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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행(惡行)/민족혼을 파는 행위

왜? 위령제를 이렇게 지내놓고 사진은 자꾸만 가리고 막을까요?

독립운동가의 묘지 표지석을 보고도 국가보훈처는 불인정을 하는가?

대한민국은 자국민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인가?

세상은 원망할 수 없으나
이 나라의 역사는 원망하고 싶다!

무참히 짓밟히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충성을 다한 자손들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침략자들에게 아부하고 알랑거린 자들은 잘 살고 있다!

이는 분명 잘못된 역사이고
이것은 분명 오욕의 역사인 것이다!

세상이 변하여도 너무 많이 변했다.
이 착하고 어질고 순한자에게는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주고
악하게 남을 음해하고 남을 도탄에 빠뜨린 자들은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順天者 存 逆天者 亡 !" 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 말씀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때린 자는 오그리고 자고
맞은 자는 다리를 펴고 잔다고 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하여도
우리의 조상이시자
하느님은 알고 계시리라!

분명 어느 누가 잘못하고,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분명히 알고 계시리라!

그래서 지금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태풍과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 이 민족도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지말라!
그리고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

그렇게 피해를 주고,
그렇게 비리를 저지르게 되면
결코 하늘이 용서치 않으리라고 본다!

정말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살았는데
남은 것은 빚 밖에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위정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독립투사의 집안과 참전용사의 집안과
청렴결백하게 살아온 집은 언제나 이렇게
가난과 고통과 질병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권력에 아부하고 그들에게 알랑거리며
따라다녔던 자들에게는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생활이 윤택하다.

이것도 또한
이 나라의 역사가 분명하게 가려야 할 것이다!

드높은 하늘이 무섭지 않은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권력과 지위와
위엄이 높은 곳에 있다고 함부로 행동하며
함부로 말하지 말라!

다시 한 번 강조하노니
일제 36 년사를 다시 재조명하여
이 나라에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민족의 통일과 강대국들의 수탈을

막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2. 2. 19. 일요일 홍덕문선생님의 추모비가 세워진 소요산 입구의 소요산역 등산지도

동두천시의 공식적인 홍보지도에 Hongdukmoon Memorial 홍덕문선생추모비 라고 분명히 기재되어 있다.

동두천시는 홈페이지에 홍덕문 선생의 업적을 게재해 놓고 있으며, 추모비각은 1986년 4월 28일 동두천시문화재로 지정됐다. 동두천시가 1999년 펴낸 ‘동두천시 역사와 문화유적’을 보면 ‘1919년 3·1운동 때 홍덕문 선생 등이 1000여 군중을 인솔하여 동두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 홍덕문선생의 추모서명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48585

홍덕문추모비 향토유적 제3호 소재지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131번지

동두천시는 홈페이지에 홍덕문 선생의 업적을 게재해 놓고 있으며, 추모비각은 1986년 4월 28일 동두천시문화재로 지정됐다. 동두천시가 1999년 펴낸 ‘동두천시 역사와 문화유적’을 보면 ‘1919년 3·1운동 때 홍덕문 선생 등이 1000여 군중을 인솔하여 동두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치욕의 역사를 외면하였기에 당하는 수모입니다. 또다시 이러한 일들을 당하지 않으려면
많은 홍보와 함께 독립운동가 홍덕문선생의 추모서명에 동참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48585

 

애국지사 남양홍공 덕문지묘

獨立萬歲 독립만세 群衆先鋒 군중선봉 愛國忠情 애국충정 石面刻銘 석면각명

老人會意 노인회의 邑民至誠 읍민지성 拷問極刑 고문극형 百折不屈 백절불굴

또한 1991년 6월 1일 선생의 고귀한 순국 이념과 숭고한 애국 정신을 기리는 뜻으로 김석겸이 기탁한 성금으로 동두천 애향동지회 주관으로 비각이 건립되었다

행여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이 억울한 사연을 꼬오옥 인지하시고
아래 동영상을 한 번 보십시오!
동영상 자료를 올립니다!

