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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善行)/일제 피해자 공제조합 준비위

第5回強制動員真相究明全国研究集会(東京)参加記 + 제5회 강제 동원 진상 구명 전국 연구 집회(도쿄) 참가 기록 (번역문)

第5回強制動員真相究明全国研究集会(東京)参加記 + 제5회 강제 동원 진상 구명 전국 연구 집회(도쿄) 참가 기록 (번역문)

5回強制動員真相究明全国研究集会(東京)参加記http://cafe.daum.net/iljegongjejunbi/Ji6H/395 일제피해자공제조합

201247日、「朝鮮人強制連行と国・企業の責任」をテーマに第5回強制動員真相究明全国研究集会が東京大学の駒場でもたれ、140人が参加した。

集会では、外村大「政策と法から見た朝鮮人被動員者」、張完翼「韓国からの報告」、増田好純「強制労働という過去への取り組み・ドイツの経験から」、小林久公「韓国憲法裁判所決定と日韓請求権協定の意味」、同「強制動員資料について」、矢野秀喜「問題解決にむけての提言(強制動員被害補償立法)」、竹内「明らかになった未払い金・供託金の内訳」などの報告がなされた。

集会で提起されたことがらをまとめると次のようになる。

日韓の関係における共生・和解に向けての海流を形成し、その海流で深い部分での流れを形成すること。

募集・官斡旋による動員者も軍需会社では1943年末には現員徴用され、軍需充足会社でも1945年初めには軍需会社法が準用され、徴用扱いとされたこと、日本人徴用者には戦後、慰労金が支払われたが朝鮮人は除外されたこと。

韓国では2012年に強制動員被害の救済に向けての財団を設立する準備がすすんでいること、20137月には強制動員の歴史記念館が完成すること。

ドイツでは1939年から45年までに外国人・戦争捕虜・強制収容所被収容者ら約1350万人の強制的な動員がなされ、それに対して「記憶・責任・未来」基金の設立により、約166万人に総額436250万ユーロの支払いがなされたこと、現在では「記憶・未来」基金が人権と歴史継承の事業を継承していること。

日韓条約で外交保護権は放棄しても、個人の請求権は消滅していないことが日本政府の認識であり、被害者の損害賠償の権利はいまもあること。

企業が保管していた朝鮮人の郵便貯金については福岡貯金事務センターに集められて保管されていることがわかった。軍事郵便貯金と外事郵便貯金も同様であること。

裁判から立法による解決が求められる段階であり、強制連行・企業責任追及裁判全国ネットワークでは朝鮮人強制労働被害者補償のための財団設立に関する法律(案)を作成している。今後も立法化推進署名をすすめ、日韓共同のアピール運動をおこなうこと。

未払い金の経過をみると、戦後の供託や「経済協力」による未払い金の処理は被害者の救済にあたるものではなく、詐欺と暴力が繰り返されたことになる。2015年の日韓条約50年にあたって新たな被害者救済の枠組みが求められること。軍人軍属動員36万人を示す史料も出てきたこと。

植民地支配の不法性を政府が認めることが前提であるが、村山談話は植民地支配を反省するものであり、その立場で日韓条約を見直す方向にすすめること。

朝鮮人遺骨は合祀約700体、個別約100体が発見されているが、政府による返還はすすんでいない。遺骨返還が宙に浮いたままの状態となっている、言いかえれば魂が漂いはじめている状態であり、仏教団側は約束が違うと政府に不信感をもっていること。(以上要約)

全国研究集会では近年の真相究明ネットにおける史料調査の報告と今後の財団・基金形成にむけての問題提起がなされた。十分な討論はできなかったが、今後の方向性の確認がなされた集会だった。

