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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월) <고구려의 건국과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유라시안 역사인문학 신청




4/13(월) <고구려의 건국과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유라시안 역사인문학 신청

제 7회 유라시안 역사인문학 특강 

□ 일 시  2015. 04. 13. (월)  17:00~19:00

□ 장 소  KT광화문빌딩 1층 드림엔터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 주 제  고구려의 건국과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 연 사  이찬구 한학 박사

□주최 : (사) 유라시안네트워크

□후원 : 한류열풍사랑,세계환단학회,(사)대한사랑

 

신청하기 →  http://goo.gl/ORw4gl




광개토태왕릉비는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오래된 금석문으로 동북아시아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사료이다. 장수왕은 광개토태왕이 죽고 나서 2년 후 부왕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 비에는 광개토태왕의 업적 뿐 아니라 고구려의 기원, 통치시기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구려의 기원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고죽국, 북부여, 한사군의 세 가지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있어야한다. 고구려는 B.C.37년에 갑자기 출현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구려 건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고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고구려 멸망 후 광개토대왕릉비는 중국의 손에 넘어갔다가 발해가 되찾았으나 다시 중국에 넘어가 1880년대에야 발견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비문에 대한 연구를 일본이 먼저 착수했다는 것이다. 1883년 일본 중위 사까와는 탁본(쌍구가묵본)을 참모본부에 전달하고 일본은 이를 5년간 연구했다. 이 비문이 군부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은 모종의 침략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개토대왕릉비의 해석을 놓고 지금까지 한·일 양국 간의 논쟁은 팽팽하다. 해석을 둘러싼 논란은 광개토대왕릉비에 새겨진 한 문장에서 비롯된다. 이를 문제의 <신묘년 기사>라고 부른다.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 )( )新羅以爲臣民’

일본군부는 이 문장을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서 백제와 신라를 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하여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 하고 있다. 이 학설은 지금까지 일본의 정통학설이 되어 식민사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런 해석에 반대를 한 분이 위당 정인보선생이다. 위당은 이 문장의 주어를 ‘왜’가 아닌 ‘고구려’로 보고, ‘왜가 신묘년에 고구려를 침략하여 왔으므로 고구려가 공략하여 왜를 무찔렀다’고 해석했다.

광복 70주년이 다 되어감에도 식민사학은 날로 번창하고 있다. 식민사학의 청산은 오로지 시민의 단결된 힘과 민족사관인 ‘얼사관’에 의해서만이 무너뜨릴 수 있다. 얼사관이란 위당이 밝힌 조선의 얼에서 인용한 말이다.

연사소개

이찬구 한학 박사

충남 논산 출생  1983년에 한학자인 아산 김병호 선생으로부터 천부경을 전수받고 한문공부를 시작하다. 1985년부터 9년간 대산 김석진선생 문하에서 주역을 공부하면서 환단고기를 연구하다. 2005년 대전대학교에서 동학의 천도관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東洋哲學)하다. 1994년에 처음으로 단군시대의 글자인 신지전자 31자를 찾아 공개하였으며, 2011년도에 STB상생방송에서 4차례 천부경을 강의하였고, 2012년에 첨수도에서 한글 <돈>자를 찾아 발표하여 중국학자들과 한글 및 고죽국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 최근에는 광개토대왕릉비문 연구에 이어 『통일철학과 단(檀)민주주의』를 출간하다.

저서로는  『환단고기 선해』 『인명용 한자사전』 『천부경과 동학』 『주역과 동학의 만남』 『채지가 9편』  『돈:뾰족돈칼과 옛한글연구』  『고조선의 명도전과 놈』  등이 있다.


한류열풍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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