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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

[필독] 더불어 사는 세계관과 서평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필독] 더불어 사는 세계관과 서평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김원열 외 저, 더불어 사는 세계관, 한경사출판사, 2008.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771626

김원열, 김정인, 이기훈, 조관연 공저〈더불어 사는 세계관〉에 대한 서평

김원열(현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 상임대표, 전 한양사이버대 교수)

“정말 더불어 사는 세상은 가능한가?”

서평 대상의 선정 과정

과거에도 여러 차례 서평을 부탁받고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서평을 부탁받고 바쁜 생활 속에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차라리 어떤 책이 주어졌다면 그 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체계적으로 비평하면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을 정하는 일까지 서평자의 몫이 되었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서평의 대상이 되는 책을 고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떠올리면서 선정의 기준을 생각했다.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동안 읽었던 동서고금의 수많은 고전들을 능가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돌아보니 서평이 될만한 책들로 떠올렸던 것들이 대부분 고전들이었다. 또한 동서고금의 고전들은 평소에 자주 강의하는 것들이라 수월하게 서평을 쓸 수 있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끌리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지적 도전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금 이곳의 문제 의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성찰의 대상이 될만한 책들을 기준으로 삼아보았다. 이 선정 기준하에 여러 책들을 나열하다보니, 문득 내 자신도 다시 한 번 성찰해볼만한 책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2008년 한경사에서 발행된 〈더불어 사는 세계관〉이다.

나와 〈더불어 사는 세계관〉의 묘한 관계

서평자인 나와 서평 대상인 〈더불어 사는 세계관〉의 관계는 독특하다. 〈더불어 사는 세계관〉은 오래 전 나의 생각에서 시작되었고, 한양사이버대 재직 당시 내가 전체 내용을 기획했으며, 내가 주저자로서 다른 학자들과 공동으로 저술했던 책이다. 저술할 당시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썼기에 그만큼 더욱 애착이 가는 책이 바로 〈더불어 사는 세계관〉이다. 분명히 나와 〈더불어 사는 세계관〉은 애정의 관계였다. 내 손으로 이 책의 원고를 전송하고 마침내 책이 출판된 이후에는 더 이상 나만의 책이 아니었다. 몇 년에 걸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세계관〉을 읽고 생각하는 동안, 나는 다른 연구와 저술 그리고 사회적 실천으로 바쁘게 지냈기에 한 동안 잊고 지냈다. 나와 〈더불어 사는 세계관〉은 애정이 식은 냉랭한 관계였다. 〈더불어 사는 세계관〉을 다시 살펴볼 이유조차 없었다. 나와 〈더불어 사는 세계관〉은 확실히 이별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결별 직전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

도저히 이별할 수 없게 만든 사건. 그것은 나의 사회적 실천 활동과 직결되는 사건이었다. 나는 2010년부터 진보대통합의 절박한 필요성으로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이하 진보통합 시민회의) 공동대표 겸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다 2013년 진보통합 시민회의 회의 과정에서 기존 명칭을 새롭게 변경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더불어 사는 세계관〉을 꺼내 들어 집중적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내 심장이 힘차게 약동하며 나와 〈더불어 사는 세계관〉 사이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별 직전에 뜨거운 애정 관계로 돌아온 것이다. 결국 나는 명칭 후보로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를 제안했고, 선호도 조사와 총회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진보통합 시민회의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이하 더불어 사는 시민회의)로 확정하였다. 이후 더불어 사는 시민회의는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을 비롯해 지금 이곳에서 고통받는 현장이면 어디든 찾아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고, 이러한 사회적 실천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이 나와 〈더불어 사는 세계관〉은 우여곡절을 겪는 연인처럼 묘한 관계인 것이다.

〈더불어 사는 세계관〉의 문제 의식

〈더불어 사는 세계관〉은 공동 저술의 산물이다. 저자인 김원열, 김정인, 이기훈, 조관연의 글을 함께 모아놓은 것이 〈더불어 사는 세계관〉이다. 저자들의 전공이 각기 철학, 경제학, 경영학,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데도, 공동 저술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환경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물론 어떤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해서 전공이 다른 학자들이 누구나 공동으로 저술하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사는 세계관〉 탄생의 직접적 계기는 연구비를 지원받는 과제였다는 점을 빠뜨릴 수 없다. 학계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공동 연구 과제였기에 서로 전공이 다른데도 학제간 공동 연구와 공동 저술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여러 전공자들이 서로 공유했던 문제 의식에 주목해 살펴볼 것이다. 공동의 문제 의식이 없는 공동 저술은 내용이 비어있는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세계관〉의 저자들은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해 저자들은 매우 심각한 위기로 보고, 그 환경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대안적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세계관〉의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 의식이 나타나 있다.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 환경의 오염으로 고통 받고,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며, 사회적 불평등에 신음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쾌적한 자연 환경 속에서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사회적으로도 평등하게 살 수는 없을까? 이 저술은 이와 같이 절실한 현실 문제에서 시작하여 그 문제에 대해 통합적으로 연구하고 실질적인 해결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6쪽)

이러한 문제의식은 구체적으로 자연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는 4대강 운하 사업이나 경제적으로 빈곤의 악순환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실상, 그리고 양극화로 표현되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환경 문제의 원인에 대해 저자들은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어떤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려면 문제의 원인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저자들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근대 자본주의’에 주목하고, 환경 문제의 원인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두고 있으며, 세계관의 측면에서 환경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로 등장하는 것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대 인식체계이다.

