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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소식(가나다라 순)/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규탄 성명-역사 빈곤이 부른 박근혜 정권의 외교적 야합이자 수치

 

 

 

규탄 성명-역사 빈곤이 부른 박근혜 정권의 외교적 야합이자 수치

 

∥일제 강제 징용 시설 -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규탄 성명

 

역사 빈곤이 부른 박근혜 정권의 외교적 야합이자 수치!

 

 

7월 5일은 대한민국이 정한론(征韓論)의 이론적 배경이 된 요시다쇼인(吉田松陰)의 사설 학당 쇼카손주쿠(松下村塾)와, 그로부터 시작된 식민지 침략전쟁의 어두운 역사 시설 등을 만장일치로 세계유산이 될 수 있도록 국제무대에서 승인해 준 치욕적인 날이 되고 말았다. 아울러 한국정부는 아베 정권의 일련의 역사 세탁 시도를 완성시켜 주는 주역이 되고 말았다.

 

5일 일본이 조선인 강제 징용 시설을 포함해 등재 신청한 메이지시대 산업유산 23곳이 모두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우리정부는 일본정부로부터 ‘강제 노역’ 사실을 국제무대에서 첫 언급하게 한 것을 두고 외교적 승리라며 호들갑이다.

물론, 일제침략기에 빚어진 강제 징용 문제가 한일 양자 차원을 넘어 국제무대에서 공식 언급되고 문서로 남게 된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면면을 살펴보면 이것이 과연 외교적 승리라며 자화자찬할 일인지 의아할 뿐이다.

 

지나간 일이지만 일본정부가 등재를 신청한 시설 중 일부는 세계유산이 될 자격조차 갖기 어려운 것이었고, 오히려 등재를 추진하려고 하는 발상이 무엇인지가 더 의심스러운 것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쇼카손주쿠가 그것이다. 요시다 쇼인이 과연 누구인가? 그는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 등을 주창하며 조선 식민지화를 포함한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 이론을 제공한 인물로서, 결과적으로 이후 역사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인류공영에 기여한 것이 아니라, 인류평화를 헤치는데 기여한 한 개인의 사설 학당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결국 지난 잘못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과 다름없을 뿐 아니라, 일본정부가 제2의 군국주의 망령을 꿈꿀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용기를 부추기는 꼴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이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

 

여러 강제 징용 시설 중에서도 특히 군함도(하시마)의 경우는 섬의 생성 및 전개과정 자체가 제국주의 전쟁과 식민지 민중의 강제 노동을 빼 놓고는 더 이상 설명이 불가능한 곳이다. 이런 점에서 다른 강제동원 시설 등을 포함해 지난 잘못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도저히 세계유산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장소였다.

 

독일의 예에 비춰서도 확연히 비교된다. 2001년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독일 에센의 촐페어라인 탄광산업단지의 경우 역시 과거 강제노동이 있었지만, 독일은 단 한 번도 이 같은 사실을 감추려 한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오히려 부끄러운 사실을 적극 공개하고 추모시설을 건립하는 등의 자기반성을 통해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일본이 ‘강제 노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했지만 이는 막판 등재 통과를 위해 마지못해 ‘강제 노역이 있었다’는 단지 역사적 사실만을 시인한 것으로 진정한 사죄나 자기반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시설을 너무도 쉽게 세계유산으로 허용해 준 것이다.

 

일본정부가 ‘강제노역’을 언급한 것을 두고 대단한 외교적 성과인 것처럼 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내용을 들여다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우선, ‘강제 노역’이라는 표현이 결정서 본문이나 주석에 포함된 것도 아니고, 일본 측 대표 발언록에서야 찾을 수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전체적 의미에서는 강제동원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서지학자나 문헌전공자가 아니라면 훗날 누가 과연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알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내용면에서 향후 얼마든지 한일 간 서로 다른 해석을 낳을 불씨를 남겼다는 점에서, 자칫 ‘패착’이 될 우려가 크다.

 

일본 측 수석대표는 발언에서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하였음”을 인정하면서도, ‘강제 노역’을 시킨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은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어진 발언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이라는 표현은 막판 타결 전까지 일본정부가 일관되게 ‘강제 징용’을 부인해 온 것에 비춰볼 때 해석상 분쟁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정부는 “당시는 일본과 조선이 한 나라였기 때문에 설령 징용이 있었더라도 강제징용은 아니었다. 일본 국민들도 똑 같은 조건에서 징용이 있었다”는 점을 줄 곳 주장해 왔다.

 

이런 연장선에서 일본 측 수석대표가 한국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시인한데 그치지 않고, 동시에 당시 일본정부가 시행한 징용 정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 것은, 앞서 강제 노역을 시킨 주체가 빠져 있는 점과 연동해 볼 때, “강제 노역은 있었지만 이것은 일본 국내 차원(조선도 당시엔 합법적 병합에 의한 한 나라)에서 시행된 조치의 일환”이라고 발뺌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치장과 달리, 정부 당국자 역시 배상 근거 관련성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한 인터뷰에서 “강제노역에 대해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한 것이지 법적인 문제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면서 “배상 문제는 (이번 결정문과는) 별개로 보고 있다”며 ‘강제 노역’ 기술이 단지 역사적 사실의 반영(?)에 그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 전에 딴 소리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5일 발표문에 언급된 ‘강제 노역’을 부인하고, 벌써부터 ‘일하게 됐다’는 식의 말로 물 타기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전조다.

 

결과적으로 우리정부는 결정서 본문이나, 주석에서도 찾아 볼 수도 없고, 추후 한일 간에 해석상 빌미를 낳을 수 있는 ‘강제 노역’ 문구 하나를 얻는 대신, 일본 제국주의에 면죄부를 주고, 일제 강제 징용 시설이 세계적 관광지로 부상할 수 있도록 그 시설물들의 부가가치만 높여 주는 꼴을 자처하고 말았다.

 

이 같은 결과는 협상 초기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그것은 결론적으로 일제의 한반도 불법 강점과 그에 따른 법적 책임과 배상 문제는 안중에 없거나 남의 일처럼 생각한 역사인식의 빈곤과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사건과 관련해, 1심에 이어 지난 6.24일 광주고등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얻었지만, 우리정부는 이에 대해 반겨하는 기색이란 찾아볼 수 없다. 일본군위안부문제, 원폭피해자, 사할린피해자 문제 이외에 모든 문제는 해결됐고, 따라서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정부 입장에서는 엉뚱한 판결인 것이다.

 

이상의 모든 것들이 일천한 역사인식에서 출발한 결과, 쇼카손주쿠 문제는 애초 거론조차 해 볼 생각이 없었고, 일제 강제동원 문제 역시 사죄와 법적 배상 문제는 처음부터 배제한 채, 지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협상에 임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정부는 ‘강제 노역’이라는 문구 하나를 얻는 대신, 결과적으로 아베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추진해 온 일련의 역사 세탁 시나리오를 완성시켜 주는 주역이 되고 만 것이다.

 

일제 징용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결과는 한마디로 역사 빈곤이 부른 박근혜 정권의 외교적 야합이자 굴욕이다. 아울러 이러한 인식을 거둬들이지 않는 한 이 정권에서 대일 과거청산과 일제 피해자 문제 해결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음을 확인한다.

 

 

2015년 7월 6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문의: 이국언 상임대표 010-8613-3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