내의 격렬한 민족투쟁의 와중에서 독일민족지상주의자가 되어 국제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
를 반대하였으며, 유대인과 슬라브족을 증오하였다. 1913년 병역을 기피하여 독일 뮌헨으로 피신했지만 1914년 당국에 체
포되었다. 하지만 신체검사에서 부적격으로 판정되어 병역이 면제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에 대한 애국심으
로 열광하였던 히틀러는 독일군에 지원병으로 입대하고 무공을 세워 1급 철십자장(鐵十字章)을 받았다. 독일이 패전한 후
뮌헨에서 공산혁명이 실패하였는데, 그 직후에 히틀러는 군대에서 정치교육을 받고 반(反)혁명사상으로 정신을 무장하였
다. 1919년 9월 독일노동자당(후에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즉 나치스)이라는 반(反)유대주의적인 작은 정당에 가입하
였다.
그는 웅변에 능하였고, 그 웅변의 힘으로 선전활동을 전개하여 당세를 확장하였으며, 1920년 4월 군대에서 제대하여 당의
선동가로서 정치활동에 전념하였다. 당명을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으로 변경하고 1921년 7월 29일 마침내 당내(黨內)
의 독재적 지위를 가진 당수가 된다. 그는 군부·보수파(保守派)와 손잡고 민족공동체의 건설, 강대한 독일의 재건, 사회
정책의 대대적인 확장, 베르사유조약의 타파, 민주공화제의 타도와 독재정치의 강행, 유대인의 배척 등을 역설하였고, 특
히 대중집회를 자주 열어 일반 민중의 지지를 얻었다. 1923년 11월 8∼9일 뮌헨에서 봉기(히틀러의 봉기)를 획책했으나
군부와 관료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실패하였다. 그 사건으로 란츠베르크 육군형무소에 투옥되었는데, 출옥 후 와해된 당
의 조직을 재편하고 합법적인 운동으로 민주공화제를 내부로부터 정복할 것을 꾀하였다. 옥중에서 나의 투쟁(Mein Kampf)
을 출판하여, 동유럽을 정복하고 게르만 민족의 생존권을 동방으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였다.
그는 당내의 여러 가지 경향을 종합·정리하고, 1930년 9월 총선거에서 나치스는 18.3%의 득표율로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
2당이 되었다. 이 시점부터 그의 일생이 바로 나치스의 역사가 되었다. 연립내각에 입각하기를 거절하고 나치스의 독재지
배를 요구하였는데, 1932년 4월 대통령선거에서 1340만 표(36.8%)까지 득표하였으나 P.힌덴부르크에게 패하였다. 또한
7월 총선거에서는 37.3%를 득표하여 압도적인 당세를 과시하면서 여전히 연립내각에 참가할 것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11월 총선거에서는 33.1%로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당세가 쇠퇴해졌으나, 자본가·농업계를 비롯한 지배세력의 많은 사람들
이 히틀러를 지지하게 되었다.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경제계와 정계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보
수파와 군부의 협력을 얻어 반대파를 탄압하고 1933년 7월 일당독재(一黨獨裁)체제를 확립하였다. 1934년 8월 대통령 힌
덴부르크가 죽자 대통령의 지위를 겸하여, 그 지위를‘총통 및 수상(Fuhrer und Reichskanzler:약칭은 총통)’이라 칭하
였다. 명실상부한 독일의 독재자가 된 그는 민주공화제시대에 비축된 국력을 이용하여 국가의 발전을 꾀하였다. 그리고
외교계·경제계·군부 요인들의 협력을 얻어 외교상의 성공을 거두었고, 경제의 재건과 번영을 이루었으며, 군비를 확장
하여 독일을 유럽에서 최강국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에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또한 독일민족에 의한 유럽 제패를 실현하고 대생존권(大生存圈)을 수립하기 위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의 작전
지령이 처음에는 효과를 거두어 프랑스에서 크게 승리하였지만 스탈린그라드의 패전 전후부터 현실을 무시한 지령을 남발
하여 패전을 거듭하였다. 1944년 7월 20일 과거에 그를 돕던 장군들과 보수제정파(保守帝政派)의 정치가들이 반란을 기도
하였으나 히틀러에 대한 암살계획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반란은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치스의 퇴세는 이미 만회할
길이 없었고, 1945년 4월 30일 그는 베를린의 지하호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날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
에 자살하였다.

아수라[阿修羅]

인도신화에 나오는 귀신의 일종으로, 투쟁을 전념으로 한다. 산스크리트어의 아수라(asura)의 음역. 아리아인의 인도ㆍ이
란 공통의 시대에는 아수라와 데바(deva)는 함께 신을 의미하였는데, 그들이 나뉘어져서 정주한 후에는 인도에서는 아수
라가 악신을, 데바가 선신을 의미하게 되고, 이란에서 아수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주신 아후라 마즈다가 되었다. 인도에서
는 a를 부정사로 보아서 <비천(非天)>, <비주(非酒)> 등으로 어원을 해석하였다. 신(deva)과 아수라의 투쟁은 인도문학의
좋은 테마가 되었다. 불교에서는 아수라가 해와 달을 막아서 일ㆍ월식을 행한다고 해서, 육도설(六道說)에서는 삼선도(三
善道, 천, 인, 아수라)에 들어가는데, 오취설(五趣說)에서는 아귀ㆍ축생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며 사는 곳은 해저나 지
하라고 한다.
아수라의 형상에 대해서 한역 경전에는 여러 가지로 기술되어 있다. 태장계(胎藏界)만다라 외 금강부원에는 이비상(二臂
像)이 있으며, 그 형상을 기록한 제설부동기(諸說不同記)에는 적색신으로 오른손에는 검, 왼손은 방패의 상이 그려져 있
다. 또한 섭무애경(攝無碍經)이나 보타락해회궤(補陀落海會軌)에는 삼면육비로 청흑색의 육신의 상이 설명되어 있다. 그
런데 현존 작품은 반드시 이와 같은 기술에 일치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돈황막고굴(敦煌莫高窟)의 제249굴에는 큰 바다에
다리를 벌리고 선 사비상(四臂像)이 그려져 있는데 상반신은 나신상으로, 원래는 적색의 육신이었다고 생각된다. 일본에
서 현존하는 작품 중에서는 법륭사 오중탑 초층의 소상중 육비의 아수라좌상이 가장 오래되었으며, 흥복사의 팔부중상중
의 육비상이 유명하다. 이외에 불열반도 중 석사를 둘러싼 제존 중에 적색의 육비상이 그려지는 경우가 많으며 단독으로
조상된 예는 없다.

애염명왕[愛染明王]

밀교의 분노부 또는 명왕부에 속하는 존상(尊像). 
애염왕이라고도 한다. 인간이 지닌 애욕에 대한 탐심(貪心)을 금강살타의 정보리심(淨菩提心)의 경지로 높인 상태를 말하
는 것으로 번뇌가 곧 보리이고 인간의 번뇌도 불타의 깨달음의 지혜와 같음을 의미한다. 금강살타의 화현(化現)이며 17존
이 권속(眷屬)인데 일광(日光)을 광배(光背)로 한 사비상(四臂像) 또는 육비상이 대부분이다.
금강봉루각일체유가유지경(金剛峰樓閣一切瑜伽瑜祗經)에 따르면 육비상은 전신이 붉고 눈이 3개, 팔이 6개이며 머리에는
사자관(獅子冠)을 쓰고 결가부좌한 형상이라고 하였다.

옴 마카라가 바사로힛니샤!
옴 마카라가 바사로힛니샤 천궁(天弓)!
옴 마카라가 바사로힛니샤 성천궁(星天弓)!

약사여래[藥師如來]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
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의 원만행(圓滿行)을 닦는 이로 하여금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묘과(妙果)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이다. 그는 과거세에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大願)을 세웠다.
① 내 몸과 남의 몸에 광명이 가득하게 하려는 원
② 위덕이 높아서 중생을 모두 깨우치려는 원
③ 중생으로 하여금 욕망에 만족하여 결핍하지 않게 하려는 원
④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대승교(大乘敎)에 들어오게 하려는 원
⑤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깨끗한 업(業)을 지어 삼취정계(三聚淨戒)를 갖추게 하려는 원
⑥ 일체의 불구자로 하여금 모든 기관을 완전하게 하려는 원
⑦ 몸과 마음이 안락하여 무상보리를 증득하게 하려는 원
⑧ 일체 여인으로 하여금 모두 남자가 되게 하려는 원
⑨ 천마(天魔)·외도(外道)의 나쁜 소견을 없애고 부처님의 바른 지견(知見)으로 포섭하려는 원
⑩ 나쁜 왕이나 강도 등의 고난으로부터 일체중생을 구제하려는 원
⑪ 일체중생의 기갈을 면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려는 원
⑫ 가난하여 의복이 없는 이에게 훌륭한 옷을 갖게 하려는 원
이것이 약사십이대원(藥師十二大願)이며, 그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고 또 한량없는 중생의 고통을 없애 준다는 것이다. 이
십이대원 속에는 약사여래가 단순히 중생의 병고를 구제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의복이나 음식 등의 의식주문제는 물론 사
도나 외도에 빠진 자, 파계자, 범법자 등의 구제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십이대원 이외에도 극락왕생을 원하는 자, 악귀를 물리쳐서 횡사를 면하고 싶은 자, 온갖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자들이 약사여래의 명호를 부르면서 발원하면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외적의 침입과 내란, 성수(星宿)의 괴변, 일월(日月)의 괴변, 때아닌 비바람, 가뭄, 질병의 유행 등 국가가 큰 재난
에 처했을 때도 약사여래의 본원력을 통하여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약사여래본원공덕경에 근거하여 약사여래를 신봉
하는 약사신앙은 우리 나라의 고대에서 뺄 수 없는 중요한 신앙형태였다.
그의 이름을 외우고 그의 가호(加護)를 빌면 모든 재액이 소멸되고 질병이 낫게 된다는 실리적인 신앙은 일반 민중들 사
이에서 강한 설득력과 호소력을 가졌다. 삼국의 전쟁중 수많은 희생자와 병자를 냈던 상황 속에서 약사여래는 새로운 구
원자로 등장했던 것이다. 나아가 선덕여왕이 병에 걸려 의약의 효험이 없었을 때 밀본법사(密本法師)가 여왕의 침전 밖에
서 약사경을 염송하여 병을 낫게 했다는 것 또한 약사신앙 유포의 중요한 일면이다.
통일 후의 신라에서는 약사경에 대한 연구가 경흥(憬興)과 태현(太賢) 등의 고승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졌고, 약사
여래의 조성이 매우 많았다. 특히, 신라 사방불(四方佛)의 조성에 있어 동방에는 항상 약사여래를 모시는 것이 일정한 신
앙 유형으로까지 발전된 사실은 약사신앙이 널리 대중화되었음을 여실히 밝혀 주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이와 같은 개인의 평안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위기가 닥칠 때마다 약사도량(藥師道場)이 자주 개설되었는데,
이 또한 약사의 명호를 외우면 국가의 재난이 소멸된다는 약사여래의 본원에 근거를 둔 것이다. 대표적인 약사행법은 7일
동안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면서 주야 6시로 약사여래를 예배, 공양함과 아울러 약사경을 49번 독송하고 49등(燈)을 밝히
는 것이다.
또 약사여래상 7구를 조성해서 그 상 앞에 각기 49일 동안 7개의 등을 밝히고 5색 당번(幢幡)을 49척쯤 되게 만들어 걸고
여러 종류의 중생을 방생하면 여러 가지 질병의 위험을 면한다고 한다. 국왕이 그 나라에 유행하는 질병이나 외적의 침입
등 재난이 있을 때도 위와 같이 행하면 재난이 소멸되고 국토가 평안해진다고 한다.
또, 선남선녀가 약사여래상을 조석으로 모시어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면 장수하게 됨은 물론 부귀와 관위(官位)를 얻게
된다고 한다. 현재 우리 나라 사찰에는 이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모신
약사전(藥師殿)을 부속시키고 있어 약사신앙의 통속성을 대변하고 있다.