근대 자본주의의 인식체계는 자연을 철저하게 대상으로 삼아 그 법칙성을 규명했으며, 그 결과 엄청난 생산력을 과시하기에 이르렀다. 자연의 온갖 제약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인식체계는 인간의 해방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또 다른 한계에 부딪혔다. 바로 성장의 한계였다. 확실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엄청난 생산력의 출현과 함께 심각한 환경 파괴를 초래했으며,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저하시켰다. 이대로 자연과 인간이 모두 악화되는 현상을 방치할 수 없기에, 저자들은 새로운 생태주의 인식체계를 중시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강조한다.

생태주의와 지속가능성

생태주의는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더불어 사는 세계관〉에서는 생태주의를 지속가능한 발전의 관점에서 다룬다. 그래서 저자들은 생태주의를 단지 자연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회 공동의 문제로 여기며 미래 세대까지 염두에 둔 지속가능성의 과제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 결과 지속가능성의 구체적 사례를 이론과 운동의 영역에서 찾고 있다. 우선 이론적 연원으로 우리의 전통 철학사상에서 유기체적 세계관과 지속가능성의 맹아를 규명하고 있다. 그리고 지속가능성 운동의 사례로는 68혁명과 녹색운동 그리고 평화운동 등의 전개를 살펴보고 있다.

〈더불어 사는 세계관〉의 독창성은 지속가능성의 존재론과 인식론에서 발휘된다. 동서고금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들며 지속가능성의 특징으로서 지구적 존재론과 유기체적 인식론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공존과 조화 개념이다. 공존과 조화는 바람직한 가치관과 더불어 사는 세계관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더불어 사는 세계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지속가능성의 세계관은 인간이 자연과 대립하고 투쟁하기보다 공존과 조화를 중시하는 것이고, 사회에서도 인간이 서로 대립과 투쟁을 일삼기보다 공동 이익을 위해 공존과 조화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형성해야 한다.”(239-240쪽)

여기서 대립이 아닌 공존, 투쟁이 아닌 조화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공존과 조화의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공존의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고 조화의 세상은 ‘어울려 사는 세상’이다. 그런데 말이 좋아서 공존과 조화이지, 현실적으로 가능한 세상인가? 오히려 현실은 공존보다 대립이 판치고 조화보다 투쟁이 벌어지는 살벌한 무한경쟁의 시장만능 세상이 아닌가? 이런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더불어 사는 세상의 실현 가능성

〈더불어 사는 세계관〉의 저자들은 더불어 사는 세상의 구체적인 사회 형태를 지속가능한 발전 사회로 제시하며, 무엇보다 세계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세계관에 따라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지속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더불어 사는 세계관〉에서는 각종 문제 해결의 주체를 인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실천의 주체인 인간이 어떠한 가치관을 지니고 어떤 방법으로 환경 문제와 경제 문제 그리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인간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291쪽)

이와 같이 〈더불어 사는 세계관〉에서는 문제 해결의 주체로 인간을 내세우면서, 구체적인 협력적 조치들로 법과 제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구 차원의 국제적 협력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장기적 관점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발전 사회에 관한 평생 교육과 학습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을 더불어 사는 세상의 실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더불어 사는 세계관〉에서 제시하는 것들이 이루어진다면, 진정 더불어 사는 세상이 실현될 것인가? 제시한 전제 조건들만 충족된다면, 더불어 사는 세상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전제 조건들의 충족 가능성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현실 속에서는 워낙 다양하고 역동적인 반대 변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더불어 사는 세계관〉이 새로운 세상의 방향성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더불어 사는 세계관〉이 매우 성공한 공동연구와 공동저술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해 집필자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서술 방식의 차이를 충분히 조정하거나 통일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서술 문제는 무엇보다 집필자들이 환경 문제에 관한 전문가들이기에, 전체적인 문제의식과 글의 체계는 공유했으나 구체적인 서술 책임은 철저히 집필자들 각자가 맡았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학제간 공동 연구도 쉽지 않지만 그 연구 결과를 공동으로 저술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학제간 공동 연구와 공동 저술이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동의 협력적 작업을 해야 일이 이루어지듯이, 더불어 사는 세상도 결코 혼자서는 실현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뜻을 함께 하고 반드시 협력해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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