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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행(惡行)/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민족의 역적질을 자행하고 있는 국가보훈처.왜 이 주소로 바꾸었을까?

 

민족의 역적질을 자행하고 있는 국가보훈처.

이래도 아이들에게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칠 수가 있는지? 아니,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하면서
국가에 충성을 다하라고 가르칠 수 있는지? 도저히 태극기가 부끄러워 쳐다볼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꼭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민족의 역적질을 자행하고 있는 국가보훈처.
이 주소를 무엇이 켕기는 것이 있었기에 가리고
http://cafe.daum.net/rjwltRkatlekd/DpnB/143

왜 이 주소로 바꾸었을까?
http://cafe.daum.net/rjwltRkatlekd/FpTx/16

홍덕문은 한말의 애국지사. 휘는 병준(秉俊)이며, 본관은 남양이다. 1919년 3·1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음력 2월 25일(동두천 장날) 정오에 1천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그 후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했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다. 출옥한 후에는 일본 헌병이 가한 형독으로 인하여 수년 후 향리인 걸산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1975년에 시민의 성금을 모아 소요산 입구에 추모비를 세웠다. 화강암으로 된 비신의 앞면에는 애국지사 홍덕문 추모비라고 음각했고, 뒷면에는 선생의 행적을 새겼다.

 

 

2012. 2. 19. 일요일 홍덕문선생님의 추모비가 세워진 소요산 입구의 소요산역 등산지도

 

 

 

동두천시의 공식적인 홍보지도에 Hongdukmoon Memorial 홍덕문선생추모비 라고 분명히 기재되어 있다.

 

 

 

동두천시는 홈페이지에 홍덕문 선생의 업적을 게재해 놓고 있으며, 추모비각은 1986년 4월 28일 동두천시문화재로 지정됐다. 동두천시가 1999년 펴낸 ‘동두천시 역사와 문화유적’을 보면 ‘1919년 3·1운동 때 홍덕문 선생 등이 1000여 군중을 인솔하여 동두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홍덕문추모비 향토유적 제3호 소재지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131번지

 

 

 

 

애국지사 남양홍공 덕문지묘

 

 

 

 

 

拷問極刑 독립만세 群衆先鋒 군중선봉 愛國忠情 애국충정 石面刻銘 석면각명

 

老人會意 노인회의 邑民至誠 읍민지성 拷問極刑 고문극형 百折不屈 백절불굴

 

 

 

 

 

 

 

 

 

 

拷問極刑 독립만세 群衆先鋒 군중선봉 愛國忠情 애국충정 石面刻銘 석면각명

 

老人會意 노인회의 邑民至誠 읍민지성 拷問極刑 고문극형 百折不屈 백절불굴

 

 

 

 

 

 

 

 

위와 같은 명명백백한 사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역적질을 자행하고 있는 국가보훈처에서는 옥중자료가 없다는 설득력 없는 주장으로 독립유공자 홍덕문 선생님을 국가유공자로 불인정 하고있다.

 

이에 대하여 동두천의 수장 오세창은 독립운동가 홍덕문 선생님의 추서운동을 범시민적으로 전개하여 보훈의식을 왜곡하고 있는 민족의대역적 국가보훈처에 철퇴를 가해야 할 것이다.

 

 

2012. 2. 20.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 간사 오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