옴 바사시예 바사시예... 옴 바사시예 바사시야삼마 도캬테 사바...... .
옴 바사시예 바사이야삼마 약사유리광배선진(藥師瑠璃光背扇陣)!
옴 바사시예 바사이야삼마 약사유리광광염탄(藥師瑠璃光光炎彈)!

엔트로피 법칙

정보를 지우는 데 에너지가 사용되는 이유는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란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내는 양으
로서, 예를 들어 결혼식장에서 남녀 또는 신랑신부 측의 하객들이 나누어 앉아 있다면 아무렇게나 섞여 앉아 있는 것보다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이다. 더운 기체가 든 상자와 찬 기체가 든 상자를 맞붙여 놓으면 같은 온도가 될 것인데, 이 과정
은 엔트로피가 증가한 예이다.
둘째 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자연계의 변화는 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열역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역학에서 뉴턴 법칙이 차지하는 위치에 해당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면 대개 에너지
가 소모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에너지란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뜻한다. 알다시피 에너지는 보존되므로 없어지지 않으며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뜨거운 기체와 찬 기체가 있으면 그것을 이용해 엔진을 돌릴 수 있지만 그 결과 둘의 온도가 같아지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쉽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면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말의 뜻은 설명했으므로, 이제
정보를 지우면 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지를 설명하면 정보와 에너지 소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겠다.
더운 기체와 찬 기체를 이용해 일을 하고 나서 두 기체의 온도가 같아지면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만, 잘 생각하
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피해나갈 길이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법칙을 피해나갈 수만 있다면 역사에 대대로 이름이 남
는 것은 물론이고 돈도 꽤 많이 벌 수 있다. 이 법칙에서 벗어나 작동하는 엔진을 제2종 영구기관이라고 한다. 보통 말하
는 영구기관은 열역학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법칙을 위배하여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제1종 영구기관이라고 부른다.
제2종 영구기관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는 않지만 열역학 제 2법칙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위배하여 에너지를 사용 가
능하도록 전환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제2종이라 부른다. 말로는 구분하지만 자동차 1종, 2종과는 달리 순전히 개념적인 것
이며,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구기관을 발명해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요즘은 그런 일이 없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내가 이런 훌륭한 발명을 했는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들은 척도 안 한다고 청와대에 민원을 내면,
(아마도 과기부를 거쳐서) 내가 적을 두고 있는 학교로 검토하라고 서류가 오고는 했었다. 물론 이런 발명제안서는 첫 페
이지부터 틀린 것들이다. 혹자는 법칙이란 깨지라고 있는 것 아니냐고 궤변을 늘어놓기도 하는데, 영구기관이 절대로 존
재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이렇게 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구기관이 존재하려면 에너지 보존 법칙이나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깨져야 하는데, 만일 우주 안 어디에선가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주의 모습이 지금과 같을 수 없다. 이
우주 안에 사는 한 영구기관의 꿈은 포기하는 것이 좋다.
전자기학을 집대성해서 심지어 아인슈타인의 존경까지 받았던 맥스웰은 열역학에도 조예가 깊어서 그의 이름이 붙은 도깨
비를 역사에 남겼다. 이 도깨비는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일을 한다(불가능한 일을 한다고 해서 도깨비라는 이름이 붙었
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 도깨비가 하는 일이란 온도가 같은 두 기체 상자 사이의 벽에 조그만 창을 하나 뚫고
그 옆에 앉아 있다가, 왼쪽 상자에서 빠른 기체분자가 날아오면 창문을 열고 느린 기체분자가 오면 창문을 닫으며, 오른
쪽 상자의 기체분자들은 반대로 한다. 한참을 이렇게 하고 나면 오른쪽 상자에는 속도가 빠른 기체분자들만 모이고, 왼쪽
상자에는 느린 기체분자들만 모인다.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두 상자의 온도가 같았지만 나중에는 오른쪽 상자의 온도는 올라가고 왼쪽 상자는 낮아진다는 뜻이
다. 이론상으로 창문은 전혀 마찰이 없게 만들 수 있으므로 도깨비는 아무런 에너지도 사용하지 않았고 엔트로피는 감소
되었다. 도깨비는 위대한 열역학 법칙을 피해나갈 수 있는데 왜 우리는 그럴 수 없는 것일까?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온
도가 같았던 두 상자의 온도를 외부의 간섭 없이 다르게 만들려면 각 기체분자의 속도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는 그것이 없다. 즉 정보가 있으면 언제든지 엔트로피를 낮출 수 있으므로 정보가 많으면 엔트로피가 줄어들고, 정보가
지워지면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맥스웰의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두고 엔트로피와 정보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만족하
려 한다. 엔트로피에 대해서는 나만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대가들도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정보이론에서 가
장 중요한 개념은 정보 엔트로피인데, 이 정보 엔트로피가 열역학에서 정의하는 엔트로피와 수식의 모양은 같지만 물리적
개념이 동등한지는 확실치 않다. 정보이론의 창시자인 클로드 섀논이 정보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게 된 것은
폰 노이만의 권유에서였다고 한다. 정보의 확률적 선택에 관한 섀논의 강연을 들은 폰 노이만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
로피의 개념을 도입하라고 권하면서 그 이유를 "아무도 엔트로피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걸고넘어질 사람
이 없을 것" 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폰 노이만이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정보를 지우는 데 에너지가 소모된다면 정보를 지우지 않는 컴퓨터를 만들면 어떨까? 이런 엉뚱하고도 혁신적인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이 바로 베넷인데, 그때가 1973년의 일이다. 이 당시 우리 나라는 소위 유신헌법이라는, 일인독재체제를 위
한 개헌 국민투표로 국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엔트로피는 한번 증가하면 자발적으로 감소하지 않으므로, 엔트로피가 증가
하는 과정을 비가역과정이라고 부르며, 역으로 엔트로피의 변화가 없이 일어나는 과정은 거꾸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가역
적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비가역적으로 연산하며, 이 때문에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열이 발생
한다. 베넷의 제안은 바로 가역적으로 연산하는 컴퓨터를 만들어 열발생을 없애보자는 것이었다.
연산에서 가역적이라 함은 연산된 출력 데이터로 입력 데이터를 복구해낼 수 있다는 뜻이며, 비가역은 그 반대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의 CPU가 가장 흔하게 하는 계산 중의 하나는 소위 AND 연산이라는 것인데, 이 연산은 두
개의 입력신호를 비교하여 두 개가 모두 1이면 1을 출력하고 그렇지 않으면 0을 출력한다. 만일 1이 출력되면 입력 두 개
가 모두 1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0이 나오면 둘 중의 하나가 0이었는지, 그렇다면 어떤 것이 0이었는지 혹은 둘
다 모두 0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입력은 2비트이고 출력은 1비트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가역적인 연산은 최소한
입력 비트 수와 출력 비트 수가 같아야 하며, 이런 연산들만으로도 지금의 컴퓨터가 하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음이 증
명되었다.

역린[逆鱗]