焦点の一つである韓国内での強制動員財団設立の動きについて張完翼さんはつぎのように報告した。

韓国では20116月末に「対日抗争期強制動員被害調査および国外強制動員犠牲者などの支援に関する特別法」に強制動員被害の救済に向けての財団の規定が挿入され、強制動員財団の設立に向けての協議が始まった。韓国の強制動員被害支援・調査委員会が財団の設立主体となり、公益特殊法人として財団の設立が計画されている。20121月には財団設立のための準備団が構成され、委員会の事務局長が団長となった。財団の定款の検討も始まっている。財団の名称としては「日帝強制動員被害者支援財団」が候補となっているが、検討中である。財団の事業内容は支援金のほかに高齢者福祉、教育事業、研究・調査なども検討されている。韓国企業以外に日本企業も含むのかも、今後の検討課題である。2012年中には財団設立の予定で動いている。釜山の強制動員被害の歴史記念館は20137月に完成する予定である。今後、この強制動員被害支援・調査委員会がどのように存続できるのかが課題となっている。(以上要約)

このように韓国では強制動員の財団・基金が設立されようとしている。それに対応し、強制動員をおこなった日本政府と日本企業がどのような形で被害者・遺族に賠償するのか、どのようにして過去の清算に取り組んでいくのかが問われている。まず、日本政府と企業は植民地支配とその下での強制動員を不法なものと認めるべきだろう。そのうえで被害者救済に向けて具体的な行動をとるべきである。

ドイツでの強制的な動員数と「記憶・責任・未来」基金による支払い額も示されたが、日本の動員の実態はどうなのだろうか。日本の戦争において「満州」からアジア太平洋地域でどれだけのアジア民衆が日本の戦争遂行のために動員されたのか、その動員の全体像も明らかにされるべきだろう。

中国から「満州」への動員、朝鮮内外への動員、中国から日本やアジアへの動員、フィリピンやインドネシアなど南方での民衆動員、連合軍捕虜の動員、連合軍内のアジア人捕虜の日本軍への動員などさまざま戦時の強制動員を明らかにし、戦争の実相を示すこと、さらにその後の戦争被害の救済の実態についても明らかにすることが求められているように思う。 

                              

慧門「奪われた文化財」講演会

201248日、東京で慧門さんの「奪われた文化財」の講演会がもたれた。慧門さんは韓国の曹渓宗の僧であり、文化財還収委員会の事務総長を務めている。著書『儀軌 取り戻した朝鮮の宝物』も近年発刊された。今回の講演会はその出版記念も兼ねてもたれた。

慧門さんははじめに金剛経の「還至本処」を示し、あるべきところに戻すという方向性を語った。そしてそれを、文化財を元に戻すことだけでなく、真実や良心、民族を元に戻すという社会的な価値意識と話をすすめた。「他意により歪曲されたものを正す過程が正に文化財還収運動であり、文化財だけでなく新しい形態の社会運動」という提起は興味深いものだった。

慧門さんはソウルの王宮前の道の曲がり方、石燈、儀軌、朝鮮王朝実録、仏国寺多宝塔の石獅子、朝鮮王の兜・マントなどの事例、1965年返還文化財の実態などを示しながら、文化財の略奪の実態と還収の意義を語った。特に「小倉コレクション」の問題点の指摘は重要なものだった。儀軌返還に向けて活動してきた慧門さんの思いに触れることができる貴重な会だった。

ちょうどジャクソンポロック展が近くで開催されていた。メキシコの民衆絵画、アメリカ先住民族の表現、亡命してきたシュールレアリスト、スペインのピカソやミロなどの影響を受けながら、ポロックは自身の精神状況と格闘しつつ、独自の表現を形成した。ポロックの絵の、投げられ、落とされ、削られたさまざまな絵具と曲線が形成するアンサンブルのように、表現が重ねられ、現実が変わっていくことを願った。

 

http://blog.daum.net/hblee9362/11318708

제5회 강제 동원 진상 구명 전국 연구 집회(도쿄) 참가 기록 (번역문)


2012년 4월 7일, 「조선인 강제 연행과 나라·기업의 책임」을 테마로 제5회 강제 동원 진상 구명 전국 연구 집회가 도쿄대학의 코마바에서도 축 늘어차 140명이 참가했다.