본 동영상 자료는 민족반역자 처단협회의 도움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http://blog.daum.net/hblee9362/11301461

 

그 언제나 밝고 명랑한 국민들의 웃음과 희망을 보게 되려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랍니다!

가짜 유공자를 배출해 온 국가 보훈처
http://blog.daum.net/56dhyoon/15846428


윤덕호 감독 님께서
' 동두천시 명예가 걸린 독립투사 홍병준(덕문) 선생
서훈을 정부에서 인정하게 하는 일 ' 이라고 하시면서
과거의 그 오욕의 역사를 재조명하시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니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독립운동가의 묘지 표지석을 보고도 국가보훈처는 불인정을 하는가?

독립운동가 홍덕문 선생 묘지 발견
개발에 휩쓸려 사라질 위기, 종문과 애향단체 관심 절실
[2008-10-23 오후 5:59:00]

▲ 홍덕문 선생의 묘비를 살펴보는 일행.

 

동두천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옥중 고문으로 출소 직후 사망한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포천 신북면 계류리에서 발견됐다. 홍덕문 선생은 구한말 애국지사로 본명은 병준, 본관은 남양이며, 홍복영의 아들로 1864년(고종1년) 10월 1일 동두천시 걸산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919년 음력 2월 25일 동두천 장날 정오에 1000여명의 군중을 인솔하고, 선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만세를 연창하며 백절불굴의 의지를 보였으나, 형기를 마치고 돌아온 후 결국 고문과 형독(形毒)으로 1923년 5월 17일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이런 선생의 얼을 되살리기 위해 1975년 동두천 노인회가 독립유공자추모회를 결성해 시민의 성금을 모아 추모비를 세웠고, 1991년에는 동두천 애향동지회 주관으로 비각이 건립되었다. 현재 비각은 동두천 소요산 입구에 서있다.


동두천시는 홈페이지에 홍덕문 선생의 업적을 게재해 놓고 있으며, 추모비각은 1986년 4월 28일 동두천시문화재로 지정됐다. 동두천시가 1999년 펴낸 ‘동두천시 역사와 문화유적’을 보면 ‘1919년 3·1운동 때 홍덕문 선생 등이 1000여 군중을 인솔하여 동두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도 홍덕문 선생의 묘지에 대한 사료가 없어 33년간 방치된 채 무연고 묘로 전락해 갔다. 본지 취재진은 지난 20일 김정자 시의원, 이명수 향토학자, 동두천문화원 이계홍 사무국장 등과 함께 포천 신북면에 위치한 홍덕문 선생의 묘지를 찾아 나섰다. 이계홍 사무국장에 따르면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포함된 임야가 경매에 의해 소유자가 변경되었고 해당 소유자가 사업장을 확장하려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순간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다는 판단이 들어 부랴부랴 묘지의 실체를 확인하기로 한 것.


물어물어 찾아간 홍덕문 선생의 묘지는 관리가 전혀 안된 듯 잡초와 수풀로 뒤덮여 있었다. 또렷한 비문이 없다면 도저히 누구의 묘지인지 조차 확인할 길이 없을 정도로 세월의 풍파를 홀로 맞이하고 있었다.
향토학자 이명수 씨는 “홍덕문 선생의 묘지를 속히 이장해야 하는데, 선생의 직계후손들이 거의남아 있지 않아 동두천시와 남양 홍씨 종문에서 이장을 서둘러야 한다”며 후손된 도리를 망각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정자 시의원은 “이번에 묘지이장은 물론 홍덕문 선생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홍덕문 선생의 얼을 되살리고, 독립유공자로 추서하기 위해 동두천시와 남양 홍씨 종문, 애향단체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덕문 선생은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해 동두천시와 사회단체들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연천군에 거주하는 이희빈 씨는 홍덕문 선생과 대고모부(고모할아버지) 관계로, 홍덕문 선생의 독립유공자 추서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매번 자료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희빈 씨는 “보훈처가 요구하는 증거를 찾으려면 국가기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국가보훈처가 요구하는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한편, 이장과 관련해 남양 홍씨 종문인 홍운섭 의원은 “근 시일 내에 종문회에 묘지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알리고 종문회 차원의 도움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으며, 비각 세우기를 주관했던 애향동지회 김승희 회장은 “애향동지회 측에서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해 내부 중지를 모아 홍덕문 선생 유해를 동두천시로 이장하는데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뜻을 피력해 동두천시로의 유해 이장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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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철기자(kioaio@hamail.net)