임금의 노여움을 일컫는 말.
한비자(韓非子)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말이다.
용(龍)이라는 짐승은 잘 길들이면 올라탈 수도 있지만 그의 목 아래에 있는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 즉 다른 비늘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임금도 역린이 있어 말하는 사람이 이 역린만 건드리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임금을 용에 비유한 말
이다.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그리스도교의 창시자인 예수를 하느님의 메시아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자체가 예수를 지칭하는 말로도 쓰
인다.
예수라는 이름은 헤브라이어로 '하느님(야훼)은 구원해 주신다' 라는 뜻이며,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구
세주' 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물음은, 예수 탄생 이래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물음이다. 그리스도교도에게는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이다.
마태복음 제16장 16절을 보면,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살아 계
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자, 예수는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라고 말했다고 적혀 있다.
요한복음에는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로
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
예수는 어머니가 되는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와 약혼자인 목수 요셉이 호구조사의 등록을 하러 간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
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예수가 태어나던 날 밤 천사가 목자들 앞에 나타나 예수의 탄생을 고하며,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라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누가 2:4). 예수 탄생 뒤 그 일가
는 헤롯왕의 유아살해(幼兒殺害)를 피하여 이집트로 여행하고, 헤롯이 죽은 후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나사렛에서 예수는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는데(누가 2:51), 열두 살이 되던 해, 유월절(逾越節) 명절을 맞아, 해마다 그
랬듯이 부모를 따라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예수는, 성전에서 학자들과 성서(구약)에 관한 토론을 벌였다.
학자들은 예수의 지혜와 그 대답에 경탄하고 있었는데, 그를 잃어버리고 찾아 헤매던 부모를 보고 예수는 "나는 내 아버
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누가 2:48).
예수는 30세경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였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예수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
가(마태 4:1) 40주야의 금식기도를 하면서 악마로부터 세 가지의 시험을 받았다. 성서에 기록된 말들을 인용, 악마의 유
혹을 물리치고(마태 4:11, 누가 4:8) 광야에서 머무른 후 예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전파하기 시작하였
다. 마태·마르코·누가의 세 복음서는 예수의 선교활동에 관한 똑같은 기록들을 전해주고 있는데, 예수의 발자취를 정확
히 더듬는다든지, 그가 방문한 고장을 차례대로 추적하기란 곤란한 일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보면, 광야에서 나와 베다니로 돌아갔는데, 여기서 첫 번째 제자를 얻어 그들과 함께 갈릴리로 가, 가
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기적을 행하였다. 공생활에서의 최초의 유월절(과월절)을 맞아 예루살렘
을 순례하고, 거기서 성전 안의 장사꾼들을 몰아내었다. 예수는 유월절 동안 예루살렘에 머무르면서, 어느날 밤 조용히
찾아온 바리새파(派) 지도자의 한 사람인 니고데모에게 자신을 계시(啓示)하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을 일러 주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중생(重生:거듭 남) 또는 신생(新生:새로 남)의 교리이다.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힌 후 유다 지방을 떠나 사마리아를 지나서 갈릴리로 향하였다. 도중에 사마리아 지방 시카르(수
가)라는 동네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자에게 자기가 메시아임을 밝혔는데, 그녀로 말미암아 사마리아에
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구세주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요한 4:42)고 한다. 그 뒤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내려간 예수
는 그곳 회당(시나고그)에서 사람들을 가르쳤고, 신약의 복음을 전하며, "사람의 아들[人子]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
다."(누가 6:5)라고 가르쳤다.
이렇게 하여 예수는 온 갈릴레아를 두루 다니며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
두 고쳐주었다. 이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지자, 사람들은 갖가지 병에 걸려 신음하는 환자들과 신들린 사람·간질병
자·중풍병자들을 모두 그의 앞에 데려왔다. 예수는 그들도 모두 고쳐 주었다. 그러자 갈릴리·데카폴리스·예루살렘·유
다, 그리고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와서 예수를 따랐다(마태 4:23∼25).
예수는 이 무렵 유명한 산상(山上) 설교를 하였으며, 또한 12제자를 선발하였다. 예수는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갔는데,
나사렛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였다.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 예수는 이사야 예언서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낭독하였다. "주
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
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누가 4:18∼19).
사람들은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세주라는 것을 믿지 않았는데, 예수는 예언자 엘리야가 동포인 이
스라엘 민족보다도 이방(異邦)의 어떤 과부에게로 보내졌다는 사실, 예언자 엘리사도 이스라엘의 나병환자는 고쳐주지 않
고 시리아 사람인 나아만만을 고쳐주었다는 사실을 알려, 그가 말하는 구원이 이스라엘 민족만의 구원에 그치지 않고 전
인류의 구원이라는 뜻을 비쳤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화가 나서 들고 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어냈다.
그 동네는 산 위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으나, 예수는 그들의 한가운데
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갔다(누가 4:25∼30). 세례자 요한이 헤롯왕에게 살해된 사실을 안 후, 예수는 갈릴리를 떠나
필립비의 가이사리아 지방으로 떠났는데, 그 길에 제자들에게 구세주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말해주었다. 예수가 제자 중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을 때 예수가 그들 앞에서 변모하여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은 빛
같이 눈부셨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함께 있었다. 즉, 예수가 고난과 죽음의 길을 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계
시(啓示) 방법으로 모세와 엘리야, 율법과 예언자의 신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자들은 깨달았던 것이
다(마태 17:1∼8, 마르코 9:2∼8, 누가 9:28∼36). 그후 예수는 은밀히 예루살렘으로 가 설교도 하고, 병자들의 병을 고
쳐 주곤 하였는데, 그의 설교가 지닌 권위에 놀란 유대인들은 예수가 누구인가의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예수는 요르단강을 건너 베레아 지방으로 가, 베다니에서 마리아의 동생 라자로를 죽음으로부터 살려내었다. 이때 예수는
마리아의 자매 마르타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라고 말하였다.
죽은 라자로를 예수가 살려냈다는 이야기가 전파되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대사제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은 예수를 위험시하여 의회를 소집하고, "그 사람이 많은 기적을 나타내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대로 내버려 두
면 누구나 다 그를 믿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백성을 짓밟고 말 것입니다." 하며
의논하였다(요한 11:47∼48).
그날부터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요한 11:53). 과월절 전날 목요일 밤에 예수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들고, 그날 밤은 게쎄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였다. 게쎄마니에서 잡힌 예수는 로마의 총독 빌라도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힐 것을 선고받고, 이튿날 아침 십자가를 지고 온갖 조롱과 멸시·천대를 받으며 골고타 언덕길을 올라가 거기서 강
도들과 함께 신을 모독하였다는 중죄인으로서 십자가 나무틀에 못박혀 죽었다.
일요일 아침, 예수가 묻힌 무덤은 비어 있었다. 예수는 생전에 자신이 예언한 바와 같이 부활하였고, 막달라 마리아와 다
른 제자들은 그후 여러 곳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 복음서들은 그 사실과 함께 그가 올리브산(감람산)에서 승천(昇天)
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염마[閻魔]

염마는 명부(冥府)의 왕으로서 불교와 함께 일본에 들어와 무서운 것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지장보살과 습합해서 신앙대
상도 되었다. 나라(奈良)시대에는 염라왕(閻羅王)이라고 쓰여졌으며, 가끔 염마국(閻魔國)이라고도 쓰여졌다(일본영이
기). 염라는 염마라도(산스크리트어 Yama-r?ja = 야마왕)의 약자로, 염마왕의 의미이다. 이는 불설염라왕오천사경(佛說閻
羅王五天使經) 또는 염라왕수기사중역수생칠왕생정토경(閻羅王授記四衆逆修生七往生?土經)에 의거한 것이다. 후자는 예
수십왕경(豫修十王經)이라고도 하듯이, 염마왕 외에 9왕을 더해서 10왕으로 하고, 염마왕을 재판장으로서 배심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奈良)시대까지는 염라왕사의 귀신이 사자를 맞이하러 와서 염라왕궁에 가서, 그 재판에 의해서
지옥의 책고를 받게 된다. 이와 같은 염마는 인도의 명계의 주인인데 불교 안으로 들어와서 권선징악, 인과응보에 이용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서도 이미 본지는 지장보살이라는 신앙이 태어나고, 사자구제를 소원하기 위해서 신앙으로 되었다.
즉 일본에서는 염마십왕과 삼불을 십삼불에 해당시켜서 초7일기부터 33회기까지의 공양본존으로 한다. 이 경우 염마는 오
칠일기의 공양보존이 되며, 지장보살로서 제사지낸다. 그러나 한편 창도설화나 지옥변상도 중에서는 여전히 무서운 형상
으로 죄있는 사자를 힐책하는 망부의 왕이었다. 염마십왕의 조상은 겸창(鎌倉)시대부터 행하여져, 염마당에 안치되었다.
겸창 원응사나 나라 백호사의 여마십왕은 그 오래된 작품이다. 이것이 근세가 되면 마을마을에 염마당이 생기게 된다. 그
리고 장례식 때에 여기에 사자의 의류를 바쳐서 멸죄를 원하는 풍습이 일반화되었다. 이 신앙이 상실된 곳에서는 염마십
왕상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방치되어 있는 것이 많다.
인도에 기원한다고 하는 야마(Yama)왕의 신앙전승은 불전을 통해서 중국에 전해졌다. 사후세계의 지배자로서 생전의 선악
행실에 따라서 사자에게 재판을 한다고 한다. 중국전래 이후, 중국토착의 명계 관념과 결부되어서 원래는 지니지 않았던
성격이 부가되어, 민중에게 친숙한 신으로서 중국 찬술의 위경불전이나 소설, 속문학의 작품 중에 중국적인 양상의 염마
왕을 볼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대에 이미 염마왕은 중국토착의 명부의 지배자인 태산부군(太山府君)과 동화해서 지옥순례
의 이야기에 출현하며, 당대 초년의 당림 명보기(冥報記)에서는 중국적인 천제의 밑, 태산부군의 윗자리에 있는 신으로
위치지어져 있다. 또한 당말의 사광정 도교영험기에서는 도교설화중에 염라왕이 출현해서, 중국인이 염라의 직무에 임하
였다고 한다. 염마가 죄인을 재판하는 재판관으로서의 풍모를 강하게 띠게 되는 것은 중국적인 착색일 것이다. 명계의 재
판관으로서의 염마는 당말부터 오대의 시기에 사자에 대한 7일마다의 공양과 결부되어서 명부의 십왕의 하나가 된다. 십
왕의 조직은 당시의 민중적인 명부의 신들을 기초로 형성된 것으로, 염마왕도 도교적인 신들과 자리를 나란히 하게 된다.
덧붙여서 염마의 이칭인 평등왕(平等王)도 별도로 십왕의 하나에 더해지게 된다. 염마를 포함한 십왕의 관념은 중국의 민
중신앙에 오랫동안 계승되어서 현재에도 홍콩이나 대만 등에서는 사자의 공양시에 지장십왕도가 걸려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옴 엠마라자 우가라비리야 우가라비리야 아가샤소바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일본의 전국(戰國)·아즈치시대[安土時代]의 무장(武將).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를 단절시켰고 전국전란의 시대에 무력
으로 일본통일을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하였다.
무로마치 막부의 세력이 분열되는 전국시대에는 하극상에 의한 무력세력들이 등장하였다. 무사계급은 보다 많은 영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오다[織田] 가문도 지방의 슈고 다이묘를 섬기는 작은 호족세력이었으며 영지를
확장하기 위해 전쟁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아버지 노부히데[信秀]는 기요스 오다가(家)에서 행정사무를 담당
하였던 인물이었다. 1549년 노부나가는 아버지 노부히데[信秀]의 뒤를 이어 기요스 성[淸州城]의 영주이자 오와리국[尾張
國: 愛知縣]의 태수가 되었다. 1560년 동쪽의 세력이었던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공격해오자 이를 오케하자마에서 기습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세력과 무명(武名)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의 다이묘들은 교토로 진출하여 천하를 지배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1562년 노부나가는 배후의 안전
을 확보하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동맹을 맺었다. 1567년 교토진출을 가로막고 있는 미노와 오미에를 물
리치고 이나바 산성[稻葉山城]을 함락시켰다. 이로써 노부나가는 교토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고 이때
부터 그는 천하포무(天下布武)라고 새겨진 인장(印章)을 사용하였다. 정복한 이나바 산성은 기후 성[岐阜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568년에는 13대 쇼군 요시테루의 동생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가 막부(幕府)의 잃어버린 영지를 회복해
줄 것을 청해 왔다. 이를 기회로 삼아 노부나가는 쇼군으로부터 무장으로 실력과 신뢰받았으며 교토에 진출할 수 있는 절
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1568년 9월 기후 성을 출발한 노부나가는 다이묘들의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교토에 가장 먼저 입성하였다. 쓰러져 가는
무로마치 막부를 재건하고 실권을 장악하여 나갔다. 노부나가의 지원을 받은 아시카가 요시나키는 쇼군의 자리에 올랐고
노부나가에게 답례로 부장군(副將軍)에 임명하였지만 이를 거절하였다. 그는 천하통일에 관심을 집중하였기에 부장군이라
는 벼슬은 보잘 것없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부나가는 쇼군 요시아키에게 니조 성[二條城]을 지어주고 황족
과 막부 권력자들의 환심을 샀다. 그리고 쇼군 요시아키를 이용하여 지방의 다이묘들을 모두 자신의 세력하에 두고자 하
였다.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전국의 다이묘들과 전쟁은 계속되었다. 1570년 4월 아사이씨와 아사쿠라씨의 연합군과 전투에서 벌
였지만 이들을 정벌하지 못했고 그해 9월에는 이시야마의 난공불락의 성이지 사찰인 혼간지를 공격하다가 오히려 대패를
당했다. 1572년 교토 진출을 노리는 다케다 신겐과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여세를 몰아 아시이씨와 아사쿠라씨도 정벌하여
모두 자결하게 하였다. 이때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든 쇼군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함으로써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를
멸망시켰다. 이후 계속되는 전투에서 이세의 나가시마 전투에서 철포를 앞세워 승리하였고, 대패를 경험했던 이시야마 혼
간지를 정복하였다. 이로써 노부나가는 대부분 다이묘를 정벌한 실력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동안 대부분의 다이묘를 평정하였으나 아직 추고쿠 지방에는 강력한 모리씨가 남아있었다. 노부나가는 하시바 히데요시
에게 모리씨의 정벌을 명령하였다. 히데요시는 돗토리 정복하였고 1582년 5월 다카마쓰 성을 공략하다가 모리씨의 강력한
저항을 받고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5월 29일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지원하기 위해 직접 출병하였고 1582년 6월 2일 혼
노지[本能寺]에서 여장을 풀었다. 그날 새벽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습격을 받고 자결하였다. 노부나가의 장
남 노부타다[信忠]는 교토에서 반란군에게 잡혀 처형되었다. 다카마쓰에 있던 하시바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사망 전갈을
받자마자 회군하여 미쓰히데를 정벌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의 근거지였던 오하리와 미노 지방이 비옥한 곡창지대로 경제력이 뒷
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군대는 다량의 철포를 구입하였고 기동성이 뛰어났다. 그는 장기간에 걸친 전국전란의 시대에
통일의 서광을 비추어 준 전제무장(專制武將)으로 주목할 만한 여러 정책을 과감하게 실시하였다. 구체제·구관습의 타
파, 새 인물의 등용, 금은 광산의 경영, 화폐의 주조, 도로·교량의 정비, 관소(關所: 검문소)의 폐지 등 혁신적인 정책
으로 새 시대의 도래에 대응하였던 인물로 평가된다.

