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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좀 합시다

이 글을 대통령께서 보실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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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홍덕문 선생 묘지 발견
개발에 휩쓸려 사라질 위기, 종문과 애향단체 관심 절실
[2008-10-23 오후 5:59:00]
 
 
▲ 홍덕문 선생의 묘비를 살펴보는 일행.
▲ 소요산 입구에 위치한 홍덕문 선생 비각

동두천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옥중 고문으로 출소 직후 사망한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포천 신북면 계류리에서 발견됐다. 홍덕문 선생은 구한말 애국지사로 본명은 병준, 본관은 남양이며, 홍복영의 아들로 1864년(고종1년) 10월 1일 동두천시 걸산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919년 음력 2월 25일 동두천 장날 정오에 1000여명의 군중을 인솔하고, 선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만세를 연창하며 백절불굴의 의지를 보였으나, 형기를 마치고 돌아온 후 결국 고문과 형독(形毒)으로 1923년 5월 17일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이런 선생의 얼을 되살리기 위해 1975년 동두천 노인회가 독립유공자추모회를 결성해 시민의 성금을 모아 추모비를 세웠고, 1991년에는 동두천 애향동지회 주관으로 비각이 건립되었다. 현재 비각은 동두천 소요산 입구에 서있다.


동두천시는 홈페이지에 홍덕문 선생의 업적을 게재해 놓고 있으며, 추모비각은 1986년 4월 28일 동두천시문화재로 지정됐다. 동두천시가 1999년 펴낸 ‘동두천시 역사와 문화유적’을 보면 ‘1919년 3·1운동 때 홍덕문 선생 등이 1000여 군중을 인솔하여 동두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도 홍덕문 선생의 묘지에 대한 사료가 없어 33년간 방치된 채 무연고 묘로 전락해 갔다. 본지 취재진은 지난 20일 김정자 시의원, 이명수 향토학자, 동두천문화원 이계홍 사무국장 등과 함께 포천 신북면에 위치한 홍덕문 선생의 묘지를 찾아 나섰다. 이계홍 사무국장에 따르면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포함된 임야가 경매에 의해 소유자가 변경되었고 해당 소유자가 사업장을 확장하려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순간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다는 판단이 들어 부랴부랴 묘지의 실체를 확인하기로 한 것.


물어물어 찾아간 홍덕문 선생의 묘지는 관리가 전혀 안된 듯 잡초와 수풀로 뒤덮여 있었다. 또렷한 비문이 없다면 도저히 누구의 묘지인지 조차 확인할 길이 없을 정도로 세월의 풍파를 홀로 맞이하고 있었다.
향토학자 이명수 씨는 “홍덕문 선생의 묘지를 속히 이장해야 하는데, 선생의 직계후손들이 거의남아 있지 않아 동두천시와 남양 홍씨 종문에서 이장을 서둘러야 한다”며 후손된 도리를 망각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정자 시의원은 “이번에 묘지이장은 물론 홍덕문 선생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홍덕문 선생의 얼을 되살리고, 독립유공자로 추서하기 위해 동두천시와 남양 홍씨 종문, 애향단체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덕문 선생은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해 동두천시와 사회단체들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연천군에 거주하는 이희빈 씨는 홍덕문 선생과 대고모부(고모할아버지) 관계로, 홍덕문 선생의 독립유공자 추서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매번 자료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희빈 씨는 “보훈처가 요구하는 증거를 찾으려면 국가기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국가보훈처가 요구하는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한편, 이장과 관련해 남양 홍씨 종문인 홍운섭 의원은 “근 시일 내에 종문회에 묘지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알리고 종문회 차원의 도움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으며, 비각 세우기를 주관했던 애향동지회 김승희 회장은 “애향동지회 측에서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해 내부 중지를 모아 홍덕문 선생 유해를 동두천시로 이장하는데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뜻을 피력해 동두천시로의 유해 이장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홍승철기자(kioaio@hamail.net)

양주.동두천신문 & yangju.newsk.com 콘덴츠,정보 전재할 경우 출처를 명기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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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이 억울한 사연을 꼬오옥 인지하시고 
아래 동영상을 한 번 보십시오!
동영상 자료를 올립니다!  

본 동영상 자료는 민족반역자 처단협회의 도움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보시기에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아마추어의 입장이라 조금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라 팔아먹은 놈은 억대 부자되고

나라 지키느라 목숨 받친 사람들은

집도 없고 이게 뭡니까??

 

그리고 서명에 동참하여 주십시오!

뜻을 함께 하실 분들께서는 서명하여 주시길 꼭 부탁드립니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39217& 국가보훈처의 비리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33119  독립운동가의 추모서명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60826  대일청구권 자금 사용처

 

--------- 아래와 같이 여러 기관을 돌아다니며 호소를 하여도 --------------


공공기관에서 법률상담을 한다고 나온 변호사는
" 국가에서 잘못을 한 것은 국민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 고, 하고

 

판사는 법정에서 붉은 도장을 찍어서 정본이라고 판결한 문서조차
" 그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니 나에게 묻지 말라! " 고, 하고 있고

 

공무원들은 사무실에서 민원인에게 한 입으로 두 말하고
 " 모른다! " 고, 하질 않나?

 

민원인에게는 있는 과거 서류가 있는데 관공서에서는
" 파기시켰는지? 어데다가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고, 하질 않나?
 
경찰서의 민원실장은 사건의 이야기를 듣고서 공감하는지
" 허참! " 만, 찾고 있고

 

경찰청 민원실에 들어가 억울한 사연을 이야기 하니까
" 해당관청에 가서 이야기 하라! "  고 하길 래,
다시 말을 하니까...
" 시비를 걸러 왔느냐? " 고, 하면서
" 문닫을 시간이 되었으니 나가라! " 고, 하면서 내몰고 
 
검찰청 범죄피해자 신고센타에 신고를 하여도 관계자는
" 용서하여 달라 !" 고 하면서
" 용서해 주세요 " 라는 책이나 한 권 주어서 내보내고

 

청와대 민원실을 찾아가려고 아니, 대통령을 직접 만나 이렇게 억울한
국민의 하소연을 청하려고 들어가려고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경찰들이 막고
들여보내주지 않고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간판도 바꾸고 그 쪽으로 통합되었다고
하면서 그 쪽으로 가라고 하니

 

이제는 이 억울한 국민이 갈 곳은 딱 한 곳 밖에 없을 것 같구려!
떠날 수 박에 없지요!

 

이 아픈 몸뚱이를 갖고 더 살면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그런데 저 어린 자식들을 보면 그렇게 할 수 도 없고
중이 절이 싫으면 가야지!  절 보고 나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어린 자식들에게 너희들은 거짓말 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칠 수가 없으니........!  과연 이곳에 올린
이 글을 대통령께서 보실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역대 정권들의 중간 리더들이 그렇게 국민들의 고충과 고통을
머리와 꼬리는 다 잘라 버리고 보기 좋고, 듣기 좋고, 맛이 좋은 몸통만 올렸을 터이니까?

 

결국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고,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고
손이 있어도 내밀어 이 억울한 민초들의 아픈 몸을 만질 수 없고
발이 있어도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없도록
막고 가리고 있으니,,,,,! 

 

그 언제나 밝고 명랑한 국민들의 웃음과 희망을 보게 될려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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