집회에서는, 도노무라대 「정책과 법에서 본 조선인 피동원자」, 장완익 「한국으로부터의 보고」, 마스다호순 「강제 노동이라고 하는 과거에의 임해·독일의 경험으로부터」, 고바야시 히사시공 「한국 헌법재판소 결정과 일한 청구권 협정의 의미」, 동 「강제 동원 자료에 대해」, 야노 히데키 「문제 해결로 향한 제언(강제 동원 피해 보상 입법)」, 타케우치 「밝혀진 미불금·공탁금의 내역」등의 보고가 이루어졌다.

집회에서 제기되었던 것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일한의 관계에 있어서의 공생·화해를 향한 해류를 형성해, 그 해류로 깊은 부분에서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

모집·관 알선에 의한 동원자도 군수 회사에서는 1943년말에는 현인원 징용 되어 군수 충족 회사에서도 1945년초에는 군수 회사법이 준용되어 징용 취급으로 여겨진 것, 일본인 징용자에게는 전후, 위로금이 지불되었지만 조선인은 제외된 것.

한국에서는 2012년에 강제 동원 피해의 구제를 향한 재단을 설립할 준비가 나아가고 있는 것, 2013년 7월에는 강제 동원의 역사 기념관이 완성하는 것.

독일에서는 1939년부터 45년까지 외국인·전쟁 포로·강제 수용소피수용자등 약 1350만명의 강제적인 동원이 이루어져 그에 대해 「기억·책임·미래」기금의 설립에 의해, 약 166만명에게 총액 43억 6250만 유로의 지불이 이루어진 것, 현재는 「기억·미래」기금이 인권과 역사 계승의 사업을 계승하고 있는 것.

한일 조약으로 외교 보호권은 방폐해도,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하고 있지 않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인식이며, 피해자의 손해배상의 권리는 지금도 있는 것.

기업이 보관하고 있던 조선인의 우체국 저금에 대해서는 후쿠오카 저금 사무 센터에 모아져 보관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군사 우체국 저금과 외사 우체국 저금도 마찬가지인 것.

재판으로부터 입법에 따르는 해결이 요구될 단계이며, 강제 연행·기업 책임 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에서는 조선인 강제 노동 피해자 보상을 위한 재단 설립에 관한 법률(안)을 작성하다.향후도 입법화 추진 서명을 진행시켜 일한 공동의 어필 운동을 행하는 것.

미불금의 경과를 보면, 전후의 공탁이나 「경제협력」에 의한 미불금의 처리는 피해자의 구제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사기와 폭력이 반복해진 것이 된다.2015년의 한일 조약 50년에 해당해 새로운 피해자 구제의 골조가 요구되는 것.군인 군속 동원 36만명을 나타내는 사료도 나온 것.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정부가 인정하는 것이 전제이지만,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것이어, 그 입장에서 한일 조약을 재검토할 방향으로 진행시키는 것.

조선인 유골은 합사 약 700체, 개별 약 100체가 발견되고 있지만, 정부에 의한 반환은 나아가지 않았다.유골 반환이 공중에 뜬 채로 상태가 되고 있는, 말 있어 돌아가면 영혼이 감돌기 시작하고 있는 상태이며, 불교단측은 약속이 다르면 정부에 불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상 요약)

전국 연구 집회에서는 근년의 진상 구명 넷에 있어서의 사료 조사의 보고와 향후의 재단·기금 형성으로 향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충분한 토론은 할 수 없었지만, 향후의 방향성의 확인이 이루어진 집회였다.

초점의 하나인 한국내에서의 강제 동원 재단 설립의 움직임에 대해 장완익씨는 다음과 같게 보고했다.