용[dragon, 龍]

동ㆍ서양의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거대한 뱀을 닮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신성한 힘을 지닌 상서로운 존
재로 여겨지지만 기독교 문명에서는 악과 이교(異敎)를 상징하는 퇴치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상상의 영수(靈獸)인 용의 존재는 많은 문명에서 발견된다.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거대한 뱀
이나 도마뱀과 닮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한국ㆍ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몸에 비늘이 있고 네 개의 발에 날카로
운 발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매우 큰 눈과 긴 수염을 지니고 있는데 코와 입으로는 불이나 독을 내뿜으며 여
러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몸의 색깔은 녹색[綠], 붉은색[赤], 누런색[黃], 흰색[白], 검은색[黑] 등으로
나타난다. 중국 위(魏)나라 때 장읍(張揖)이 지은 자전(字典)인 광아(廣雅)에는 용이 아홉 가지 동물들과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곧 머리는 낙타[駝], 뿔은 사슴[鹿], 눈은 토끼[兎], 귀는 소[牛], 몸통은 뱀[蛇], 배는
큰 조개[蜃], 비늘은 잉어[鯉], 발톱은 매[鷹], 주먹은 호랑이[虎]와 비슷하다고 되어 있다. 또한 비늘은 81개이며, 소리
는 구리쟁반[銅盤]을 울리는 소리와 같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에는 구슬이 있으며, 목 아래에는 거꾸로
된 비늘[逆鱗]이 있다고 한다. 용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지만 날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박쥐
와 비슷한 날개와 가시가 달린 꼬리를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용을 나타내는 한자 ‘용(龍)’은 일찍이 갑골문(甲骨文)에서도 발견되는데 뿔과 큰 입, 수염을 지닌 머리와 뱀을 닮은
긴 몸의 형상을 본뜨고 있다. 영어의 ‘드래곤(dragon)’이나 라틴어 ‘드라코(draco)’는 그리스어 ‘드라
콘(δρακων)’에서 비롯되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커다란 뱀이나 도마뱀ㆍ악어ㆍ고래 등 바다나 호수ㆍ하천 등의
물속에서 생활하는 큰 동물들을 뭉뚱그려서 드라콘이라고 불렀다.
상상의 동물인 용의 상징적 의미는 지역이나 문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거대한 뱀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초
자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이는 원시종교에서 부활과 재생의 힘을 지닌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
는 동물로 숭배되던 뱀이 신격화하여 형상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1) 고대 인도
인도 신화에서 거대한 뱀의 형상을 지닌 ‘나가(Naga)’는 지하세계에서 대지의 보물을 지키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불교
에서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용왕(龍王)으로 표현된다. 법화경(法華經)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난타(難?), 발난타(跋難
?), 사가라(娑伽羅), 화수길(和修吉), 덕차가(德叉迦),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 마나사(摩那斯), 우발라(優鉢羅) 등 팔
대용왕(八大龍王)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왕은 강과 호수ㆍ바다를 지키는 물의 신으로 겨울에는 지하 깊은 곳에서
살다가 봄에는 하늘로 오른다. 천기(天氣)를 다스리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용왕이 화가 나면 가뭄이 들고 그 화를 달래야
만 비를 내려준다고 여겨졌다.
(2) 중국
중국에서도 용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신이(神異)한 영수(靈獸)로 여겨졌다. 예기(禮記)의 예운편(禮運篇)에서는
용을 기린[麟]ㆍ봉황[鳳]ㆍ거북[?]과 함께 ‘사령(四?)’의 하나로 꼽고 있으며, 주역(周易)의 문언전(文言傳)에는 '구
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고 기록되어 있다. 용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하나로 ‘진(辰)’
으로 표현되는데, 십이지에서는 유일하게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국의 고대 점성술에서는 용을 백호(白虎)ㆍ주작(朱雀)ㆍ현무(玄武)와 함께 성좌(星座)를 나타내는 동물로 신성
시하여 동쪽의 7가지 별자리인 칠수(七宿)를 청룡(靑龍)이라 하였다. 용은 우주에 존재하는 신성한 자연력을 상징하는 존
재이자 모든 동물들의 왕으로 여겨졌다. 용은 농사에 영향을 미치는 비와 가뭄ㆍ홍수 등을 다스리는 존재로 숭배되어 사
람들은 가뭄이 들면 용의 형상을 본떠 춤을 추면서 기우제를 지냈다.
(3) 한국
한국에서도 용은 고대부터 풍운(風雲)의 조화를 다스리는 수신(水神)ㆍ해신(海神)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일찍부터 민간과
국가 차원에서 국가의 수호신이자 왕실의 조상신으로, 그리고 농경을 보호하는 비의 신이자 풍파를 주재하는 바다의 신으
로 풍년(豊年)과 풍어(豊漁)를 기원하기 위해 숭배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인 551년 명산(名
山)ㆍ대천(大川)의 용신(龍神)을 섬기는 팔관회(八關會)가 국가 차원에서 처음 실시되었는데, 이러한 풍습은 고려시대까
지 이어졌다.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용(龍)에 관한 다양한 설화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용은 호국(護
國)ㆍ호법(護法)의 존재일 뿐 아니라 불살계(不殺戒)를 깨치지 못했을 경우에는 사람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독룡(毒龍)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바다와 강, 연못 등에 살며 사람의 모습이나 웅신(熊神) 등으로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4세기 이후의 고구려 고분에서 발견되는 사신도(四神圖)에서는 용의 상징성에 대한 중국 문화의 영향이 확인된다. 훈몽자
회(訓夢字會)에는 용의 훈(訓)을 ‘미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에는 용에 관한 고유어뿐 아니라 이무기에 관한 고
유한 문화적 전통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뱀이 500년을 되면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물에서 500년을 지내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지역에 따라 이무기는 이시미, 영노, 꽝철이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 용에 관해 중국이나 불교의 영향과는 무관한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
다.
(4) 이집트와 유럽
지중해 지역과 유럽 신화에서 용은 동아시아와는 달리 수신(水神)이나 해신(海神)으로서의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큰 뱀이 순환과 재생을 낳는 우주적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인간 세계와 대립되는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뱀의 형상을 닮은 히드라(Hydra)나 키마이라(Khimaera)와 같은
괴물의 존재가 상상되기도 했으며, 뱀과 용도 죽음과 파괴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페니키아 신화에서 비롯된 레비아단(Leviathan)은 구약성서의 욥기에서 뱀과 악어와 같은 형상으로 입과 코로 불과 연기
를 내뿜는 거대한 바다 괴물로 묘사되어 있다. 창세기에서도 나타나듯이 유대의 전통에서는 뱀은 인간을 유혹하는 죄악의
근원이자 간계가 깊은 동물로 인식되었는데,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에서도 용은 천사들과 전쟁을 벌이는 악마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기독교의 확산과 더불어 용은 신의 은총을 방해하는 악마와 이교(異敎)의 상징으로 여겨져 천사와 기사에게
퇴치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사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는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가 백마
를 타고 인간을 제물로 요구하는 용을 퇴치한 전설이 널리 유행하였다.
각 민족의 고유한 전승에서는 용의 모습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용은 지하세계에 살면서 보물을 수호하거나 인간에게
유익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용사에게 지혜와 능력을 전해주는 존재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기후를 다스리는 농경신으
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용은 기사와 성인(聖人) 이야기에 폭넓게 등장하는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용의 상징적
의미는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한국ㆍ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용은 농업과 어업에 영향을 끼치는 기후의 변화와 풍운의 조화를 다스리는 존재로 인식되면
서 우주에 존재하는 신성한 힘과 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나아가 용은 그러한 자연적 원리가 실현된 인간 사회
의 정치적 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처럼 용은 우주 만물의 질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지면서 제왕(帝王)의 권력을 상징하는 동물로 쓰이기도 했다. 그래
서 임금을 나타내는 말에는 용(龍)이라는 글자가 쓰였는데, 예컨대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 임금이 앉는 자리는 용
상(龍床), 임금이 타는 수레나 가마는 용여(龍輿)ㆍ용가(龍駕)라고 불렀다. 임금이 입는 옷은 용포(龍袍), 임금의 지위는
용위(龍位)라고 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조선의 건국을 합리화하고 건국 시조들을 찬양하기 위한 서사시를 지으면서 용비
어천가(龍飛御天歌)라고 불렀다.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稅難編)에는 용의 목 밑에는 비늘이 거꾸로 나 있는 역린(逆
鱗)이 하나 있는데 이것을 잘못 건드리면 용이 노하여 사람을 죽이게 된다고 하여 임금의 분노를 비유적으로 ‘역린’이
라고 표현하였다.
용 가운데에서도 중앙을 나타내는 황룡(黃龍)이 제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쓰였고, 왕실의 건물이나 의복, 용품 등에는 황
룡이 그려졌다. 그런데 신분에 따라 발톱의 개수를 다르게 하기도 했는데, 제왕은 발톱이 다섯 개인 오조룡(五爪龍)을,
태자나 제후왕은 발톱이 네 개인 사조룡(四爪龍)을, 세손(世孫)은 발톱이 세 개인 삼조룡(三爪龍)을 써서 구분하기도 했
다. 용을 그릴 때에도 오조룡은 왕실에서만 그릴 수 있었으며, 민간에서는 사조룡이나 삼조룡만 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선 고종 때에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에는 발톱이 일곱 개인 칠조룡(七爪龍)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강화된 왕권
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해석된다.
한편, 용이 동물의 왕으로 여겨지면서 뛰어난 사람이나 성취를 나타내는 데에도 용(龍)의 상징적 의미가 활용되었다. 날
랜 준마(駿馬)를 용구(龍駒)라고 부르며, 입신출세하는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좋지 못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개천에서 용났다”라는 속담이 있으며, 어떤 사람의 용모나 처지가 좋아졌을 경우
에 “용됐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용이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인식되어 용꿈을 꾸면 재수가 좋다는
믿음이 전해졌다. 그래서 민화(民畵)에서는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구름과 함께 표현하는 운룡도(雲龍圖)가 많이 그려졌으
며, 용꿈을 그림으로 표현한 몽룡도(夢龍圖)도 전해진다.
또한 용의 신통한 능력은 용이 지니고 있는 여의주(如意珠)에서 비롯되어, 사람도 여의주를 얻으면 용처럼 온갖 신통력을
부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일이 뜻한 대로 잘되어 가는 것을 “여의주를 얻었다”는 것에 비유하여 나타
내기도 한다.
민간에서 용은 물을 관장하는 수신이자 풍파와 물고기들을 다스리는 바다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마을마다 우물이나 샘에
용신이 거주한다고 여기고 용왕굿이나 용신제(龍神祭)를 지냈다. 물이 풍부한 연못이나 우물은 용못[龍沼]이나 용우물[龍
井]이라고 불렸으며, 임신을 기원하며 음력 정월 보름에 새벽 일찍 남보다 먼저 우물의 물을 떠다 먹으려 하는 ‘용알뜨
기’의 풍습도 있었다. 그리고 겨울에 연못의 얼음이 깨지는 방향으로 다음해 농사를 점치는 ‘용경(龍耕)’의 풍습도 있
었다. 이처럼 농경사회에서 용은 생명과 풍요를 주재하는 자연신으로 숭배되었다.
고기잡이를 하는 어민이나 항해를 하는 뱃사람들은 바다 밑의 용궁에 사는 용왕이 물고기와 파도를 다스린다고 여겼다.
그래서 용왕이 어민들에게는 특히 중요한 자연신으로 숭배되어 마을마다 정기적으로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용왕제를 지
냈다. 용왕은 해신(海神)이자 바람을 다스리는 풍신(風神)으로 여겨졌고 배가 난파하는 것은 용왕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
이라고 여겼다. 또한 용왕이 사는 용궁에는 온갖 보물이 가득하다고 상상되어 용왕의 가족을 구해주어 복을 받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졌다. 또한 바다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용이 하늘로 오르는 것이라고 해서 ‘용오름’이
라고 불렀다.
풍수지리설에서도 용의 상징적 의미가 쓰였다. 풍수지리설에서는 산의 줄기를 용이라고 했는데, 지형에 따라 용이 길
룡(吉龍)ㆍ흉룡(凶龍)ㆍ생룡(生龍)ㆍ사룡(死龍)으로 나뉜다고 보았다. 따라서 지형과 산세를 잘 살펴서 흉룡(凶龍)과 사
룡(死龍)을 피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수신(水神)인 용은 건축물의 화재 예방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기와의 무늬나 용마
루의 용두(龍頭) 등으로 표현되어 방화신(防火神)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용이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전투의 수호자로 여겨져 일찍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방패 등에 용의 문양
이 쓰였다. 북유럽의 바이킹도 방패와 뱃머리에 용의 머리를 새겨 넣었다. 오늘날까지도 용은 왕실 등의 문장(紋章) 등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영국의 웨일즈에는 켈트족의 수호신인 적룡(赤龍)이 백룡(白龍)을 물리친 전설이 전해지며, 날개
가 달린 적룡(赤龍)은 오늘날까지도 웨일즈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모사만다 보다남... 메이카셋녜예 사바카!
나모삼만다 보다남... 메이카샤바카 용신화염창(龍神火炎槍)!

