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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총기 폭동의 신호탄은 판사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저항의 시작이다

 총 든 민병대, 미 정부시설 점거 “국가 폭정에 저항”


워싱턴|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3일 점거 중인 정부 시설에 지역 언론사 기자들을 불러들인 목장주 애먼 번디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의 상의 왼쪽 주머니에는 미국 헌법이 꽂혀 있다. 출처: KOIN6 화면

3일 점거 중인 정부 시설에 지역 언론사 기자들을 불러들인 목장주 애먼 번디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의 상의 왼쪽 주머니에는 미국 헌법이 꽂혀 있다. 출처: KOIN6 화면

새해 벽두부터 미국 오리건주에서 10여 명의 무장한 극우 성향의 민병대가 연방정부 건물과 토지를 점거하며 정부군과 싸울 태세에 들어갔다.


지역 언론 오리거니언에 따르면 총기로 무장한 이들은 2일 오리건주 번즈의 하니 카운티의 말뢰르 국립야생동물보호구역의 1층짜리 본부 건물과 인근 부속 건물을 장악했다. 이들은 몇년 전 산불이 자신의 목초지로 번지는 것을 막겠다고 맞불을 놨다가 방화죄로 실형을 선고 받은 목장주 드와이트 해먼드(73) 부자 사건에 항의하며, 해먼드 부자에 대한 처벌이 개인의 자유로운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백 명의 시위대가 전날 방화 혐의로 기소된 해먼드 부자에 대한 법원의 최근 판결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으며, 시위 후 10여 명이 새해 연휴로 문을 닫은 이들 건물에 강제로 진입했다. 이들은 망루에 무기를 든 경비병을 배치하고 차량을 동원해 건물 주변을 돌면서 주변 경계를 하고 있다.


점거를 주도한 목장주 애먼 번디(40)는 이날 지역 언론사 기자들을 공원 내에 들어오게 한 뒤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시설은 해먼즈 부자 대한 폭정(tyranny)의 도구가 됐다. 우리는 몇 년이 걸리더라도 여기에 있을 것이며, 어느 순간에 내려진 짧은 결정은 아니다”며 결사 항전의 뜻을 밝혔다. 번디는 “우리가 먼저 무력을 행사할 의사는 없지만 만약 우리를 향해 무력이 사용된다면 우리도 스스로를 방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CNN에 점거 중인 민병대의 숫자를 작전 전략상 밝힐 수 없다고 답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국가의 폭정”에 저항해 자신들의 헌법적 권리를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에도 이들의 동영상 성명이 올라왔다. 동영상 속의 한 남성은 “음식도 풍부하고, 정부를 상대로 싸울 자원이 풍족하다. 전국의 애국자들은 무기를 들고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사건은 2001년, 2006년 이 지역의 한 목초지에서 일어난 산불에서 비롯됐다. 해먼드 부자는 두 산불을 일으킨 용의자로 지목돼 2012년 지방법원에서 유죄 확정됐고 각각 3개월, 1년의 실형을 살았다. 하지만 연방법원은 지난해 말 이들의 형량이 충분하지 않다며 이들에게 징역 4년을 추가 선고했다. 해먼드 부자가 4일 다시 수감될 예정인 가운데 인근의 목장주 등이 이 곳에 모여들어 시위를 벌이던 중 정부 시설 점거까지 하게 된 것이다.

드와이트 해먼드의 부인은 이들의 정부 시설 점거와 자신들은 직접 관련이 없다며 해먼드 부자가 순순히 수감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다만 그는 시설을 점거한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는 공유한다고 말했다.


시설 점거를 주도한 애먼 번디는 네바다주 목장주 클라이븐 번디의 아들로, 이들 부자는 과거 정부 소유지에 소를 방목했다가 미 연방토지관리국으로부터 소떼를 압류당하자 반정부단체들과 함께 거세 항의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이 사건은 몇가지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우선 미국 내에서 백인 농장주, 목장주들로 이뤄진 반정부 민병대가 언제든 꾸려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이들은 총기 소지 권리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2조의 주어가 ‘민병대’라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의 대다수 총기옹호론자들도 언제든 국가 권력에 맞설 수단으로 총기 소지 권리에 대한 조금의 침해도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명백한 반정부 봉기임에도 연방정부가 며칠째 진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 등에서 경찰의 인종차별적 법집행에 항의해 벌어진 흑인 시위에 대해 가차없이 공권력을 행사한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날 자신들이 점거한 시설에 기자들을 불러들인 번디의 상의 주머니에는 미국 헌법 텍스트를 담은 포켓용 수첩이 꽂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