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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먹은 포철 어떻게 만들었나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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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제갈공명(33) 번호 : 1308 조회수 : 19 2005.02.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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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팔아먹은 포철은 어떻게 만들었나?
글쓴이 무궁화사랑
작성일 2005-02-22

조회수 212
추천수 36

2000년 10월 정부는 포철 민영화를 하면서 정부 투자금 3000만불에 해당하는 주식을 팔아 치움으로써 정부와 포철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끝냈습니다
포철에 대일 청구권자금을 투입했던 배경과 포철의 건설,그리고 민영화의 과정을 밟아 보겠습니다.

어느날 박정희는 박태준을 청와대로 불렀습니다.
"임자. 철은 산업의 쌀이야. 쌀이 있어야 밥을 해 먹지 않겠나? 그러니 자네가 제철소를 하나 지어줘야겠어.제철소를 꼭 만들어야 하는데,이놈도 못하고 저놈도 못한다니 임자가 맡아줘야겠어." 박태준은 확신이 서지 않아 몇차례 고사를 했습니다.그러나 박정희는 "나는 임자를 잘 알아.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할 수 있어.아무 소리 말고 맡아!"
이렇게 해서 박태준은 1968년 이름뿐인 포항종합제철을 설립합니다.


박정희의 제철소 건립 구상에 따라 유럽과 미국의 정부는 66년 12월에 이른바 KISA(대한 국제 제철 차관단)을 구성해서 각국의 제철소들이(총 7개사) 지원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는데 총 건설자금 1억3070만 2000달러를 조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돈을 내지 않았고 영국,프랑스,이탈리아만이 4,300만 달러를 공여하였습니다.
박태준이 직접 협상에 나섰으나 미국 코퍼스사의 포이 회장은 건설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돌아 갈 수는 없다는 생각과 박대통령을 뵐 낯이 없다는 생각을 하던 그에게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는데 바로 대일 청구권자금이었습니다.
박태준은 박대통령에게 즉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놈들 하고는 다 틀렸습니다. 우리가 기만을 당한겁니다. 대일 청구권 자금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무상.유상 합치면 1억 달러는 안되겠습니까?" "그래.자네가 기막힌 생각을 했군. 그정도는 될거야."

이렇게 해서 박태준은 그길로 도쿄로 날아 갑니다.
박태준은 "제철소건설의 목표는 국가안보이다.한국은 여전히 전시상태이다.안보를 고려할 때 제철소가 반드시 필요하다.한국이 적화되면 일본도 좋을 것이 없는 게 아닌가."라는 논리로 결국 오오히라를 설득합니다.
더 이상 답변을 할 수 없었던 일본의 각료들은 마침내 포철 건립을 지원한다는 각서에 서명합니다.

.
마침내 신일본제철이 기술이전을 하기로 결정이 났고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70년 4월 1일 착공식에서 박태준은 이렇게 말합니다.
"공사 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는 전원 저 오른쪽에 보이는 영일만에 들어가 빠져 죽는다."
박태준은 빌려온 대일청구권 자금을 가르켜 "선조들의 피의 댓가이다.이돈으로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우리는 모두 죽어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박대통령은 정치자금을 뜯으려는 정치인들에게 시달리던 박태준에게 종이마패를 주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박태준을 건드리면 누구든 가만 안둔다.]
박정희의 절대적인 신임으로 공사는 진척되었고 박태준은 파일하나 기둥하나가 잘못 세워질 때마다 가차없이 폭파시켜 버렸습니다.

73년 6월 9일 마침내 마침내 제 1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
포철은 경부고속도로의 3배가 넘는1215억원이 든 단군이래 최대사업이었습니다.
포철은 설비가동 1년만에 그동안 투입된 외국자본을 모조리 갚고도 흑자를 기록합니다.
첫해의 흑자는 242억원.
그후 포철은 2004년까지 단 한해도 예외없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73년 이래 설비와 자산규모는125배 성장. 매출액 287배성장. 순이익 239배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103만톤의 조강능력은 2003년에는 2800만톤.
여의도 3배 면적인 270만평의 부지위에 도로 길이만 80Km에 이르는 철의 메카로 자리 잡았습니다.


포철의 건설비용중 일본으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3000만달러는 자본금으로,8000만달러는 차관형식으로 들여왔습니다. 차관 8000만달러는3.5%의 이자까지 모두 갚았고 3000만불은 2000년 10월 민영화하면서 정부가 회수했습니다.그간 정부가 포철에 투자한 3000만불에 대한 배당과 지분 매각으로 총 3조 8000억을 회수했는데 바로 이돈이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은 일제 청구권자금이고 피해를 보신분들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돈이었습니다.
포철은 그동안 세금으로만 5조원을 납부했고 포항공대설립등 사회기금으로 1조 8000억원을 지출했습니다.

박정희와 박태준의 집념이 이루어낸 영일만의 기적으로 인하여 재정이 살찌고 국민들이 모두 혜택을 받았습니다.정부는 포철매각대금 3조 8000억원에 대하여 이돈이 피해자들의 돈임을 인정하고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분들의 고통에 눈감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더 미루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