유나[維那]

승려의 직명. 기원은 승단의 사무적 관장자를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의 갈마타나. 중국에서는 승중(僧衆)을 관리하는 의
미에서 강유(綱維)의 유(維)와, 갈마타나의 나(那)를 따서 유나(維那)라는 역직을 만들어서 승관제에 도입했다. 유나는
도유나(都維那)라고도 하는데, 원래는 도(중앙)를 담당하는 유나라는 뜻인 것 같으며 수사(授事)라고도 한다. 일본의 사
원 제도에서는 상고부터 중고에 걸쳐서 대사원의 승강(僧綱)은 상좌(上座)?사주(寺主)?도유나(都維那)로 구성되었다. 유
나는 각 종파에서도 사무당국의 책임을 구체적 또는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용어이며, 법요의장에서는 승중의 진퇴나 위
의(威義)를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로, 독경 등을 선창하고, 회향(回向)도 담당한다. 선종에서는 육지사(六知事)의 하나로
서 독자적인 전개를 보이는데, 승중의 수행을 독려?감시하고 당내의 중무(衆務)를 총괄하는 역위로 규정되어 있다. 기
강(紀綱)이라고도 하며 대중의 법열을 유발시키므로 열중(悅衆)이라고도 한다.

육도[六道]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무지한 중생이 윤회전생(輪廻轉生)하게 되는 6가지 세계 또는 경계.
망자가 죽어서 가게되는 곳 중에 가장 좋지 못한 곳인 삼악도(三惡道)는 지옥도(地獄道), 그 다음이 아귀도(餓鬼道), 축
생도(畜生道)이며 삼선도(三善道)는 아수라도(阿修羅道) 또는 수라도,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의 여섯 갈래로 갈
라져 있다. 이것을 육도라고 하며 여기에 삼계인 욕계, 색계, 무색계가 더하여 삼계육도라고 부른다.
6도를 6취(趣)라고도 하는데, 마지막의 천상도·인간도는 선취(善趣)이고, 앞의 세가지 도는 악취(惡趣)가 된다. 또 보통
불경에서는 수라도를 제외한 5도로 나누기도 한다. 불교에서 중생은 집착과 선업, 악업으로 해탈하지 못하고 육도를 윤회
하게 된다고 말한다. 과거에 인간이었던 자가 동물이나 벌레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벌레였던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기
도 한다. 중생은 번뇌와 업보에 따라 윤회전생(輪廻轉生)하게 된다고 한다.

음양도[陰陽道]

중국 고대의 음양오행설에 기초하여 우주ㆍ자연현상의 원리나 인간의 길흉을 설명하고 판단하는 신앙적 사상이나 그 학
문.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 2가지 기(氣)의 상호작용에 의해 천지만물이 창출된다는 음양설(陰陽說)과
목(木)ㆍ화(火)ㆍ토(土)ㆍ금(金)ㆍ수(水)라는 5개의 구성원소의 교체ㆍ순환으로 만상이 변한다는 오행설이 한나라대에 음
양오행설로서 합체, 삼국시대 초기에 음양도가 한반도에 들어와 6세기에 일본으로 전해졌다. 음양료(陰陽寮)를 모체로 음
양도라는 전문학파, 음양사 집단을 형성하여 일본 독자적인 전개를 한다.
천문박사는 천재지변 등을 관측하여 하늘의 뜻을 읽고, 길흉화복을 판단하여 천왕에게 아뢰는 등 역법ㆍ점술을 구사하는
실천적인 성격에 있어서 음양도는 국가의 핵심을 지지하고 있었다. 숙요도(宿曜道, 밀교 점성술)와 절충하여 체계화되어
헤이안(平安) 중기 이후에는 음양사에 의한 수법ㆍ제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우주의 질서나 삼라만상에 통하는 음양도
는 국가의 정점(천왕)으로부터 민중의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하여 신도 등에게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는 등 일본의 문화ㆍ풍
속의 일대 조류를 이루었다.

* 식귀(式鬼)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어 모든 저주를 요괴로 바꾸는 음양도의 비법.

응룡[應龍]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제왕인 황제(黃帝)에 직속되어 있는 용. 네 개의 다리에 박쥐와 같은 날개가 있고, 발에는 세 개의
발가락이 있다. 물을 막아서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이 있는데, 황제가 괴물 치우(蚩尤)와 싸웠을 때는 폭풍을 일으켜서
황제군을 응원했다. 그렇지만 치우와 싸운 일로 사악함을 띠게 되어 신들이 사는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게 되었고, 그후
중국 남쪽 땅에 살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응룡이 있는 남쪽 땅에는 비가 많이 오지만, 그 외의 장소는 가뭄에 고통받게
되었다고 한다.

일자경륜왕주(一字頃輪王呪)
진리에 가장 가까운 말. 이를 외침으로써 모든 악을 배제한다.

아비라움켄 아라하시 야나우...... .

일천[Surya, 日天]

인도 고대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신 수리아(Surya)를 불교에서 부르는 이름.
인도의 고대신화에는 태양과 관련된 신이 여럿 등장한다. 태양 자체는 수리아, 태양의 무한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아디티
야(Aditiya), 아디티야의 아들로 여행자들의 안내자 또는 가축의 보호자인 푸샨(Pusan), 새벽의 신인 우샤스(Usas), 만물
의 생장을 관장하는 사비트리(Savitri) 등이 그들이다. 이 중 수리아가 가장 영향력이 강하여 오랫동안 태양신으로 군림
하였으나, 힌두교 신화에 수용되면서 비슈누에게 밀려 보통의 신이 되었다. 이 수리야가 불교에 수용되어 일천(日天)이
되었다.
장아함경에서는 일천을‘과거세에 선심(善心)으로 사문과 바라문을 공양하고 여러 곤궁한 자를 구제하며, 또한 십선업(十
善業)을 닦았다. 그 인연에 의해 일궁전(日宮殿)에 태어나 하늘의 광명을 얻었으므로 선업광명(善業光明) 또는 선업천광
명(善業天光明)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금광명경에는 일천자(日天子)가 타오르는 불길로 하늘에 빛을 뿜어내
고 어두운 곳을 비춘다는 내용이 나온다.
밀교에서도 중시되어 불법을 옹호하는 팔방천·십이천 중 한 명으로 월천(月天)과 함께 만다라에 등장한다. 특히 태장계
만다라에서는 일곱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에 올라탄 형상으로 표현된다. 양손에 연꽃을 들고 마부를 거느리고 있어 아
디티야를 연상하게 한다.

옴 사츠바봇다 보다이삿타 카리타야 유야바시카...... .

제석천[帝釋天]

불교에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고대 인도 힌두교의 신 인드라를 불교에서 수용한 것이다.
불교의 수호신으로 고대 인도의 신 인드라(Indra)를 수용한 것이다. 석제환인다라(釋帝桓因陀羅)·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
婆因陀羅)로 음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제석천이라 한다. 제(帝)는 인드라의 의역이고, 석(釋)은 샤크라의 음역이다. 경
전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천제석(天帝釋)·천주(天主)라고도 부른다. 법화경 서품에 나오는 '제석은 환인이며, 도리천주이고 옥황상제
로서 제석이라 일컫는다' 는 말에 따른 것이다. 욕계 제2천인 도리천의 주인이며, 수미산(須彌山) 위의 선견성(善見城)에
살면서 중턱에 있는 사천왕을 거느리고 불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중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과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
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
한다. 제석천이 부처님 설법회상을 항상 떠나지 않는 것은 일찍이 부처님이 도리천(?利天)에 올라가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할 때 제석천이 사자좌(獅子座)를 설치하고 정성으로 장엄하여 부처님을 영접한 데서 비롯된다. 밀교에서는 호
세팔방천(護世八方天) 및 십이천(十二天)의 하나로서 동방을 수호하는 신이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
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제석천이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는 인다라망(因陀羅網)이다. 이것은 제석천궁에 장엄되어 있는 그물로 수많은 보배 구슬로
이루어져 있어 흔들면 서로 빛을 발하면서 함께 어우러져 적을 물리친다. 리그베다 시대에는 이것으로 아수라(阿修羅)의
군대를 정벌하여 모든 신을 주재하는 최고의 신이 되었다. 불교에 귀의한 뒤의 인다라망은 일체 세상 모든 존재가 홀로
있지 않고 첩첩이 겹쳐진 가운데 서로 얽히고 맞끼워져 함께 존재함을 설명하는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의 진리에 비
유된다. 불상으로는 일찍이 간다라 지방에서 범천과 함께 삼존상으로 제작된 예가 보이고, 한국에서는 경주 석굴암의 제
석천왕상이 대표적이다. 이 불상은 오른손에 불자(拂子), 왼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쥐고 있는데, 불자는 중생의 번뇌를
털어내는 도구이며 금강저는 인간의 탐욕과 죄악을 씻어주는 지혜를 상징한다.