양주.동두천신문 & yangju.newsk.com 콘덴츠,정보 전재할 경우 출처를 명기하여 주십시오
Copyright by yangju.newsk.com

 

 

경기북부일보 기사내용입니다.

http://www.kgbnews.kr/sub_read.html?uid=3518

동두천문화원에서는 지난 10일 10:30 구한말 애국지사인 홍덕문 묘(포천 신북면)를 화장하여 소요산입구 지사각에 안장하고 중요무형문화제104호 새남굿 주관으로 위령제를 지냈다.

홍덕문선생은 1864년 동두천 걸산동에서 출생, 구한말의 애국지사로 자는 덕문(德文),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복영(福永)의 아들로 일제시대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했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형독(刑毒)으로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한 애국지사 홍덕문선생의 빛난 얼을 되새겨 의열(義烈)의 감(感)을 후세에 지표로 삼기 위하여 시민의 성금으로 추모비를 동두천상봉암동 산32-1번지 세웠으며, 홍덕문 추모비는 1986.4. 28 동두천시 향토유적지 제3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출처:동두천시청<콘덴츠는 해당기관의 홍보자료임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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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위령제를 지낸다 천도제를 지낸다 하면서
행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국가보훈처에서는 이렇게
이 분의 독립운동사실을 불인정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동두천시 사적자료입니다!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적자료로 보관하고 있는 역사가 허위란 말입니까? 만약에 허위라면 이렇게 기록하고 관리해서는 아니될 것이지요! 그것은 아이들에게 " 거짓말 하라! " 고, 가르치는 꼴이 될 것이니까요!

지금이라도 꼭 밝히십시오! 그 오욕의 역사를 말입니다!

그 일가붙이들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하다못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던 그 때에 그래도 이 민족의 등불이 되겟다고 그 일본의 만행을 보다못해그렇게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다가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오직 국가와 민족을 생각했던 댓가가 이렇게 울부짖고 있는데도 아니라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동두천시 노인회에서 노인들께서 직접 목격하신 분들이 성금으로 세운 추모비 입니다! 십시일반으로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신 그 분의 넋을 기리고자 사비를 털어 세운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예산이 없다는 등 파기시켜 버렸는지 기록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어데다가 감추었는지 알 수도 없는 기록을 찾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목격자의 진술을 무척 심도있게 다루면서 어떻게 그 때 목격하시고 그 고문을 당하시고 그렇게 결국 돌아가시게 된 그 분의 모습을 보신 분들이 그렇게 국가에 상정을 하였어도 아니라고 들어주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아니라고 우기는데 현충일을 맞이 한다고 행사를 기념한다고 공휴일로 지정하여 숭고한 애국애족을 기리자!

고, 하면서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의 비문도 거짓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동북공정을 하여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고구려의 옛 땅도 우리나라의 땅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생각으로는 도저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막아낼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 분께서 이렇게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기록하여 자랑하는 이 역사적인 사실들을 버젓이 내세워서 붙여놓고 여기를 보라는 듯이 경기도 동두천시에서는 향토문화유적 제 3 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유적이 국가보훈처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 동두천시민들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아닌가 봅니다

독립운동가 홍 덕문(병준) 선생 추모비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33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