한국에서는 2011년 6월말에 「대일 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으로 강제 동원 피해의 구제를 향한 재단의 규정이 삽입되어 강제 동원 재단의 설립을 향한 협의가 시작되었다.한국의 강제 동원 피해 지원·조사위원회가 재단의 설립 주체가 되어, 공익 특수법인으로서 재단의 설립이 계획되고 있다.2012년 1월에는 재단 설립을 위한 준비단이 구성되어 위원회의 사무국장이 단장이 되었다.재단의 정관의 검토도 시작되어 있다.재단의 명칭으로서는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지원 재단」이 후보가 되고 있지만, 검토중이다.재단의 사업 내용은 지원금 외에 고령자 복지, 교육 사업, 연구·조사등도 검토되고 있다.한국 기업 이외에 일본 기업도 포함하는지도, 향후의 검토 과제이다.2012년중에는 재단 설립의 예정으로 움직이고 있다.부산의 강제 동원 피해의 역사 기념관은 2013년 7월에 완성할 예정이다.향후, 이 강제 동원 피해 지원·조사위원회를 어떻게 존속할 수 있는지가 과제가 되고 있다.(이상 요약)

이와 같이 한국에서는 강제 동원의 재단·기금이 설립 되려고 하고 있다.거기에 대응해, 강제 동원을 행한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이 어떠한 형태로 피해자·유족에게 배상하는지, 어떻게 해 과거의 청산에 임해 가는지가 추궁당하고 있다.우선, 일본 정부와 기업은 식민지 지배와 그 아래에서의 강제 동원을 불법인 것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게다가 피해자 구제를 향해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독일에서의 강제적인 동원수와 「기억·책임·미래」기금에 의한 지불액도 나타났지만, 일본의 동원의 실태는 어떻게인 것일까.일본의 전쟁에 대해 「만주」로부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얼마나의 아시아 민중이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해서 동원되었는지, 그 동원의 전체상도 밝혀져야 할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만주」에의 동원, 조선 내외에의 동원, 중국에서 일본이나 아시아에의 동원,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등 남방에서의 민중 동원, 연합군 포로의 동원, 연합군내의 아시아인 포로의 일본군에의 동원 등 여러가지 전시의 강제 동원을 분명히 해, 전쟁의 실상을 나타내는 것, 한층 더 그 후의 전쟁 피해의 구제의 실태에 대해서도 분명히 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혜문 「빼앗긴 문화재」강연회

2012년 4월 8일, 도쿄에서 혜문씨의 「빼앗긴 문화재」의 강연회가 기대었다.혜문씨는 한국의 조계종의 승려이며, 문화재환수위원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저서 「의궤 되찾은 조선의 보물」도 근년 발간되었다.이번 강연회는 그 출판 기념도 겸해도 축 늘어찼다.

혜문씨는 처음에 금강경의 「환지본처」를 나타내, 있어야 할 것을에 되돌린다고 하는 방향성을 말했다.그리고 그것을, 문화재를 바탕으로 되돌리는 것 뿐만이 아니고, 진실이나 양심, 민족을 바탕으로 되돌린다고 하는 사회적인 가치 의식과 이야기를 진행시켰다.「타의에 의해 왜곡된 것을 바로잡는 과정이 정말로 문화재환수운동이며, 문화재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이라고 하는 제기는 흥미로운 것이었다.

혜문씨는 서울의 왕궁앞의 길의 도는 방법, 석등, 의궤, 조선 왕조 실록, 불국사 다보탑의 돌사자, 조선왕의 두·망토등의 사례, 1965년 반환 문화재의 실태등을 나타내면서, 문화재의 약탈의 실태와 환수의 의의를 말했다.특히 「오구라 콜렉션」의 문제점의 지적은 중요한 것이었다.의궤 반환을 향해서 활동해 온 혜문씨의 생각에 접할 수 있는 귀중한 회였다.

정확히 쟈크손포록크전이 근처에서 개최되고 있었다.멕시코의 민중 회화, 미국 선주 민족의 표현, 망명해 온 초현실주의파, 스페인의 피카소나 미로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포록크는 자신의 정신 상황과 격투하면서, 독자적인 표현을 형성했다.포록크의 그림의, 던질 수 있어 떨어져 깎아진 다양한 그림물감과 곡선이 형성하는 앙상블과 같이, 표현을 거듭할 수 있고 현실이 변해갈 것을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