인다라야 소바카! 옴쿄바미리캬 나라아라우진자쿠...... .
인다라야 소바카 뇌제전박쇄(雷帝電縛鎖)!
제석천의 종자. 그 분노의 벼락은 일체의 마(魔)를 멸하고, 사악한 신을 파(破)한다.
샤카다이바 인다라하키라야 소바카 파사뇌전고(破邪雷電鼓)!

* 아스트라(Astra)
제석천이 아수라족의 왕 라바나의 대군을 일격에 사멸시켰다는 법구.

석가제바 인다라... 옴쿄바미리캬 나라아로... 아라바카 아캬시코로캬... 시니 바라소카 소바카!
옴 캬바미리캬 캬바카미리캬 나라마라우진죠 아라바카! 아캬시코로 캬바카테! 시나바라속 소바카!

주금도(呪禁道)
음양도보다 좀 더 주술적인 요소가 강하며, 술법에 있어서 도교의 색채가 짙음. 주금의 금(禁)은 무언가를 금한다는 것이
아니라 '칼붙이를 손에 들고 주문을 왼다' 는 의미를 지님.

천지어주(天之御柱) 지지어주(地之御柱) 내림수호(來臨守護)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나무대암흑천(南無大暗黑天) 내림파광(來臨破光)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나무천조선(南無天鳥船) 내림급급(來臨急急)
팔십화진일신(八十禍津日神) 대화진일신(大禍津日神) 어둠에서 나와 나를 따르라! 식귀열풍진(式鬼裂風陣)!!

* 주금도 천지이극권(天地二極拳)
삼라만상의 형상을 이루는 음양천지, 이대극(二大極)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왼손은 하늘, 오른손은 땅을 상징한다.

신위여악(神威如嶽) 신은여해(神恩如海) 주금도(呪禁道) 식취영세(息吹永世)
생명에 신기(神氣)를 불어넣어 스스로를 신과 일체화시킨다.

* 주금도 식귀갑주(式鬼甲胄)
천지현묘(天地玄妙) 행신변통력(行神變通力) 주금도(呪禁道) 귀창파(鬼槍波)!

증장천왕(增長天王)

증장천왕은 수미산 중턱 남쪽에 있는 유리 지방을 관장하는 사천왕이다. 비루인천왕이라고도 한다.
자꾸 늘어난다 또는 넓어진다는 뜻을 한자로 번역해서 늘릴 증(增), 길 장(長)을 써서 증장이라고 한다. 중생의 이익을
넓고 길게 만드는 천왕이라는 뜻이다.
굼반다와 프레타를 거느리는데, 굼반다는 배가 부르고 욕심이 많은 아귀로 비사사와 같이 사람의 정기를 빨아 먹는 귀신
이며, 프레타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주무르며 6악도라 부르는 중생들이 거처하는 아귀를 말한다. 아들은 91명으로 인드
라라고 부른다.
다라니 집경에서는 왼손은 펴서 칼을 잡고, 오른손에는 창을 잡는다고 한다. 오른손을 허리에 대고 왼손에 창을 잡거나
칼을 잡는다고도 한다.

지국천왕(持國天王)

사천왕 중의 하나로 수미산 중턱에 살며 동방을 지키는 천신이다. 수미산을 다스리는 제석천 또는 부처님이 지국천왕으로
하여금 동방에서 불법을 지키라고 명령하였으며, 국토를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할 것을 맹세하였다고 하여 지국천왕으로
불린다. 힌두교에서는 드르타라슈트라(산스크리트어: ??????????)라 부른다.
다라니집경에는 왼손은 팔을 내려 칼을 잡고, 오른손은 팔을 구부려 보주를 쥔다고 하고, 일자불정륜왕경에는 왼손에는
창을 잡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올려든다고 하였다.
비파를 든 사천왕상과 보탑을 든 사천왕상의 명칭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보통 비파를 든 사문천왕을 지국천왕으로, 보탑
을 든 사문천왕은 다문천왕으로 추정한다.
고대 인도 베다 신화에서는 지국천왕은 간다르바를 거느렸으며, 인드라고 불리는 91명의 아들이 있다고 한다.
지국천왕이 건달파나 비사사라는 귀신을 부리면서 동방에서 참된 도리를 파괴하고 선한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을 물리치는
일을 한다고 믿었다.

지권인[智拳印]

부처가 결하는 수인의 하나.
대일여래(大日如來) 즉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결하는 수인이다.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만 이 수인을 하므로 이 수
인을 한 불상은 곧 비로자나불이다.
형상은 두 손을 모두 금강권(金剛拳 : 엄지손가락을 손바닥에 넣고 다른 네 손으로 싸 쥐는 것)으로 만들고 가슴까지 들
어올린 후, 왼손 집게손가락을 펴 세워서 위쪽 오른손 주먹 속에 넣는다. 그 주먹 속에서 오른손 엄지와 왼손 집게손가락
이 서로 맞닿는다. 이때 오른손은 법계를 뜻하고 왼손은 중생을 뜻하여, 이 수인은 법으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 일체의 무명 번뇌를 없애고 부처의 지혜를 얻는다는 뜻이기도 하며, 이(理)와 지(智)는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
생은 같은 것이며, 미혹과 깨달음도 본래는 하나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남차[指南車]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 때 만들어졌다고 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수레이다. 자석과는 관련이 없으며, 한 방향만 가리키도
록 만들어진 목제인형이라고 생각된다. 
자석(磁石)을 이용하여 남북을 가리키게 한 장치라고 생각된 적도 있으나, 현재는 자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톱니바
퀴 장치에 의하여 차 위에 수직으로 세운 목제인형이 늘 일정한 방향만을 가리키게 한 장치라는 설이 유력하다. 지남차의
발명가도, 주공(周公) 이외에 전설적으로는 황제(黃帝)가 있으며, 한(漢)나라의 장형(張衡), 삼국시대의 마균(馬鈞),
진(晉)나라의 구순(區純) 등 역대 과학자로 지목되는 인물은 모두 제작자로 꼽힌다. 후대에는 제왕(帝王) 행렬의 선두에
놓이게 되었으며 송사(宋史) 여복지(輿服志)에 그 구조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있어 그것에 의해 지남차가 복원되었다.

지장보살[ksitigarbha, 地藏菩薩]

석가모니의 부촉을 받아, 그가 입멸한 뒤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이 출현하기까지의 무불(無佛)시대에 6도(六道)의 중생
을 교화·구제한다는 보살.
지장은 브라마나 시대부터 일장(日藏)·월장(月藏)·천장(天藏) 등과 함께, 별의 신으로서 신앙되었다. 불교에서는 6세기
초 외족의 침입으로 북인도의 불교 파괴의 사회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널리 유포되었다.
이것이 중국에 들어와 염마시왕(閻魔十王) 신앙과 결합되고, 말법(末法) 사상이 활기를 띠면서 지장을 통한 구제를 희구
하는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관음신앙과 더불어 중요한 민간신앙이 되었다.

옴 카카카 비삼마예 소바카!
옴 카카카 소타다 소바카!

지천[地天]

산스크리트어 p?thiv? 대지를 주관하는 신(神).

옴 치텐 부리톄히예 소바카!

진언[mantra, 眞言]

석가의 깨달음이나 서원(誓願)을 나타내는 말로서, 불교에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신주(神呪).
주(呪)·신주(神呪)·밀주(密呪)·밀언(密言) 등으로도 번역한다. '만트라' 는 사고의 도구, 즉 언어를 의미하며, 나아가
서는 신들에 대하여 부르는 신성하고 마력적(魔力的)인 어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도에서는 베다 시대부터 널리 행해졌
다. 밀교에서는 신밀(身密)·어밀(語密)·의밀(意密)의 3밀 가운데 어밀에 해당하는데, 듣는 자로서는 심오하기 때문에
진언비밀이라고도 한다.
중국·한국·일본 등에서는 번역하지 않고, 원어를 음사(音寫)하며 이를 많이 외우면 재액이 물러가고 공덕이 쌓인다고
한다. 또한 번뇌를 멸하는 것, 즉 지혜를 뜻하는 명(明), 선을 일으키고 악을 누르는 힘을 뜻하는 것으로서, 비교적 짧은
주를 진언, 긴 주를 다라니(陀羅尼)라고도 한다.

아비라움켄 아라하시...... .
아비라움켄 반움타라쿠키... 반움타라쿠키 리키아쿠 아비라...... .
옴 아비라움켄 소바카!
나무본존계(南無本尊界) 마리지천(摩利支天) 내림영격(來臨影擊)
다 나무삼만다 보타남 키리카소바카 나모...... .
* 소북두진언
노막삼만다 나라노 예켸키 하이가 이다이... 카이라이보라...

즉신성불[卽身成佛]

즉신보리(卽身菩提) ? 현신성불(現身成佛)ㆍ현생성불(現生成佛)이라고도 한다.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삼대아승지겁(三
大阿僧祗劫)의 오랜 수행과정을 거쳐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몸 그대로 바로 불(佛)이 되는 것. 승불교(乘佛敎)
에선 심(心)과 불(佛)과 중생, 이 세 가지가 별개가 아니라 그 본성은 다 같은 진여(眞如)이므로 미(迷)와 오범부(悟凡
夫)와 성자(聖者)라는 구별은 본래의 자리에서는 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현실인 육신에 적응시켜 말한 것
이 즉신성불이다.

차크라[chakra]

인간 신체의 여러 곳에 있는 정신적 힘의 중심점 가운데 하나.
산스크리트어로 ‘바퀴’, 또는 ‘원반’을 의미한다. 물질적 혹은 정신의학적 견지에서 정확하게 규명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중심부를 말한다. 힌두교와 탄트라 불교의 일부 종파에서 행해지는 신체수련에서 중요시되는 개념으로, 정신적인
힘과 육체적인 기능이 합쳐져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육체적 수준에서 내분비계와 직접 관련된 회전하는 에너지의 중심지점으로, 에너지를 받아 진행시키고 전달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또한 교감신경계, 부교감신경계 및 자율신경계와도 상호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간의 온몸 구석구석과 긴밀히
연결을 맺고 있다.
인간의 신체에는 약 8만 8천 개의 차크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6개의 중요한 차크라가 척수를 따라 위치하고,
다른 하나는 두개골 최상부에 있다. 주요 6개 차크라로 회음부에 있는 제1차크라 물라다라차크라(m?l?dh?ra-cakra), 성기
에 있는 제2차크라 스바디스타나차크라(sv?dhi??h?na-cakra), 배꼽 근처에 있는 제3차크라 마니푸라차크
라(ma?ip?ra-cakra), 가슴에 있는 제4차크라 아나하타차크라(an?hata-cakra), 목에 있는 제5차크라 비슈다차크
라(vi?huddha-cakra), 미간에 있는 제6차크라 아주나차크라(?jn?-cakra)가 있다.

청룡[靑龍]

중국에서 사신(四神)의 하나로 알려진 신성한 용. 모습은 보통 용과 다름이 없지만, 이름 그대로 푸른색을 띠고 있다. 고
대의 항아리 등에 그려진 청룡은, 머리만 흰색이나 황색인 경우도 있다. 사신은 오행사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푸른
색의 청룡은 동쪽을 수호하며 봄에 나타난다고 여겨졌다. 청룡을 신성하다고 보는 사상은 일본에도 있는데, 헤이안 후기
의 설화집 금석물어집에는 유메도노(夢殿) 속에 들어간 쇼토쿠(聖德) 태자의 혼이 청룡을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불교 경
전을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치우[蚩尤]

중국 고대 신화에 나타나는 인물로 구려족(九黎族)의 우두머리로서 황제(黃帝)와 전쟁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전투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중국과 한국에서 전신(戰神)이나 병기의 신(兵主神)으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중국 고대 신화에 나타나는 인물로 사기(史記), 산해경(山海經), 상서(尙書), 전국책(戰國策), 국어(國語), 예기(禮記),
일주서(逸周書), 태평어람(太平御覽) 등의 문헌에 그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하지만 문헌에 따라 전승되는 내용에 차이
가 있다.
사기(史記)의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신농씨(神農氏)의 세력이 쇠퇴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
자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가 각지의 제후들을 정벌하였다. 하지만 치우(蚩尤)는 세력이 막강해 정벌할 수 없었다. 황
제는 세력을 정비하여 우선 판천(阪泉)의 전투에서 염제(炎帝)를 복속시켰다. 그리고 치우가 굴복하지 않고 난을 일으키
자 군사와 제후를 모아 탁록(?鹿)에서 전투를 벌여 치우를 죽이고 마침내 신농씨를 대신해 천자(天子)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산해경(山海經)에는 황제와 치우가 싸운 곳이 기주(冀州)이며, 치우가 먼저 황제를 정벌해 왔다고 반대로 기록되
어 있다. 산해경에 따르면, 치우가 병력을 이끌고 황제를 쳐들어오자, 황제는 응룡(應龍)으로 하여금 기주(冀州) 들판에
서 그를 공격하게 하였다. 응룡은 물을 가두어 치우를 막으려 하였으나, 치우는 풍백(風伯)과 우사(雨師)에게 청하여 큰
비바람이 몰아치게 하였다. 황제는 천녀(天女)인 발(魃)을 보내 비를 멈추게 하여 마침내 치우를 죽였다. 이 때 치우를
묶었던 차꼬와 수갑에 묻은 피에서 붉은 단풍나무(楓木)가 자랐다.
그리고 급총주서(汲?周書)라고도 불리는 일주서(逸周書)에는 치우가 적제(赤帝, 炎帝)를 공격해오자, 적제가 황제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둘이 힘을 합하여 치우를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기록에 따라 내용의 차이가 있지만, 치우와 황제의 전쟁은 중국 건국 신화의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중
국의 한족(漢族)이 스스로를 ‘염제와 황제의 자손(炎黃之孫)’이라고 표현하듯이 황제와 염제의 부족이 연맹을 이루어
치우가 이끌던 구려(九黎)의 부족연맹을 격퇴시킨 과정은 중국의 고대 국가 성립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또한 오늘
날에도 귀주성(貴州省) 등지에 주로 분포하는 묘족(苗族)은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섬기며, 단풍나무 숭배 등 치우와
관련된 풍습을 보존하고 있다. 따라서 치우 신화는 일반적으로, 황제와 염제로 상징되는 화하족(華夏族)과 치우로 상징되
는 남방부족 사이의 대립이 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치우는 전설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짐승의 몸을 하고, 머리는 구리, 이마는 쇠로 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여섯 개의 팔과 네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며, 바람과 비, 안개 등을 부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또한 81명이나 72명의 형제가 있었다고도 하는데, 이는 그가 거느렸던 부족의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황제와
의 전쟁에서 치우는 도깨비와 요괴를 거느렸다고 표현될 정도로 전투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때문에 예로부터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전신(戰神)이나 병기의 신(兵主神)으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따르면 진시
황(秦始皇)이 8신(神)에게 제(祭)를 지낼 때, 1일과 2일에 각각 하늘과 땅을 관장하는 천주(天主)와 지주(地主)에게 제를
지내고, 3일째에 군병(軍兵)을 관장하는 병주(兵主)인 치우에게 제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漢) 고조(高祖) 유
방(劉邦)도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 패공(沛公)으로 칭하면서 치우에게 제사를 지내고 북과 깃발을 붉게 칠했다고 전해진
다. 이러한 풍습은 후대에도 이어져 송사(宋史) 등에도 출정(出征) 등을 앞두고는 치우에게 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 치우를 병주신(兵主神)으로 숭배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용어하도(龍魚河圖)에 따르면, 치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천하가 다시 소란스러워지자 황제는 치우의 형상을
그려 위세를 보였으며, 이에 모두가 다시 복종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는 치우의 형상이 다양한 문양으로 그려져 민속에서
폭넓게 나타나게 된 과정을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중국의 고대 천문학에서는 꼬리가 굽어 깃발처럼 보이
는 꼬리별[彗星]을 치우기(蚩尤旗)라고 하여 그 별이 나타나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사기(史記)의 천관서(天官書)
에는 뒤가 상아모양 깃발(象旗)마냥 굽어 있는 치우기 혜성을 보면 사방(四方)에 정벌(征伐)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도 치우기의 관측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치우를 전신(戰神)으로 숭배하던 풍습과 관련되어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조선 후기 이후 치우를 자민족의 역사와 연관시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조선 숙종 원년인
1675년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규원사화(揆園史話)에서 치우는 환웅(桓雄)의 명에 따라 황제와 탁록에서
전쟁을 벌여 승리하여 여러 제후의 땅을 빼앗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계연수(桂延壽)가 1911년에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환
단고기(桓檀古記)에서는 치우가 환웅이 세운 신시국의 자오지환웅(慈烏支桓雄)으로 황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회
대(淮岱)와 기연(冀?)의 모든 땅을 신시의 영토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두 책 모두 위서(僞書) 논란과 함께
학계(學界)에서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는 높게 평가되지 않으며, 사대주의적인 모화사상(慕華思想)을 비판
하고 단군 중심의 민족주의적 역사 의식을 고취하는 데 목적을 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축인(丑寅)
동북방향. 귀문(鬼門).

카마[K?ma]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애욕(愛慾)의 신.
애욕, 감각 만족, 성적쾌락 추구 등을 의미한다. 다르마(종교), 아르타(부귀영화), 모크샤(해탈)와 함께 힌두교에서 인생
의 4대 목표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세속적인 욕망의 삶’이라 하여 인생의 하위 목표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부
의 추구’인 아르타와 더불어 가장에게는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덕목으로 간주된다.
고대 힌두 성전 리그베다의 창조신화에서는 우주창조의 원천으로 등장한다. 이후 아타르바베다에서 태초의 혼돈 속에서
최초로 태어난 자로 언급되었다가 이후 여러 푸라나를 거치면서 카마데바(Kamadeva)로 인격화하여 애욕의 신이 되었다.
회화나 조각에서는 거미줄 시위로 된 활과 살을 가진 미남 청년으로 묘사된다.
하늘과 땅의 신 디아우스와 프리티비의 아들이며 쾌락의 여신 라티의 남편이기도 하다. 애욕·연애를 주관한다는 점에서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 로마 신화의 큐피드와 유사한 성격을 띤다. 전설에 따르면 명상 중이던 시바 신을 방해한 죄로 불
태워져 재가 되었다가 아내 라티의 간청에 힘입어 다시 살아났다. 그 때문에 '아낭가(신체가 없는 자)' 라는 별명을 얻었
다.

카임[Caim]

레메게톤에 나오는 72명의 악마 중 하나. 보통 개똥지바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개똥지바귀의 머리 모양을 한 모자와 개
똥지바귀의 날개나 꼬리, 날개가 달린 복장을 한 인간의 모습일 때도 있다. 천계에서는 최하급의 천사였으나, 지옥에서는
상급의 악마로 간주된다. 새는 물론, 모든 동물의 말이나 각국의 언어를 알고 있어서 인간에게 가르쳐준다. 언변도 뛰어
난데, 궤변을 늘어놓는 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지옥에서는 3백 개의 군단을 이끌고 있다.

쿤달리니

하타 요가, 쿤탈리니 요가에 의하면 회음에 해당하는 무라다라 차크리에 머무는 성력으로, 시바 신비의 샤크티나 둘가와
동일시되며, 뱀의 형태를 취해서 얽혀있다. 요가를 수련하면 이 뱀은 척추 중의 스슈무나관을 통해서 상승, 5개의 챠크라
를 거쳐서 머리 꼭대기의 사하스라라에 이른다고 한다.

크리슈나[K???a]

힌두교 비슈누 신의 대표적인 화신.
힌두교에서 최고신이자 비슈누 신의 여덟 번째 화신으로 숭배된다. 비슈누파(派)의 일파인 차이타니아파에서는 다른 모든
화신의 근원이자 절대 인격신의 본래 형상으로 간주된다. 500년부터 1500년 사이 성행했던 박티(신을 향한 헌신과 사랑)
운동의 중심대상이 되었으며, 산스크리트어로는 '모든 것을 매료시키는 분', 또는 '검은 색'이라는 뜻이다. 가장 아름답
고 강하고 고명하고 유명하고 초연한 특성이 있다. 고빈다, 고팔라, 하리, 케샤바, 다모다라, 자간나트 같은 여러 별칭으
로 잘 알려져 있다.
바가바타 푸라나(Bh?gavata-Pur??a)에 따르면, 약 5천년 전 인도 북부 야무나강 기슭에 있는 도시 마투라에 권화(權化)했
다. 이때 야다바족의 왕인 바수데바와 왕비 데바키의 아들로 태어나 마투라의 왕 캄사의 박해를 피해 목동인 난다와 야쇼
다 부부의 양자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버터를 훔치는 등 짓궂은 장난을 치는 한편, 온갖 마귀와 싸우고 손가락 하나로
고바르단 산을 들어 올려 마을 사람들을 구하는 등 많은 기적을 행했다.
많은 회화에서 검푸른 피부의 아름다운 남성으로 묘사된다. 머리에는 공작 깃털이 꽂힌 터번을 쓰고 손에는 대나무피리를
들고 있다. 그 옆에는 배우자인 라다가 늘 함께 있다. 가우디야 바이슈나바, 즉 차이타니아파에서는 바로 이 라다와 크리
슈나를 향한 헌신적 사랑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들의 가장 유명한 숭배 방법은 ‘하레 크리슈나 만트라’로 알려진 라다
와 크리슈나의 신성한 이름 ‘하레’, ‘크리슈나’, ‘하레’, ‘라마’를 구송하는 것이다. 한편, 12세기 벵골 시인 자
야데바의 연애 서사시 기타고빈다는 크리슈나와 연인 라다와의 관능적 사랑을 노래한다.
크리슈나의 어린 시절과 일생을 다룬 경전으로는 바가바타 푸라나, 하리방샤(Hariva??a), 마하바라타(Mah?bh?rata), 브라
흐마 바이바르타 푸라나(Brahma Vaivarta Purana) 등이 있으며, 대부분의 문헌에서 크리슈나를 향한 신애(信愛)를 강조하
고 있다. 그 가운데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일부인 바가바드기타에서는 크리슈나가 제자이자 판다바족의 왕
자인 아르주나에게 의무와 박티 요가에 대해 가르친다.
크리슈나는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힌두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들 중 하나이며 인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숭배된다.
그 중에서도 북인도에 있는 작은 도시 브린다반은 가장 중요한 크리슈나 성지로 꼽힌다. 1966년 A. C. 박티베단타 스와미
프라부파다(A. C. Bhaktivedanta Swami Prabhupada)가 미국 뉴욕에서 창설한 크리슈나 의식을 위한 국제협회(ISKCON), 또
는 하레 크리슈나 운동에 의해 서양에도 그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매년 8·9월 인도에서는 크리슈나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 잔마스타미(Janmastami)가 성대하게 펼쳐진다.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하나. 도리천(?利天)에서부터 위에 구름을 붙여서 허공에 있는 하늘인데, 욕계 육천의 여섯째로
서 욕계의 최고인 곳. 곧 마왕(魔王)이 있는 곳. 타화(他化)는 남이 지음이고, 자재(自在)는 자득(自得)함이니, 이 하늘
은 남의 지은 것을 빼앗아 제가 즐기기 때문에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 함.

파극염(破極炎)
아수라의 불길은 지옥의 업화, 부동명왕의 불길은 천계의 정화(淨火). 둘이 하나가 될 때 그 불길은 빛도 어둠도 이 세상
의 일체의 파괴한다.

하우스호퍼[Karl Ernst Haushofer]

독일의 군인·지정학자(地政學者). 세계적 규모로 보는 정치지리학(지정학)의 각종 문제에 착안했다. 국가사회주의 경향
을 보이던 그는 나치스의 외교 고문이 되어 대외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나치스의 침략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
했다.
뮌헨 출생.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그는 세계적 규모로 보는 정치지리학(지정학)의 각
종 문제에 착안하여 1924년 지정학보(Zeitschrift fur Geopolitik)를 창간하였으며, 1930년 뮌헨대학교 지정학연구소에서
지정학을 강의하였다. 1931년경부터 국가사회주의 경향을 보이던 그는 나치스의 외교 고문이 되어 그 대외정책에서 중요
한 역할을 하였으며 나치스의 침략정책에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패전 직전에 아들 A.하우스호퍼가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으로 체포되어 처형되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1946년 3월 전쟁범죄자로 조사 받던 중 자살하였다. 저서
에 태평양의 지정학(Geopolitik des Pazifischen Ozeans) 등이 있다.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있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한 보살.
허공잉(虛空孕)으로 번역한다. 이 보살은 서방의 승화부장불(勝華敷藏佛)의 세계에서 와서 대자비로써 사람들의 위난을
몰아내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구제한다고 한다. 밀교(密敎)에 들어와 더욱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만다라(曼茶羅)에
도 묘사되어, 태장계(胎藏界) 만다라에서는 허공장원(院)의 중심불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며, 오른손
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칼을, 왼손에는 복덕을 상징하는 연꽃, 또는 공덕을 나타내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잡고, 머리에
는 오지보관(五智寶冠)을 쓰고 있다.

옴 바사라 라타야움!

해탈[解脫]

불교에서 인간의 속세적(俗世的)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상태.
인간의 근본적 아집(我執)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인도사상(印度思想)·불교는 이것을 종교와 인생의 궁극 목적으로
생각하였다. 즉 범부는 탐욕·분노·어리석음 등의 번뇌 또는 과거의 업(業)에 속박되어 있으며, 이로부터의 해방이 곧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구원은 타율적으로 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 즉 반야(般若)를 증득(證得)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데 특징이 있다. 결국 번뇌의 속박을 떠나 삼계(三界:欲界·色界·無色界)를 탈각(脫却)하여
무애자재(無?自在)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

형산(荊山) 황가선도(黃家仙道)

좌에 태극(太極), 우에 사교(獅咬) 황가혹외귀대법(黃家或畏鬼帶法)
황가기공파(黃家氣功波)
황가선도광경란무(黃家仙道光鏡亂舞)
황가선도구자신강(黃家仙道九字神降) 임병투자개진열전행(臨兵鬪者皆陳列前行)
황가선도구자신강(黃家仙道九字神降) 북두진군파군진(北斗眞君破軍陣)
황가선도구자신강(黃家仙道九字神降) 북두칠진화계진(北斗七辰火界陣)
황가선도구자신강(黃家仙道九字神降) 칠진오의(北斗七辰奧義) 용성검(龍星劍)
황가선도파군파(黃家仙道破軍波)
황가천강재(黃家天降在)

화천[火天]

고대 인도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
고대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불의 신 아그니(Agni)를 불교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아그니는 천계(天界)에서는 태양, 공계(空
界)에서는 번갯불로 표현되며 화선(火仙)·화신(火神)이라 번역한다. 인도신화에서는 바람의 신 바유(Vayu), 술의 신 소
마(Soma)와 함께 삼신으로 여겨지고 불교에 받아들여지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신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특히 밀교에서
널리 모시는데, 밀교사원이나 수행도량에는 호마단(護摩壇)이나 호마로(護摩爐)를 마련하고 이 신을 모신다. 여기에서 호
마란 산스크리트 호마(Homa)의 음을 딴 말로 소공양(燒供養), 즉 ‘불 속에 바치는 것’을 뜻한다. 밀교의식의 호마법은
내호마와 외호마로 나뉜다. 내호마는 마음 속의 무명(無明)을 태워 없애는 것을 말하고, 외호마란 호마로에 직접 공양물
을 던져서 부처에게 공양하는 의식을 이르는 말이다. 외호마를 통해 신(身)·구(口)·의(意) 삼업을 깨끗이 하는데, 화천
은 바로 이 외호마의 본존불(本尊佛)로 대일여래의 지혜를 상징한다.
본래 화천에 대한 숭배는 브라만교에서 유래하였다. 브라만의 사제가 하던 행위가 사화외도(事火外道)라는 외도에 의해
의식으로 발전하였으며 이것이 불교에 받아들여지면서 내면의 번뇌를 없애는 역할이 더해진 것이다. 불은 열을 내므로 더
위나 추위, 계절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곧 화천의 희비에 따라 날씨나 계절이 거꾸로 가기도 하고 바로 가기도 한다고
한다. 밀교의 만다라에는 온몸이 활활 타는 불로 뒤덮인 채 다리를 엇걸고 염주와 정병·방망이 등의 지물을 든 모습으로
표현된다.

옴 카톈 아가나예 소바카!

황룡[黃龍]

중국 용의 일종. 황색 용으로 중국 고대부터 전해오는 오행사상에서는 사방을 지키는 청룡, 주작, 현무, 백호의 중앙에
위치하는 성스러운 짐승으로 여겨졌다. 오행사상에서 황색에 대응되는 토덕(土德)에 해당하는 시대에 자주 나타난다고 한
다. 중국에서는 서수(瑞獸: 재수가 좋은 짐승)의 출현을 기념해서 연호를 바꾼 적이 있는데, 황룡이 출현했다고 해서‘황
룡’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황룡은 경사스러운 짐승이라 여겨져서, 우다(宇多) 천황(887년 즉위)이 즉위했을
때 황룡이 나타났다고 한다.

힌덴부르크 호[LZ 129 Hindenburg]

1937년 독일을 출발하여 미국에 착륙을 시도하다 비행선 내부에 저장한 수소가 폭발하여 추락하는 대참사를 일으킨 체펠
린 사의 비행선.
독일의 체펠린 비행선회사가 1931년부터 1936년까지 5년에 걸쳐 설계, 제작한 비행선으로, 정식 명칭은 LZ 129이다. 힌덴
부르크(Hindenburg)라는 이름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파울 폰 힌덴부르
크(Paul von Hindenburg 1847-1934)에서 따온 것이다. 길이 245m로서 당시 최대의 비행선이었던 힌덴부르크호는 최대 속
도 시속 135km, 순항 속도 시속 125km를 자랑하였다. 비행선 제작에 소요되는 제작비가 소요되어 차질을 빚게되자 나치의
지원을 받아 완성되었으며, 그때문에 나치의 요구를 수용하여 꼬리 날개에 나치 깃발이 선명히 그려져 있었다. 내부에 고
급 식당과 라운지, 도서실, 산책용 통로가 있었고, 그랜드피아노까지 갖춘 초호화 비행선이었다. 1936년 3월 4일 첫 시범
비행을 시작하였고 그해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였을 때 점령지 상공을 비행하며 나치를 선전하는 삐라를 살포하
는데 동원되기도 하였다. 이후 총 65회를 비행하였고, 당시로서는 초장거리였던 대서양 횡단 비행 횟수만 35회를 기록하
였다.
1937년 5월 4일 승객 36명과 승무원 61명을 태우고 그 해 첫 대서양 횡단 비행에 나선 힌덴부르크호는, 독일 프랑크푸르
트를 출발하여 네덜란드와 영국 상공을 거쳐 미국의 레이크허스트 해군 비행장으로 향했다. 5월 6일 오후 2시 경 미국 뉴
욕 상공을 지나, 오후 6시 경 목적지인 레이크허스트 기지에 도착하여 착륙을 시도하는 도중 폭발하였다. 이 사고로 승객
13명과 승무원 22명, 그리고 지상 근무요원 1명 등, 총 36명이 사망하였다.
폭발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설이 있으나, 확실하게 입증된 것은 없다. 힌덴부르크호는 거대한 선체의 대부분을
공기보다 가볍지만 폭발성이 강한 수소 기체로 채워서 부력을 얻고 있었는데, 이는 가벼우면서도 안전한 헬륨 기체가 당
시에는 매우 귀하고 비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헬륨가스의 최대 생산국인 미국이 독일 나치를 견제하기 위해 독일에
헬륨가스를 판매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직접적인 폭발 원인으로, 착륙도중 급격한 방향전환으로 인해 선체를 지지하는 철선이 끊어졌고 이때 수소가스를 저장한
탱크에 균열이 생겨 거기에서 새어나온 수소 기체에 정전기에 의한 스파크가 더해져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가설이 가장 설
득력을 얻고 있다. 또다른 원인으로 언급되는 것은 착륙 당일 바람이 많이 불었고 비가내리는 등 날씨가 좋지않았고 하강
을 위해 방출하고 있던 수소 가스에 번개가 쳐서 폭발했다는 가설이다. 또 일부에서는 승무원의 고의적인 파괴로 인해 폭
발했다는 가설 등이 있다. 당시 힌덴부르크 꼬리날개에 그려진 거대한 나치 깃발 때문에 힌덴부르크호가 나치의 선전도구
로 인식되기도 하였으며, 반 나치주의자들이 폭탄을 설치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힌덴부르크호 폭발사고는 당시 현장에
있는 보도기자들을 통해서 생생한 사진으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후 여객 수송용 비행선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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